[수필] 푸시킨 동상 앞에서
[수필] 푸시킨 동상 앞에서
  • 성광일보
  • 승인 2021.05.2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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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백중/수필가
윤백중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에 있는 박물관을 찾았다. 관람을 마치고 좁은 골목길을 건너 근처에 있는 예술 공원을 찾아갔다. 푸쉬킨 동상 앞에 섰다. 조촐한 공원 중심부에 오른팔을 옆으로 벌리고 서있는 동상을 보았다. 명성보다는 조금 초라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옆에는 1800년대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 시인이란 설명이 있다. 혼혈아로 30이 넘어 19세 미녀와 결혼했고 너무나 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안내인의 설명도 믿어지지 않았다.

푸시킨이 러시아 문학에 기여한 공로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라고 한다. 고전주의 시의 엄격한 작시법과 리듬감을 통한 낭만주의적 서정성을 사실주의적인 현실과 결합시킨 창작 세계는 크게 돋보인다. 상징적인 시풍과 미래주의 시를 형성한 독특한 시인이었다. 
푸시킨의 대표작으로 꼽기도 하는 짧은 시 한 수를 기술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쁜 날이 찾아오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나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은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간 모든 것은 아름다우리

이 시는 필자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60년대 자력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어려운 생활을 할 때 즐겨 외웠었다. 고시생들도 책상 옆에 붙여놓고 미래 희망을 꿈꾸며 열심히 공부했던 친구도 생각난다. 경제개발이 급속도로 진행된 30여 년은 잊고 살았다. 국민들이 생활의 여유를 찾고 교직자들이 은퇴하며 문학 쪽에서 시와 소설 수필을 쓰면서 다시 유명한 시와 수필에 관심을 가지고 전문 문학인 또는 취미로 글을 쓰는 문인들이 유행을 만들어가고 있다.

푸시킨은 근대 러시아 문학의 창시자로 추앙받고 있다. 20대에 수많은 글을 썼으며 대표작으로는 《대위의 딸》을 꼽는다. 문학 여러 장르에 걸쳐 재능을 발휘한 러시아 국민문학의 아버지, 위대한 국민시인으로 불렸다.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의 모든 요소를 받아들였으나 때로는 다른 생각을 가진 글을 쓰기도 했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시대의 선구자적 사상의 반영으로 그의 문학적 영향력은 따를 자가 없었다. 

19세기 명예를 중시하던 러시아에서 유행에 휩쓸리듯 어이없는 결투로 아쉽게 생을 마감한 푸시킨 결투 장면을 생각해본다. 
시작은 모욕을 당한 사람이 결투를 신청하고 두 사람은 같은 조건으로 무기를 가질 수 있는 결투이다. 신청한 사람이 결투를 포기하면 겁쟁이가 되어 사교계 출입이 불가능할 때다. 

푸쉬킨은 결투를 신청하고 중계인 입회하에 결투장에 들어갔다. 20미터 거리에서 마주보고 제비를 뽑아 먼저 총 쏠 사람을 정하는 규정에 따라 중개인이 결정한다. 총알은 한 알만 주고 먼저 쏜 사람이 상대를 명중시키면 게임은 끝난다. 푸쉬킨은 뽑기에 저서 우선권을 상대방에 빼앗기고 총알을 방어하게 되었다. 단테스가 먼저 쏜 총알이 푸시킨의 복부를 관통해 치명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집으로 옮겨졌으나 숨을 거두고 말았다. 결투가 벌어졌던 초르나야 레치카에는 국가적인 시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념비가 세워졌다고 한다. 러시아가 낳은 시인은 명예를 지키려다가 어이없이 37세에 요절한 것이다.

푸시킨의 동상 앞에서, 수많은 작품을 쓰고 명성을 날리던 과거를 생각하며 사람의 미래는 정말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동상을 한 바퀴 돌고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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