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물대포(상)
[동화] 물대포(상)
  • 성광일보
  • 승인 2021.07.1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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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내
수필가 /시인/아동문학가
성동문인협회 부회장
김경내

억수는 고모가 주신 새 옷을 앞에 놓고 망설이고 있다. 
맑은 날이면 만국기처럼 펄럭이며 빨랫줄에 널려 있던 시골 식구들의 낡고 빛바랜 옷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옷을 갈아입지 않은 억수를 본 고모는 그냥 한 번 방긋 웃었다.
“고모, 짐 정리해 놓고 학교 구경 좀 하고 와도 될까요?”
“그러렴. 휴대전화 꼭 가지고 다녀.”
고모 댁에서 나오자마자 시골집에 다시 전화했다. 아까 통화 못 한 형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곧이어 어눌한 말소리가 들렸다.
“어투야, 자 가써? 버써 보고 시프다.”
“어 형, 잘 왔어. 나도 형이 벌써 보고 싶어. 형 나 없어도 잘 지내야 돼.”
형의 목소리를 듣자 기어이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억수는 형이 걱정할까 봐 헛기침을 하며 얼른 명랑한 척했다.
고모가 가르쳐 준 대로 가니 학교는 집에서 가까웠다. 운동장은 시골 학교보다 좀 작았지만, 건물은 엄청 컸다. 
아저씨 한 분이 호스로 화단에 물을 주고 계셨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오냐, 너는 아직 집에 안 갔니? 몇 학년이야?"
“5학년이요. 내일부터 이 학교에 다닐 거예요. 아저씨 제가 도와 드릴까요?”
“괜찮아, 곧 끝날 거야.”
“날씨도 더운데 물 주면 시원할 것 같아요. 다른 호스 있어요?”
“저쪽 창고에 호스 있다. 옷 안 젖게 조심해라."
억수는 5학년 2반에 배정받았다. 담임 선생님께서 억수를 소개하셨다.
뒤쪽에서 한 아이가 낄낄대며 말했다.
“히히 억수래! 이름부터 촌티가 억수로 팍팍 나네.”
그 말이 끝나자 5학년 2반은 웃음바다가 됐다.
첫째 시간이 끝나는 종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서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어깨를 누르며 말했다.
“어이 찔찔이, 히야 이 찔찔이가 우리 반이 됐네.”
“찔찔이라니, 내가?”
“그럼 너 말고 누구? 길에서 전화기 붙잡고 찔찔 짜던 놈이 누구더라.”

조금 전에 억수를 놀리던 목소리다. 억수는 못 들은 척하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번에는 더 거칠게 셔츠 목덜미를 낚아챘다. 억수는 자신도 모르게 셔츠를 잡은 손을 비틀었다. 
속으로 삼키는 짧은 비명이 들렸다. 
화가 났지만, 심호흡을 하고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음 다리를 걸었다 이거지! 이게 말로만 듣던 신고식인가?'
억수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환영식을 이렇게 하는구나. 우리 정식으로 인사하자. 나는 장억수다.”
“환영식 좋아하네, 흥! 그래 인사하자. 난 강철이다. 앞으로 잘 해 보자.”

강철은 잘 해 보자며 정강이를 걷어찼다. 무척 아팠으나 빙긋 웃었다.
“오우 제법인데.”

몇몇 아이들이 야유를 보냈다.
집에 와서 보니 셔츠의 잡혔던 부분이 조금 찢어져 있었다.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까짓거 한 판 붙어 봐?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빠의 당부 말씀이 떠올라서 속을 꾹꾹 눌렀다.
'혹시 누가 싸움을 걸더라도 덤비지 말고 피해라. 당당하되 거만하지 말며, 겸손하되 비굴하지 말고. <참을 인 자>를 가슴에 새겨라.'
억수는 아빠가 하신 말씀을 다시 떠올리며 형에게서 물려받은 옷을 잘 개켜서 서랍에 넣었다. 

다음 날은 고모가 준비해 준 새 옷으로 갈아입고 학교에 갔다. 아이들이 힐긋힐긋 뒤를 돌아보며 저희끼리 뭔가를 숙덕거렸다.
억수는 강철과 화해를 하고 싶었다. 

때마침 아이들 몇 명과 강철이 다가와서 점심시간에 농구를 하자고 했다. 어떤 방법으로 화해를 청할까 고민하던 차에 반갑기 그지없는 제안이었다. 
억수네 시골집에는 아빠가 양파망으로 농구 바구니를 만들어 감나무에 매달아 주신 농구대가 있다. 농구가 유일한 운동이자 낙인 억수는 매일같이 농구를 하다 보니 묘기도 부리게 되었다. 
그 묘기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드리볼도 하고 넣기도 하는 것이었다. 
강철이 아이들을 나누어서 편을 갈라 주었다. 억수 편 아이들은 모두 키가 작고 몸이 약해 보였다. 억수가 이의를 제기했다.

“강철, 이 건 좀 불공평한 것 같은데. 양 팀 덩치가 엇비슷해야 하지 않나?”
“그런 말씀 마셔, 니 키를 봐라. 다른 애들보다 훨씬 크잖아.”
“키는 니가 나보다 크잖아.”
“따지지 마셔. 내 맘이야.”

강철은 자기편 아이들뿐만 아니라 억수 쪽 아이들까지 불러서 지시를 하고 있었다.
“너희들 내 말 잘 들어. 우리 편은 A팀이고, 억수 쪽은 B팀이야. 시합이 시작되면 공을 바구니에 넣을 생각하지 말고 억수를 공격하란 말이야. 그놈의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겠어. 특히 B팀, 한편이라고 봐주는 게 눈에 띄면 죽을 줄 알아, 알았어?”
“알았어, 대장!”

농구시합이 시작됐다. 상대방은 공을 아주 낮게 던졌다. 같은 편 친구들이 얼른 공을 잡았다. 억수는 자기에게 패스를 해 주도록 유도했으나 아이들은 허리를 굽혀서 억수 종아리 밑에서 공이 왔다 갔다 하게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경기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 사이에 공이 억수의 배를 때렸다. 이어서 머리를 때렸다. 몇 차례 더 공 세례를 받고 난 후에 억수는 사태를 짐작했다.
'그렇다면 내 특기를 보여주지.'

억수는 공을 낚아채기 위해 슬슬 리듬을 탔다. 상대편 아이들은 억수의 엉뚱한 행동에 잠시 한눈을 팔았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억수가 공을 낚아챘다. 공을 잡고서도 빠르게, 혹은 슬렁슬렁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었다.
A팀은 물론, B팀 아이들까지 당황하는가 싶더니 하나둘 웃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아예 시합도 안 하고 구경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강철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구경했다.
“이히히!! 하하하!”
“어이 촌놈, 너 뭐하냐?”

그 틈을 타서 억수는 쏜살같이 첫 골이자 승리의 골을 넣었다. 
강철은 분했다. 손목을 비틀린 것도 그런데, 농구까지 졌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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