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물대포(하)
[동화] 물대포(하)
  • 성광일보
  • 승인 2021.07.2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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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내
수필가 /시인/아동문학가
성동문인협회 부회장
김경내

강철은 농구시합에 참여했던 아이들을 괴롭히며 분풀이를 했다. 아이들이 잘못했다고 빌었다. 아이들이 빌수록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자기의 '짱'자리가 여전하다는 걸 확인시키는 오기이기도 했다. 
한 학기가 지나 겨울방학이 곧 다가오건만 억수와 강철 사이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겨울방학을 며칠 앞두고 강철이 억수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아빠의 말씀이 생각나서 피하려고 했지만, 강철은 줄기차게 물고 늘어졌다. 몸싸움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억수지만 이 도전을 언제까지 피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이 마지막 결전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일요일 저녁 무렵의 학교 운동장은 괴괴했다. 지금이라도 이 싸움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운동장을 둘러보고 있는데 창고 뒤에서 아이들이 나왔다. 농구시합 때 억수와 같은 편을 먹었던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쭈뼛쭈뼛 다가오더니 뜻밖의 말을 했다.

“억수야, 그동안 미안했어. 오늘 싸움에서 네가 이겼으면 좋겠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도 힘을 보탤게.”
“우리도 이제 강철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어.”

친구들의 말을 들은 억수는 무척 기뻤다. 
'드디어 나에게 친구가 생긴 건가!'

기쁨도 잠시, 억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무슨 소리야? 나는 강철을 이길 수 없어. 그리고 강철은 혼자 나올 텐데 니들이 도와주면 불공평해. 지더라도 나 혼자 싸울 거야.”
“강철은 혼자 나오지 않아. 강철을 따르는 졸병들과 같이 나올걸."

친구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철이 나타났다. 역시 많은 아이와 함께였다. 다들 여유만만하게 걸어오다가 억수 주위에 있는 아이들을 보고 놀랐다. 
“너희들은 뭐야? 왜 그쪽에 있어? 일루와.”

아이들이 꼼짝도 안 하자 상황파악을 한 강철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아유 저것들을 그냥. 말로 할 때 이쪽으로 와.”

그래도 아이들이 움직일 기색이 없자, 경고도 없이 강철이 억수를 공격했다. 그것이 신호탄이 되어 양쪽 아이들이 뒤엉켰다. 생각지도 않은 패싸움이 되어버렸다. 그냥 뒤엉켜서 엎치락뒤치락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일에 단련이 되어 힘깨나 쓰는 억수였지만 강철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강철은 유치원 때부터 익힌 태권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억수의 코피가 터졌다. 피를 본 억수는 무의식중에 수돗가로 달려갔다. 억수 쪽 아이들은 억수가 많이 다친 줄 알고 따라갔다. 수돗가에 모인 아이들도 형편없이 당했다.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친구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억수는 코피를 닦는 것도 잊어버리고 소리쳤다.

“그래 지금부터 진짜 전쟁이다. 너희들 저쪽 창고에 가서 호스 있는 대로 다 갖고 와. 그리고 수도꼭지에 꽂아. 내가 물대포 시범을 보일 테니까 잘 보고 따라 해.”
“물대포? 그거 나도 할 수 있어.”   “나도 텔레비전에서 봤어.”
“나도 경찰들이 농민들한테 물대포 쏘는 거 봤어.”

의외로 텔레비전에서 그 장면을 본 아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창고 쪽으로 뛰어갔다. 
강철의 눈에는 아이들이 억수를 버리고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다. 강철은 '그러면 그렇지.' 하며 자기편이 보는 앞에서 억수로부터 항복을 받으려고 아이들을 거느리고 거들먹거리며 억수를 향해 오고 있었다. 
강철이 억수 앞에 섬과 동시에 수도꼭지와 호스의 연결이 끝났다.

