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이안매큐언의 <속죄>, 속죄가 필요한 우리사회
[편집국에서] 이안매큐언의 <속죄>, 속죄가 필요한 우리사회
  • 성광일보
  • 승인 2021.08.1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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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원/취재부장
정소원/취재부장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죄를 짓고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밝혀지지만 않았을 뿐,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 갇혀 타인을 판단하고, 결코 합리화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한 상상력을 통해 함부로 죄를 짓고 살아가는 일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그 죄는 어떻게 속죄될 수 있을까? 혹은 속죄한다고 해도 진정한 속죄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소설 초반부에서는 여러 인물의 시점을 교차시키며, '죄'의 탄생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여준다. 또한 작가는 브라이오니가 떠안고 살게 될 죄의식이 사실적 폭력이 아닌, 상상에 의한 폭력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과 상상력에 의한 폭력이 현실화되면서 실제로 다른 사람의 삶에 미친 영향과 관계에 미친 영향에 대해 치우지지 않는 관점으로 그려내고 있다. 또한 이 모든 사건을 전쟁과 엮어내어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작가가 소설에서 독자들에게 나타내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린 시절의 브라이오니 성격이다. 어린 브라이오니는 자신의 관점에 갇혀 자기가 생각한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다. 즉,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브라이오니의 방은 방 안의 모든 사물이 브라이오니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질서 정연하게 전시되어 있다. 자신이 상상하는 대로 배치할 수 있는 장난감들은 브라이오니만의 질서에 맞추어 가지런히 진열되어있다. 또한 브라이오니는 자신의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세상은 완벽하고, 결점이 없을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 

결말 부분에서 브라이오니는 평생을 후회 속에서 속죄하며 살아간다. 3장의 마지막에서는 용서를 구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지만 사실은 브라이오니가 이미 수십년 전에 죽은 세실리아와 로비에게 속죄받기 위해 소설을 쓰는 것이 진짜 결말이다. ㅂ라이오니는 “지난 세월 자신을 괴롭혀온 숙제가 이제야 마무리 되었다.'고 한다. 브라이오니의 말도 안되는 상상력으로 인해 억울하고 슬프게 이루지 못한 세실리아와 로비의 비극이 이 말 한마디로 속죄받을 수 있는 것이던가? 장면을 읽으면서 세실리아와 로비 본인이 아닌데도 브라이오니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나였다. 이 속죄에는 속죄를 받아야 할 사건의 당사자들이 살아 있지 않으므로 유효한 속죄가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이 브라이오니의 속죄는 한계가 있다고 느껴졌다.

또한 이 소설의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끝맺은 것도 브라이오니의 속죄 자체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사실 로비와 세실리아는 죽게 되어 결코 행복한 결말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또한 둘의 사랑을 행복하게 그려낸 소설의 결말은 이제 당사자는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소설이 되어버렸다. 소 즉 소설가는 마치 자신의 소설 세계 속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신과 같은 존재이다. 소살가였던 브라이오니는 어떤 방식을 통해, 또 누군가에게 용서를 받아야 하는 지에 대해 깊이있는 고민을 한 결과, 브라이오니는 자신이 속죄를 시도했다는 것이 혼자 이미 속죄 그 자체라 결론짓는다고 생각했었다. 결코 브라이오니가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변하지 않는 생각까지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확장시켜서 생각해보면, 소설 속에는 단순히 브라이오니 개인의 속죄만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로비의 고통과 전쟁의 잔혹함에 대해 속죄하고자 하는 로비의 모습을 담은 것은 모두 브라이오니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브라이오니의 상상력은 결국 공감을 할 수 없는 사람들과 상상력을 적절히 발휘할 수 없는 이들에 대한 따끔한 지적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진짜 죄를 저지른 마셜과 롤라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데, 이 역시 자신들의 과오를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넘치는 사회 속에서 브라이오니의 죄를 직면하는 태도와 그것을 속죄하는 것이 늦었다 할지라도 숭고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브라이오니가 책의 결말을 현실과 다르게 써내려간 이유는 로비와 세실리아의 감정에, 균형잡힌 상상력을 통해 완전히 이입했으며, 그 간절한 소망에 공감하여 그것을 자신의 소설 세계에서라도 영원히 남기고자 했기 때문이다. 상상을 기반으로 로비와 세실리아의 행복한 결말은 소설이 남아있는 한 계속해서 남아있을 것이라는 브라이오니의 답변처럼, 이 소설이 남아있는 동안 이 소설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상상력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지함, 공감 능력의 부재에 대해 끊임없이 지적할 것이다. 모든 이들의 생각과 관점을 납득 가능하게끔 서술 한 것 역시, 일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행동에서 타인에 대한 상상력, 공감의 작은 부재가 얼마나 큰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를 지적하고 있다. 

어쩌면 작가인 이언 매큐언은 일부러 브라이오니를 소설가로 설정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를 지었어도 삶은 계속되며, 그 삶 속에서 때로는 죄를 잊고 살아가도 불쑥불쑥 떠오르는 죄를 마주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죄를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하고 잊지 않는 다는 것, 내 죄로 인해 망가진 다른 사람의 인생과 그것이 자신의 삶이 끼치는 영향에 대해 새각한다는 것. 이 생각으로 바라본다면  브라이오니의 속죄는 어쩌면 성공한 것일 것이다. 

우리들은 브라이오니와도 다를 바 없다. 문제는, 우리는 속죄를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쯤 늦었어도 브라이오니와 같은  속죄를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smartsow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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