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문제를 다룬 예술에 대하여
젠더문제를 다룬 예술에 대하여
  • 정소원 기자
  • 승인 2021.07.1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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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원/광진투데이 취재부장
정소원/광진투데이 취재부장

최근 사회현상에서 젠더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남녀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기사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일부 남성들이 여성을 매도하거나 여성들 역시 남성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보이는 등 '젠더혐오'가 만연한 사회가 되었다.  
특히 이러한 젠더혐오와 관련되서 대두되는 것은 '성식'이다. 한 때 우리사회는 '마녀사냥'과 같은 선을 잘 지키는 예능이 유행하면서 성에 관련되어 자유롭게 개방된 장을 미디어에서 마련한 적도 있었지만, 요새는 젠더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성' 관련 콘텐츠들은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지탄을 받는데 두려워 주춤하는 사태가 되었다. 혹은 젠더갈등을 부추기며 특정 성을 대상화하는 콘텐츠들이 넘치는 시대가 되었다. 예술은 열릴수록 발전한다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서 이러한 사태를 성찰해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4년 전, 한창 사회가 개방적인 담론의 장, 보다 열린 해석과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했던 장으로 방향을 나아가고 있었을 때 등장한 연극이 떠오른다.  
<옆방에서 바이브레이터 플레이>라는 연극으로, 제목은 굉장히 선정적이어서 처음에 저 제목을 봤을 때 '어떻게 저런 노골적인 제목을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연극을 다 보고 났을 때는 오히려 저 연극이 그러한 사회적 풍조를 비판하고자 저 제목을 의도적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작품은 1880년대 전기가 막 보급되던 시절의 미국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인간 복제가 낯설지 않은 우리들에게 이들이 자랑하는 성의학과 정신의학은 사이비 과학에 가까워 보이지만 당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에게는 최첨단의 산물이었다. 바이브레이터를 히스테리를 고치기 위한 의학기구로 이용하고 오르가즘을 치료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이들의 엉뚱함은 그 자체로 희극적이다. 하지만 이 희극성 뒤에는 여성문제에서부터 인종문제에 이르기까지 관계에 대한 다양한 사고의 편린이 숨겨져 있다.

극 중에서 기빙스 박사는 전기 전문가로 바이브레이터를 발명해 여성의 히스테리 치료로 유명해졌다. 히스테리는 그리스어인 '히스테리아'에서 나왔는데 이는 여성들의 자궁에 나쁜 기가 뭉쳐 있기 때문에 그것이 뇌로 올라가 신경증을 유발하는 것이며, 이것을 배출시키기 위해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해 병세를 호전시킨다는 것이다. 남편과의 잠자리에서 만족하지 못하던 여성들이나, 한 번도 오르가즘을 경험해보지 못한 여성들은 처음엔 바이브레이터를 수치스러워하지만 일단 한 번 그걸 경험하면 치료 때문에 매일 방문해야 한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기빙스 박사는 전기 진동기를 사용하여 자궁과 항문마사지를 함으로써 남녀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한다. 그의 부인은 옆방인 진료실에서 이루어지는 치료 도중에 들리는 묘한 소리와 환자들의 만족감 사이의 연관관계에 호기심을 느끼게 되고, 남편이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바이브레이터 치료로 행복하게 해준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기빙스 부인은 레오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레오는 기빙스 부인의 아기를 보살피는 유모 엘리자베스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파리로 떠난다.
유모 엘리자베스를 통해 자신이 바라는 행복이 바이브레이터 치료가 아니라 남편과의 성관계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기빙스 부인은 남편인 기빙스 박사와 진정한 사랑을 위한 소통을 시도하고 기빙스 박사는 그 사랑의 고백을 축복으로 받아들인다. 12월 눈이 내리는 겨울 정원에서 그들은 아담과 이브와 같이 기계적 도움 없이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역사적 구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보편적 주제가 펼쳐지고 현대적 감수성이 우러나는 세련된 작품이라 끌렸었다. 특히 어떤 성에 치우쳐서 내용이 전개되는 게 아니라, 작품 속 여성이 주체적으로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 통쾌하면서도 결코 남성을 무너뜨려야 할 적으로 간주하지 않고 사랑과 행복을 추구할 동반자로 여기는 감수성이 좋았다. 

극은 코미디 형식을 통해 성욕, 사랑, 그리고 결혼 생활에 대핸 우리의 무지를 유쾌하게도 진지하게 풀어간다. 돈, 명예 지위, 권력, 실용성, 이런 것들이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들임에도  편안함을 보장하지만 행복의 충분조건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캐서린 기빙스가 말하는 것처럼 비가 올 때만 우산을 쓰는 현실적인 사람들은 삶이 팍팍하고 건조할 것이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것인 가장 현실적 조건들에 어긋날 수 있는 비현실적 행위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과 관계에 대한 무지에서 출발해 사랑과 관계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인지적, 감정적 체험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여성의 적은 남성이라는 구조는 이미 유통기한이 지나버렸다. 남성 전부를 적으로 만듦으로써 여성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과 남성이 각각 인류의 절반을 이루고 있다면 이들이 동반자의 관계를 맺는 것이 보다 생산적이다. 실제로 기빙스부부의 서사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어떻게 동반자로 거듭날 수 있는지를 유쾌하게 그려낸다. 사랑은 기빙스 부부를 비롯한 모든 인물들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행복을 선사한다. 심지어 가장 약자였던 엘리자베스마저도 아이를 잃은 슬픔을 위로받고 캐서린과의 연대의 순간을 맛본다. 앞으로 젠더의식을 다룬 예술은 이러한 주제의식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 4년전에 너무 진보적으로 해결방향을 제시한 예술이 나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캐서린이 기빙스에게 우리의 미래의 행복은 비현실적인 것에 달렸다고 한다. 현실적이고 이성을 중시하는 기빙스에게 던진 대사여서 인상에 남는다. 행복한 결말이 무대 밖에서도 가능할지는 의구심이 든다. 구조적으로 주입된 젠더 경험과 관계를 정의하는 관습들은 집요하게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여러 번 우산을 집어 던지고 빗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그렇게 되면 예술도 진보하고 예술의 힘으로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믿기에.
          <smartsow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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