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원이 만난 사람] 황나영 학예연구사 한양대박물관
[서성원이 만난 사람] 황나영 학예연구사 한양대박물관
  • 서성원 기자
  • 승인 2021.07.2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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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예사는 전시를 기획해서 공간으로 풀어내는 사람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배워서 대중이 감응하도록 전시하는 일에 보람을 느껴
황나영 학예사님 미안합니다. 마스크 벗고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어요. 그런데도 나는 몰랐어요. 에라잇 코로나 세상! 서성원 ⓒ

한양대 구본관은 국가 지정 문화재다. 전에 구본관을 취재할 때, 황나영 학예연구사로부터 자료를 받았다. 그 일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황나영 학예사연구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진 건 그때가 아닐까, 싶다.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보려고 한양대박물관 학예연구실을 찾아갔다. 2021년 6월 14일이다. 동료 직원들이 업무 보는 공간, 학예연구실에서 만났다. 황 학예사의 말은 백자처럼 정갈하고 조용했다. 약속 시간을 훌쩍 넘겼다. 2박 3일쯤이면 다 풀어냈을까?

한양대박물관에서 전시했던 이슬람 캘리그래피, 글자라기보다 그림에 닮은 예술품이다.

유라시아, 실크로드에서 불교미술을 만나 

“학부는 건축을 했어요. 건축은 예술과 공학이 만나는 것이고 공간을 구성하는 일이잖아요. 전 공학보다는 예술쪽으로 쏠렸던 거 같아요. 가구회사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그만뒀고, 제가 여행을 좋아하거든요, 유라시아, 실크로드에서 지도교수님이 쓴 책을 만났어요. 그래서 서울대 대학원에서 불교미술사를 공부했죠. 졸업은 했으나 막막했지요. 그러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계약직으로 2년 정도 일하게 되었어요.”
박물관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큰 기대는 안 했단다. 어려서 전주국립박물관에 자주 갔었다. 박물관의 침침하면서 가라앉은 분위기를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반전의 시간이 왔다. 

2015년 한양대 역사관 개관식 사회자 황나영 학예사.

처음 맡은 일은 무덤 속의 부장품 묘지명 전시, 일하는 즐거움을 느끼다

묘지명이라고 했다. 나는 묘지 비석에 새긴 글을 말하나보다 했었다. 아니었다. 무덤 속에 넣어두는 유물을 말했다. 조선시대 무덤에 묘지명이 들어 있단다. 무덤 주인이 언제 어디서 태어나서 어떤 일을 했는지 기록한 것인데, 도자기란다. 책의 형태로 만들기도 한단다.
“너무 재밌는 거예요. 모르는 걸 알아가는 과정이요. 즐거웠어요. 전시는 공간으로 풀어내는 작업이잖아요. 건축을 공부했으니까 더 그랬던 거 같아요. 그 일을 계기로 학예사의 일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 일로 해서 황나영 씨는 본격적으로 학예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직장에서 처음 맡은 일이 즐거운 사람은 복 받은 이들이다.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을 테니까. 처음 맡은 일은 서툴게 마련이다. 심리적 부담이 크다. 황나영 씨는 달랐다. 건축을 공부해서 전시 유물을 공간으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어려서부터 국립전주박물관을 자주 드나들었던 이력이 있어서 즐겁게 시작할 수 있었나 보다. 
 

2021년 '우주인' 전시 개막식에서 황나영 학예사

이슬람 캘리그래피 전시, 학예사의 목소리를 보다.

“2013년부터 한양대박물관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오자마자 이슬람 캘리그라피 전시회를 맡았어요. 우리나라에는 이슬람 유물이 별로 없거든요. 전시는 컨텐츠가 중요한데 컨텐츠를 확보하기 쉽지 않아서 어려웠지요. 이태원의 이슬람사원과 국내 컬렉터들의 도움도 받고, 다른 박물관에서 대여도 하고, 심지어 자비 비슷하게 터키, 우즈베키스탄으로 출장 가서 구할 수 있는 자료들도 수집해 오기도 했었어요. 그전에는 연구원으로서 보조였지만 책임을 맡아서 힘들었지요. 하지만 재미나게 일했어요. 성과도 좋았어요. 개막식 때 이슬람권 대사 부인이 열 몇 명 참석했고 평판도 좋았구요. 방송에도 나가고 그랬지요.”
전시 명칭은 '이슬람 캘리그래피 신의 목소리를 보다'였다. 캘리그래피는 이슬람어로 '핫 khat'인데 어원은 '모래 위에 남은 모닥불의 흔적'이다. 이슬람에서 캘리그래피는 신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작업이란다. 그리고 모래 위에 남아 있는 이슬람인들의 흔적이기도 할 것이다. 학예사는 옛날 사람이 살았던 희미한 흔적들을 오늘 우리가 볼 수 있도록 전시실에 재현한다. 과거 사람과 현대인이 만날 수 있게 중간자 역할을 한다. 멋지다. 

