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아래로 흘러야 순하다
물은 아래로 흘러야 순하다
  • 성광일보
  • 승인 2021.05.3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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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성동신문 논설위원
송란교/성동신문 논설위원

물은 흘러가면서 길을 만든다. 이것을 법(法)이라 말한다. 바람도 흘러가고 구름도 흘러가는데 왜 물이 가는 길을 법이라 했을까? 물이 가는 길을 막아본 적이 있는가? 모내기하려면 제법 많은 물이 필요하다. 그래서 겨우내 저수지에 가두었던 물을 내 논까지 끌어와야 한다. 물꼬를 트고 물을 앞세워 걷다 보면 물이 길을 내는 방법을 알 수 있다. 요즘에는 수로(水路)를 자로 잰 듯 직선으로 내지만 옛날의 물길들은 구불구불하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실타래 풀리듯 도르르 흐른다. 때로는 뱀이 머리를 들고 기다란 몸통을 이리저리 비틀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모양새다. 그러다 조금 높은 흙더미를 만나거나 움푹 파인 곳에서는 잠시 기다린다. 옆으로 돌아갈 것인가 위로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밑으로 기어갈 것인가? 혼자서 서둘러 가다가는 온 데 간 데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전열을 정비하며 더 많은 물이 모이기를 기다린다. 힘이 부족하면 힘이 채워질 때까지 기다릴 줄 안다. 충분한 양의 물이 모이면 방해물을 넘어가고 조금 부족한 듯하면 옆으로 돌아간다. 독불장군의 허세보다는 대동단결의 위세가 더 세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물이 가는 길을 퇴로 없이 막으면 결국에는 그 둑을 무너뜨리고 지나간다. 민심의 물꼬도 갇혀 있다가 한꺼번에 폭발하면 수습이 어려운 것과 다를 바 없다. 물이 흐르다 멈추면 그 뜻을 헤아려야 한다. 막힌 곳이 있으면 뚫어야 한다. 자칫 오래 머물면 썩을 수 있고, 너무 많이 모이면 둑을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심이 순하게 흐르도록 다독여야 하는 것처럼 물은 항상 위에서 아래로 막힘없이 흐르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물이 가는 길을 법이라 하는 것 같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자세를 낮추면 이웃이 자연스레 다가온다. 순한 민심도 차곡차곡 쌓인다. 물은 도랑을 내어주면 순순히 졸졸 잘 흘러간다. 물이 순하게 흘러간 뒤에는 예쁜 자국을 남기지만, 물이 할퀴고 지나간 뒤에는 흉한 자국만이 남는다. 물길이 새로 나면 뒤에 따라오는 물은 그 길을 따라 흐른다.

가고 싶은데 못 가고, 먹고 싶은데 못 먹고, 하고 싶은데 못 하고, 보고 싶은데 못 보고, 자고 싶은데 못 자면 화가 난다. 가고 싶은데 가라 하면, 먹고 싶은데 먹게 하면, 하고 싶은데 하게 하면, 보고 싶은데 보게 하면, 자고 싶은데 자게 하면 기분이 좋다. 마음이 하고 싶은 것, 민심이 하고 싶은 것 하도록 해주면 이웃 민심도 기분이 좋아진다. 법대로 한다는 것은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자연스러움을 이해하는 것이다. 강요 협박 명령 의무감 등으로 하게 되면 재미없다. 방 청소하려 빗자루 찾다가 청소하라고 명령하면 들고 있던 빗자루도 내팽개치는 게 사람 마음이다. 자발적으로 하면 힘들지 않고 즐거운데 누가 시켜서 하게 되면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더 힘들고 더 지치게 된다. 왜 그럴까?

준법(遵法), 법률이나 규칙을 좇아 지킴. 범법(犯法), 법을 어김. 위법(違法), 법률이나 명령 등을 어김. 탈법(脫法), 법이나 법규를 지키지 않고 그 통제 밖으로 교묘히 빠져나감. 편법(便法), 정상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은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 등등, 법과 관련이 있는 단어들이다.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뜻의 단어가 더 많은 것을 보니 아무래도 법을 지키는 사람보다 법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가 보다. 사람들이 다투다 언성이 높아지면 흔히 ‘법대로 해보자’라고 외친다. 법이라는 준엄한 잣대가 다툼을 해결하는 해결사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이 말하는 ‘법대로의 잣대’가 각각이 다르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각자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굽은 잣대를 들이대면 누구의 잣대를 법이라 할 것인가? ‘법대로 하면 된다’고 믿는 대부분의 선량한 사람은 ‘법대로 살면 손해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법을 악용하려는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법대로는 하려고 하지 않는다. 참 묘한 심보다.

수류화개(水流花開),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라는 뜻이다. 민심이 잘 흐르면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물이 가는 길을 마음이 따라가면 법대로 사는 것이니, 너와 내가 더불어 편한 세상, 아름다운 이웃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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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신 2021-06-05 12:47:50
수류화개...
물 흐르듯 순리대로 살다보면...
기쁨도 만나고 즐거움도 만나고 행복도 만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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