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엄마의 눈물
[수필] 엄마의 눈물
  • 성광일보
  • 승인 2021.05.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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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옥/수필가
박영옥/수필가

제10회 태평 초등학교 졸업식에 초대합니다.

학교에서 부모님들께 보낸 가정통신문이다. 책상 위 가정통신문을 보면 한숨만 푹푹 나왔다. 가정통신문을 받아 온 지 며칠이나 되었지만, 그걸 봐줄 엄마 아빠가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이혼한 후 나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엄마는 외국에 가는 일이 잦았다. 나는 엄마가 출장 가는 게 싫었다. 언젠가 출장 가는 엄마를 막아선 적이 있었는데 그런 나에게 엄마는 몹시 화를 냈었다.

“너 이러면 안 돼. 엄마가 출장 가는 건 너를 위한 일이기도 해. 엄마가 돈을 벌어야 네가 공부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우리 집 관리비도 내는 거야. 알겠니?”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없는 집은 싫었고 엄마 없는 동안 이모네 가서 지내는 것도 싫었다. 이모가 잘 챙겨주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모네 동생들과 함께 있다가 보면 왠지 미운 오리 새끼가 된 기분이었다.
엄마는 내가 찾을 때마다 없었다. 처음으로 학교에 입학할 때도, 학년마다 했던 학예회도 운동회도 지난번 발표 수업 때도 모두.

그리고 또! 졸업식.
이번에도 엄마는 출장 중이다.

가정통신문 받아온 날, 나는 그걸 핸드폰으로 찍어 엄마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카톡 보낸 지 며칠이나 지났지만, 엄마는 확인하지 않고 있었다. 외국을 나가도 항상 카톡 확인을 하며 연락하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이상했다. 나는 이모네 집에서 나오기 전까지 계속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엄마가 카톡을 확인했더라도 졸업식에 온다고 확실히 말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확인 안 한 카톡을 보니 엄마가 나에게 관심조차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모에게는 졸업식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모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 못 올 게 뻔했기 때문이다. 공연히 미안해하는 이모 얼굴도 보기 싫었다.

학교 가는 발걸음이 이렇게 무거웠던 적이 있었을까. 졸업식은 열 시에 시작이었다. 아직 두 시간 정도 남았지만, 어제 선생님은 졸업식 예행연습을 한다며 일찍 오라고 했다. 길거리로 나오니 같이 졸업하는 아이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깔끔한 옷차림에 당당한 모습이다. 그 애들 앞에서 어제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온 내 모습은 더 초라해 보일 수밖에.

학교 주변 골목에는 졸업식에서 반짝 수익을 올리려는 꽃 장사 아주머니들이 즐비했다. 나는 울긋불긋 한 꽃다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나라도 더 팔려는 아주머니들의 손님 부르는 소리가 내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했다.

‘쳇, 꽃이 뭐라고…….’

나는 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가 꽃을 좋아하는 것이 왠지 남자답지 못하고 좀생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빨간 장미 여러 송이와 안개꽃 약간으로 한 다발을 만든 꽃다발. 아무도 없이 쓸쓸한 졸업식을 맞아야 한다는 걸 저 꽃다발이 확실하게 알려 주는 것 같아 화가 치밀었다.

나는 복잡한 교문 주변을 뚫고 겨우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학교 안에는 일찍 온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학교의 상징인 칠십 년 된 굵은 느티나무 아래서 한 컷. 교단에 올라서서 한 컷. 그리고 운동장 벤치에 앉아서도 한 컷.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였다. 같은 반 기호가 나를 불렀다.

“야! 김현우! 빨리 왔네?”
“응, 애들이랑 사진 좀 찍어두려고.”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같은 반 친구에게 외롭고 쓸쓸한 모습을 보이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원래 뭔가를 감추려면 더 부풀리기 마련이다. 나는 한층 더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사진 찍자.”
“그래. 그럼 우리 저기 현관에서 찍자. 어? 저기 세정이도 보이네. 야! 이세정!”
“세에 정엉 아!”

나도 멀리 보이는 세정이를 힘껏 불렀다. 세정이는 반가운 듯 나와 기호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건물 현관에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고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실에 올라오니 이미 온 아이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미리 틀어 놓은 히터가 교실 안을 따뜻하게 했다. 칠판은 아이들이 아침에 부랴부랴 써 놓은 글과 그림으로 한가득 채워졌다. ‘애들아 사랑해’, ‘우리 영원히 잊지 말자’, ‘꽃길만 걷자’ 등 아이들이 써 놓은 글이 졸업식을 더욱 실감 나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오늘로 이 자리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매일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던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생각만 해도 울컥했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 또 학교에서 아무렇지 않게 만날 것만 같은데. 따뜻한 교실 공기와는 다르게 내 마음 한쪽은 자꾸 시렸다.

