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공대왕(犬公大王) 납시오!
견공대왕(犬公大王) 납시오!
  • 송란교
  • 승인 2021.09.05 13: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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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 / 논설위원
송란교 / 논설위원

개의 변신은 무죄, 사람의 변심은 유죄인가? 이제 개가 영어를 하고 사람을 가르치는 세상이 되었다. 존경받는 강아지를 gsgg라 부르면 가짜뉴스나 허위사실 유포죄로 엄하게 다스릴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불경죄로 다스려질 모양이다. 개가 어느덧 사람들의 상전이 되어 나타났다고 세상이 시끄럽다. 개들의 변신 폭과 속도가 늦은 봄 초목의 색상 변화보다 더 빠르니 눈에 확 튄다. 그동안 사람 마음은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으니 변심했다고 손가락질을 받게 생겼다. 속 깊은 물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데 겉으로 보면 미동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보니 개들이 오해할만하다. 다 큰 어른이 어찌 한 점 바람에 흔들릴 것이며, 구름이 초승달을 가린다고 울어 댈 것인가? 봄이면 파릇한 새싹, 여름이면 땀에 젖은 푸르름, 가을이면 토실토실한 오곡백과, 겨울이면 수북이 쌓이는 하얀 눈을 보고 누가 변신했다고 나무랄까. 시간이 지나면서 시시때때로 변하는 그것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최근에 트로트 가요가 유행하다 보니 대부분의 방송사가 트로트 가요 경연대회를 경쟁적으로 도입하였다. 이를 따라 하듯 견공들의 막말 대잔치가 유행하니 너도나도 막말 경연대회를 열어야겠다고 한다. 출연할 견공은 무궁무진하고 시청률은 전혀 걱정할 것이 없다고 큰소리를 친다. 그러면서 역사에 남을 견공 막말 대잔치 우승자를 심사권이 전혀 없는 이웃 사람보고 투표로 뽑아달라고 야단들이다. 차라리 노래방 기기를 이용하거나 AI 로봇을 시켜 판가름내면 될 일을 왜 사람들의 투표로 결정짓겠다고 하는지 그 속내가 궁금할 따름이다. 염치없이 막말 잘하는 견공을 찾아내려면 네모난 상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아야 하고 듣기 싫은 말도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 한다. 견공대왕이 하시는 말씀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기의 유행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예전에는 개가 자기를 좋아하는 주인 앞에서만 꼬리를 흔들었다. 요즘에는 개가 자기의 스트레스를 풀어달라고 주인을 향해 큰소리를 친다. 주인이 재롱을 떨지 않으면 가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아무 곳에나 똥을 싸며 주인을 개무시한다. 개가 사람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형국이다. 졸병을 줄 세우고 앞장서서 끌고 가는 장군처럼, 대왕이 신하를 부리는 듯하다. 손자 손녀의 귀여운 자리를 견공대왕(犬公大王)이 차지한 지 오래다.

개는 영어로 dog이라 한다. 그런데 개가 날뛰면 세상이 뒤집힌다. 그래서 dog가 god(신)이 된다. 견공을 뛰어넘는 견신(犬神)이 되는 것이다. 개띠 해도 아닌데 벌써부터 개들이 판을 치니 온 누리가 개판이 될까 걱정스럽다. 군에 갓 입대했던 이등병 시절에는 예의염치나 삼강오륜이 물구나무섰다면서 선임병에게 오지게 기합받은 때도 있었다. 혹여 ‘개판’이라는 말도 불경죄가 되면 어쩌나! 술주정하는 사람을 보면 개가 되었다고 말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말하면 아니 되겠지요? 개를 개라 부르면 아니 되고 ‘개님’이나 ‘견공’이라 높여 불러야 하는 세상이다. 강아지, 송아지, 망아지는 어떻게 불러야 할까? 이를 주객전도(主客顚倒)라 하는가, 인구전도(人狗顚倒)라 하는가?

사람이 개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세상, 그 상전의 비위를 건들면 안 된다. 나의 헝클어진 머리는 손질할 시간이 없어도 견공의 털은 잘 다듬어주어야 한다. 나는 싸구려 월남치마를 입을지언정 견공에게는 비싼 옷을 입혀야 한다. 나는 굶어도 견공에게는 비싼 고기를 바쳐야 한다. 개가 대로에 납시면 길옆으로 비켜서서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왜냐면 그 녀석이 나의 상전이니까! 상전으로 모시는 개, 그 개가 나를 보고 빨리 뛰라 한다. 외출할 시간이 되었다고, 쇼핑하러 가야 한다고 짖어댄다. 이제는 개가 정치를 하겠다고 한다.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니 광장을 뛰어다녀야겠다고 한다. 잘난 모습 뽐내겠다고 예쁘게 치장해달라고 한다. 이를 어쩌나!. 사람에게는 예의범절이라는 문화가 있었는데 개에게도 그런 상식이 통할까?. ‘저 사람 개 같은 놈이네’, ‘개 소리 하고 있네’ 하면 존경하는 말로 알아듣는다. 개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야단이다. 나는 언제부터 ‘개봇’(개가 조종하는 로봇)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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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신 2021-09-05 19:15:09
재밌는 글 읽으며 잘 쉬었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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