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겨울 꽃 이야기
[소설] 겨울 꽃 이야기
  • 성광일보
  • 승인 2021.09.2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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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당
소설가, 시인·성동문인협회 이사
김근당

매화꽃

난감한 마음으로 돌아온 당신을 반겨주는 것은 아이뿐이었습니다. 아이는 밥살이 올라 예뻐졌고, 당신도 잘 따랐습니다. 비록 열흘간이지만 당신이 식당에서 좋은 것만 얻어다 먹였고, 정을 쏟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는 햇볕 따뜻한 날이면 밖에 나와 당신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장교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통신대장이 바람을 피워 생긴 딸이라느니, 마누라가 아이를 맡겨놓고 도망갔다느니, 차마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참에 아이의 부모를 찾으러 갔던 당신이 사정을 보고하자 통신대장은 버럭 화를 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겠는가? 박 하사! 이 아이를…민간인에게 넘기는 수밖에.”

당신은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이 첩첩 산중에 누가 어린 아이를 맡겠습니까? 소위님!”
“진부령을 내려가면 간성도 있고 속초도 있다. 그곳에 가면 경찰서도 있고 혹시 고아원도 있을지 모른다.”

통신대장은 단호했습니다. 대대장에게 보고하여 그곳까지 차로 보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아이를 그런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경험했던 고아원이었고, 밤새도록 당신과 함께 사경을 헤맸던 아이였습니다. 
“소위님! 이 아기는 제가 키우겠습니다.”
“박 하사! 미쳤나? 여기는 군대야. 더구나 언제 어떻게 출동해야 할지 모르는 최전방이라고! 나는 더 이상 이 아기를 내 숙소에 둘 수 없다.”
“소위님! 조금만 더 여유를 주십시오. 제가 어떻게라도……”
“어떻게는 무슨 어떻게야! 신참 하사가…… 지금이라도 당장 대대장님께 보고하겠다.”
“아닙니다. 이 아이는 저의 아이입니다.”

당신은 단호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했는지 당신도 몰랐습니다. 
“그래 무슨 방법이 있는가?”

화를 내던 통신대장도 당신의 말에 어안이 벙벙한 듯 했습니다. 
“소위님! 저를 후방 부대로 전출시켜주십시오. 그곳에 가면 민간인과 쉽게 접촉할 수 있을 것이니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말했습니다.
“내게 그런 능력이 있는가?”

통신대장은 화를 냈지만 당신의 간청을 버리지는 안았습니다. 대대장에게 당신이 C.W통신을 잘하고 사단 통신대에서도 C.W통신병을 보충해야하는 모양이니 전출 건의를 하자고 했습니다. 전출명령은 생각보다 빨리 내려왔습니다. 당신은 홍천에 있는 사단의 통신 중대 무선 소대로 전출 명령을 받았습니다. 

버스를 타고 홍천에 도착한 당신은 부대에 들어가기 전에 아이를 맡길 곳 알아보기 위해 어린이집으로 가보았습니다. 생각나는 것이 어린이집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집은 이십사 시간 아이를 맡아주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딱한 사정 이야기를 들은 원장은 생각 끝에 자신의 친척집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중년의 이모가 늦게 얻은 아들 하나를 데리고 어렵게 사는 집이었습니다. 원장의 이모부는 아파트 경비원이었고 아들은 중학교 일 학년이었습니다. 이모는 선천성 소아마비로 다리를 조금 절룩거렸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착한 이모는 아이를 기꺼이 받아주었고, 당신은 장기하사 봉급을 양육비로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홍천읍 연봉리 88-5번지가 내 호적지가 되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입양되었고, 당신은 호적에 나를 올렸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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