앞뒤로 앉은 아이들과 몇 마디 하고 있으려니 짝꿍 미진이가 부랴부랴 왔다.

“아휴, 늦을 뻔했네.”
“졸업식 날도 늦잠 잤냐?”
“뭐? 이게…….”

짝꿍을 하면서 늘 티격태격하던 미진이었다. 서로 장난하며 많이 친해졌었는데 헤어질 생각 하니 섭섭했다. 지금쯤 꿀밤이라도 한 대 날아와야 하지만 어쩐 일인지 미진이도 오늘은 잠잠했다. 미진이는 나를 보며 물었다.

“너네 엄만 언제 오신데?”
“어? ……어. 난 그냥 시간 맞춰서 오라고 했어. 너는?”

아이들과 어울리며 잠시 수그러졌던 엄마에 대한 원망이 불쑥 솟아올랐다. 나는 졸업식 끝날 때까지 안 보려던 핸드폰을 그 김에 꺼내 보았다.

그런데……!!

‘앗! 엄마! 봤구나.’

엄마가 카톡을 본 것이다.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그저 엄마가 카톡을 본 것뿐인데…….

‘엄마가 혹시, 어쩌면 올 수도……. 에잇!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나는 되지도 않은 기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졸업식 예행연습을 하려고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셨다. 아이들도 다 제자리에 앉아다. 조금 전 어수선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한껏 차분해졌다.

졸업식은 교실에서 방송을 통해 진행한다. 예행연습도 마찬가지이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지시하는 것을 반 아이들은 질서 있게 잘도 따라 했다. 상 받는 아이들도 제 이름을 부르면 앞으로 나가 상 받는 것을 연습했다. 나도 이번에 우등상을 받는다. 내 이름이 불리자 앞으로 나가 상 받는 연습을 했다. 예행연습이 거의 끝나갈 때쯤 복도에는 사람들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선생님은 교실 앞뒤 문을 모두 열고 복도에서 서성거리는 부모님들을 들어오라고 했다. 교실 뒤는 부모님들로 꽉 찼다. 쉬는 시간 동안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찾느라고 시끌시끌했다. 부모님을 찾은 아이들은 반갑게 엄마 아빠를 향해 달려가 애교를 부렸다. 부모님들 손에는 예쁜 꽃다발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나는 부러운 눈으로 엄마 아빠에게 둘러싸인 아이들을 보았다. 아직 부모님이 안 온 아이들은 실망하면서도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기다렸다. 나는 뒤를 보지도 두리번거리지도 않았다. 어차피 엄마는 못 올 게 분명하니까.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리면서 사방이 조용해졌다. 방송에서 이제 곧 졸업식을 시작한다고 알렸다. 아이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텔레비전 화면에 집중했다. 졸업식은 시작되었다.

국민 의례와 교장 선생님 말씀에 이어 시상식이 뒤따랐다. 나도 모르게 교실 뒤를 한 번 훑어보았다.

‘에잇! 괜히 봤어.’

역시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내 차례이다. 미진이가 선생님 호명에 앞으로 나갔다. 미진이는 우등상을 받았다. 미진이 엄마는 준비했던 꽃다발을 미진이에게 안겨주었다. 미진이는 상장과 꽃다발을 한 아름 품에 안고, 교실 뒤 다른 부모님들과 아이들을 향해 꾸벅 인사하며 활짝 웃었다. 나는 교실에서 나가고 싶었다. 이모에게 졸업식 얘기를 하지 않은 것도 후회되었다. 이런저런 생각하는 사이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선생님이 나를 보며 이름을 불렀다.
“김현우!”

나는 느릿느릿 일어나 교탁 앞으로 나갔다.

두 손으로 선생님이 주시는 상장을 받았다. 그런데 뒤를 돌아 부모님들과 아이들에게 인사하려고 고개를 숙일 때였다.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그것도 숨이 가뿐 채로.
“혀언 우으야. 헉 헉.”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어…… 엄…… 마?”
“아휴. 겨우 왔네. 아들! 졸업 축하해.”

엄마는 빨간 장미와 안개꽃이 섞인 커다란 꽃다발을 나에게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보던 부모님들과 아이들은 한껏 손뼉을 쳤다.

꽃다발을 받으려고 팔을 뻗던 나는 김이 뽀얗게 서린 엄마의 안경을 보았다. 김 서린 안경 때문에 엄마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안경 밑으로 흘러내린 엄마의 눈물을 보았다.

“엄-마-.”

 

<박영옥 프로필>

- 2015년 한국인 문학 등단
- 한국문인협회 회원
- 제8회 광진문학 신인상 수상
- 광진문인협회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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