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마음 끌어안고 달리기
[에세이] 마음 끌어안고 달리기
  • 성광일보
  • 승인 2021.07.1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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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효은/기자
어효은
어효은

달리기를 시작했다. 운동하는데 달리기만 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뛰어야지 다짐을 하고 퇴근하고 집에 와 이것저것 하다 보면 어느새 잘 시간이 되었는데 어느 날엔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 달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체력을 키우기 위함은 아니다. 달리다 보면 시시때때로 올라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난날 저질렀던 잘못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던 날을 떠올리며 미안함, 수치심, 부끄러움 등의 감정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또 지금의 걱정들도 탁탁 털어내고 싶었다. 

오늘은 휴대폰도 챙기지 않고 무작정 달렸다. 금방 숨이 차올랐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가 지며 구름을 주황빛으로 물들인 장면이 펼쳐졌다. 헉헉거리는 호흡을 잊을 만큼 아름다웠다. '저건 찍어서 남겨야 해'라고 속으로 외쳤지만, 온전히 눈 속에 담아두며 계속 달렸다. 오늘만큼은 달리는 데만 집중하리라. 그런데도 일정 속도로 달리다 보니 어김없이 생각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미움의 감정이 울컥 치솟았다. '나를 쉽게 보고 만만하게 생각했던 건 아닐까. 진심이 아니었던 것은 아닐까. 왜 자꾸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나는 사랑할 자격도 없는 것은 아닐까.' 부정적인 생각이 덮쳐오니 호흡이 더욱 가빠졌다. 달리기에 다시 집중했다. 생각일 뿐이야. 다 지난 일이야. 붙잡지 말자. 

나도 안다. 아무리 밝은 척하고 이렇게 저렇게 애를 써봐도 본래 밝은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다는 거. 사랑받고 싶어서 이런 척, 저런 척 해봐도 결국엔 다 들킨다는 거. 사람들도 모른 척하는 거라는 걸 말이다. 실제로 몇몇 지인들은 너무 애쓰지 말라고 조언해주기도 하고, 있는 그대로도 충분하다고 괜찮다고 이야기해준다. 당시에는 그렇게 애쓰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충분하다는 그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몰랐다.

지난 몇 달간 무의식 속 꼭꼭 숨겨둔 모습들이 쏟아져나왔다. 몇 개월간 안 먹었던 술을 먹으면서 결핍들이 올라왔다. 상대방에게 상처 주고 나 스스로에게도 상처를 주었다. 이제 다 울었다 싶을 정도로 많이 운 것 같은데 혼자서 몇 시간을 또 펑펑 쏟아냈다. 내면에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슬픔이 쌓여있었다는 걸 느꼈다. 상실의 아픔을 겪고 나서 충분히 슬퍼하지 못했다. 그것이 억눌려서 무의식 깊은 곳에 숨어있다가 술을 마시니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버림받았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어서 관계에서 버려질까 봐 극도로 두려워했다. 두려워하는 일은 현실이 된다고 한다. 결국, 사귀던 사람에게서 이별을 통보받았다. 모든 것이 내가 저지른 잘못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말없이 내 옆에서 우는 나를 다독여주길 아니면 그냥 옆에 있어 주길 바랐다. 나를 그냥 있는 그대로 보아주길. 깊은 상처에서 오는 결핍을 생생하게 느끼고 그런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어주지 않는 이상 내가 바라는 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결핍은 결국 결핍을 부를 뿐이다. 겉으로 보이는 내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을 채워가야 한다는 걸 아픔을 겪고 나서야 느끼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먹구름은 서서히 옅어진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어둡거나 슬프진 않다. 감정을 느껴주면 흩어지는 구름처럼 짙은 감정도 서서히 흩어진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도 괜찮고 남에게 인정받으려 애쓰기보다 스스로 인정하고 이해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에는 아픔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해준 경험과 사람에 감사하게 된다. 힘든 시기에 그 사람이 왔다가 간 거고 덕분에 숨겨두고 묻어두었던 아픔을 직면하게 되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달리면서 공허한 마음을 채우려고 찾았던 것들은 하나씩 내려놓아 본다. 익숙하게 젖어 들어있던 생각과 감정들이 하나씩 녹아 없어진다. 감정과 생각이 나인 줄 알았다. 감정과 생각이 사라지는 것이 마치 내가 없어지는 것 같아서 슬픔과 불안, 외로움을 꼭 붙잡고 있었다. 꼭 끌어안아 주었다면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가볍게 날아가 아름다운 저녁노을 하늘 어딘가에 자리 잡았을 텐데. 

생일이 아니어도 어울릴 것 같은 물건을 보면 선물하고, 보고픈 이에게 연락해서 목소리를 듣고, 만나서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사소해 보이는 행동들이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행동을 해나가며 앞으로는 나 자신을 꼭 지켜주겠다고 약속한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고 당당하게 나아가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알아가는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꾸며진 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 말이다. 앞으로도 실수하고 잘못하고 넘어지는 날도 있겠지만 그 어떤 순간에서도 나를 지켜주고 손을 잡아줄 거다. 두렵지만 그럴 용기가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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