“쏴라!”
억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물줄기가 세차게 뻗어 나갔다. 이편저편 따질 겨를도 없이 무작위로 쏘아대는 물줄기에 양쪽 아이들이 모두 흠뻑 젖었다.
재채기 소리가 운동장에 가득했다. 강철 쪽 아이들이 하나둘 후퇴하기 시작했다. 강철이 가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이미 아이들은 거의 다 돌아갔다. 강철 혼자 주먹을 불끈 쥐고 씩씩거리고 있지만 추워서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강철은 억수를 향해 일대일로 다시 한 판 붙자고 했다. 억수 쪽 아이들이 합창이라도 하듯이 '턱도 없는 소리'라고 외쳤다.
억울해하며 강철도 돌아갔다.

억수 쪽 아이들만 남았다. 남은 아이들 역시 물에 빠진 생쥐 꼴이다. 온몸이 금방 굳어버릴 것처럼 추웠지만 아무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만세를 불렀다.
학부모들이 교장실로 몰려 왔다. 언성이 높아졌다. 개중에는 주동자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넘기자는 사람도 있고, 전학을 보내는 중징계를 받게 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문밖에 서 있던 억수가 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따가운 눈총들이 쏟아졌다.

엄마 몇 명이 억수에게 쏘아붙였다.
“물대포라니, 어디서 그런 못된 것을 배웠니?”
“그러게 말이야, 어디서 그런 걸 배웠니?”
“어머 재 좀 봐, 어른이 묻는데 대답도 안 하네”

억수는 고개를 숙인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텔레비전에서... 어른들이... 잘못했습니다.”

잠시 찬물을 끼얹은 듯 숨소리만 들렸다. 
“어른들이 하는 걸 보고 배웠네.”

정적을 깬 누군가의 말에 당황한 학부모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싸움에 참여했던 아이들은 병원에서 주사도 맞고 약도 받았다. 감기가 다 낫자 억수는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모았다. 
“친구들아, 나 때문에 괜히 고생했다. 미안하다.”
아이들이 입을 모아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야, 우리 스스로 참여한 싸움이야.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일이었어.”
“해결이 되기나 했으면 좋겠는데... 일이 더 악화한 것 같아.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강철 쪽 아이들에게 내가 사과를 해야겠어.”
“겨우 강철의 콧대를 꺾어놨는데 사과를 하겠다고?”

아이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흥분했다. 억수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준비해 두었던 상자를 꺼냈다. 아이들이 상자 앞으로 모여들었다. 억수는 아이들과 작전을 짰다.
억수의 연락을 받고 강철이 자기 쪽 아이들을 데리고 억수네 집으로 왔다. 방 안을 들여다보니 억수가 보이지 않았다. 강철이 수상히 여기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바로 그때, 억수가 호스를 들고 나타나서 소리쳤다.
“한 명씩 방 안으로 들어가. 안 들어가면 또 물대포를 쏠테다.”

강철이 주먹을 불끈 쥐고 싸우려고 대들었다. 억수는 호스를 얼른 강철 쪽으로 돌려서 정말 물대포를 쏠 것처럼 을렀다. 그 사이에 아이들이 울상을 지으며 한 명씩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방안에 들어서자 난데없이 빨간 사과가 한 알씩 날아왔다. 아이들은 얼결에 사과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강철이 들어갔다. 억수도 얼른 따라 들어갔다. 억수가 사과 하나를 강철에게 내밀며 말했다.

“너 사과 받을래? 물대포 받을래?”
강철이 방안을 둘러보았다. 누구의 편도 아닌 친구들이 사과를 먹고 있다. 강철이 머쓱하며 대답했다. 
“당연히 맛있는 사과지.”

강철이 사과를 받았다. 아이들이 함성을 질렀다. 
“얘들아, 감기로 고생했지? 미안하다.”
억수가 강철과 아이들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했다. 강철도 뒤통수를 긁적이며 억수와 아이들에게 사과했다. 
억수와 강철이 화해를 하자 서로 부둥켜안고 뒹구는 아이, 감격했다며 눈물을 찔끔찔끔 짜는 아이들의 뜨거운 우정으로 방안이 후끈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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