'우주인, 과학으로 풀고 예술로 빚다' 현재 전시중인 전시장에서. 서성원 ⓒ 

 

한양대 구본관이 역사관으로 탈바꿈하는 일을 맡다

“한양대에 신본관을 지으면서 2009년부터 구본관은 빈 상태로 있었대요. 제가 역사관추진위원회 간사를 맡았어요.”
이 일은 한양대의 거교적인 프로젝트였다. 한양대의 출발부터 현재까지 한양대의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맡은 것이다. 한양대 출신도 아니면서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일했을지 알 만했다.
그래서 내가 한양대 구본관에 대해 취재했을 때 황나영 학예사가 답변을 주었던 것이다. 한양대 출신이 아니면서 한양대의 과거와 현재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학예사여서   그랬다.
그렇다고 학예사가 마냥 낭만적인 것은 절대 아니다. 황 학예사는 대학박물관 학예사임에도 행정 업무까지 겸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국공립박물관에서 근무하는 학예사는 업무가 비교적 명확하다. 그 외에 박물관 학예사는 학예사 업무 외에 일을 맡아야 한단다. 대학박물관에서 일하는 학예사도 많다. 대학박물관 중에 한양대박물관은 내실 있게 운영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렇지 못한 다양한 기관에서 근무하는 학예사는 고충이 많다고 한다.

가곡 한 세기, 여행, 응답하라 한양, 등등 수많은 전시를 기획하고 전시하고 

황나영 학예사는 일 년에 두 번 정도 전시를 기획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한양대박물관에서 꽤 많은 전시를 기획했을 것이다. 가곡을 소재로 전시한 것은 신선했다. 그리고 여행을 테마로 전시를 했을 때는 우리나라 배낭여행을 효시라고 할 수 있는 김찬삼 씨의 관련 자료를 전시하기도 했다고. 이때 의욕이 앞서서 다 보여 주려 한 것을 반성하기도 했다고. 전시는 '전체'가 아니라 부분의 '선택'이라는 것을 깊이 마음에 새겼다고 했다. 그게 기획이라고. 이 말을 들으면서 어떤 경지가 느껴졌다. 많다고 풍족한 것이 아니고 비워놨다고 공허한 것이 아니라는 것. 건축을 공부한 황 학예사가 전시 디자이너로서 업무 능력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계기였지 싶다. 

'이슬람 캘리그라피, 신의 목소리를 보다' 전시 포스터.

 

왕십리와 사근동, 한양대를 아우르는 기획 전시는 언젠가 해야 할 과제

예산에 구애받지 않고 전시를 한다면 어떤 걸 하고 싶냐고 물었다. 황 학예사 머릿속은 전시 아이템이 가득하다. 깜짝 놀랄 걸 각오하고 물었다. 나는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박물관에 소장한 유물이 많아요. 그것들을 돋보이게 하는 전시를 하고 싶어요.”
한양대는 하남에 있는 이성산성을 86년부터 지금까지 유물 발굴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문화재 발굴하는 기관들이 많아져서 대학은 발굴 참여가 적은 편이라고. 한양대는 발굴을 계속해서 자체 소장품이 많다. 구석기 시대 전곡리 돌도끼부터 현대 유물에 이르기까지. 
한양대가 왕십리, 사근동에 있어서 지역과 연계된 전시도 해야 할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살곶이다리, 태조 이성계, 마조단이 한양대 안에 있거나 한 팔 거리 안에 있다. 그 외에도 대학생들의 주거문화와 관련된 전시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요즘은 '청년'을 키워드로 하면 보수층에게까지 먹히는 세상이다. 황 학예사가 청년 대학생들의 주거에대한 전시를 서둘러 했으면 좋겠다. 내가 보고 싶은 전시여서 하는 얘기다. 

모르는 것을 배워가면서 일하는 것이 학예사의 매력 

학예사의 매력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공부가 좋다는 것. 
“새로운 것을 기획하고 새로운 것을 공부하는 것.”
최근엔 입자물리학은 공부했단다. 지금 기획 전시 중인 '우주人 과학으로 풀고 예술로 빚다'를 준비하면서 그랬단다. 올해 하반기를 준비 중이란다.
“진공관, 트렌지스터, 메모리 이런 걸 공부하고 있어요. 컴퓨터 전자공학을 기획하고 있거든요.”
한양대 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 컴퓨터를 소장하고 있다. 미국에서 돌아와 한양대에 재직했던 이만영 교수가 만든 것이다. 
성수동에서 바라보면 한양대는 철옹성처럼 보인다. 지역사회에 관심이 없다는 말들도 많다. 그런 이미지를 벗게 하는 이가 있어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리고 황나영 학예사의 긍정적인 마인드와 열정을 응원하고 싶었다. 한국 박물관의 도약을 위하여.

학예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한 황나영. 서성원 ⓒ
박물관에 이렇게 분위기 있는 공간이 있었다. 서성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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