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겨울 꽃 이야기
[소설] 겨울 꽃 이야기
  • 성광일보
  • 승인 2021.10.15 12: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근당/
소설가, 시인·성동문인협회 이사
김근당

매화꽃

이름은 박매화, 나이는 세 살, 박영식의 딸로. 나이는 작고 어리게 보여서 세 살이라고 했고, 이름은 눈 속에 피어 있던 매화꽃이라고 '매화(梅花)'라 지었다고 했습니다. 

동백꽃

저는 일 년여를 홍천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햇볕 따뜻한 쪽마루에 앉아 당신을 기다리던 기억만 있을 뿐입니다. 그 후로 강릉시 송정동에서의 생활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당신은 송동이 때문에 그때의 상황을 힘들여 말했지만 저는 대부분의 일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른 키와 비슷한 소나무들이 넓게 깔린 솔밭이 있고, 솔밭을 걸어 나가면 넓은 바다가 펼쳐져있었습니다.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몰려오는 파도가 내 작은 가슴을 송두리째 빼앗아갈 것 같았습니다. 솔밭 가운데에는 솔잎 색깔의 텐트가 쳐져있었습니다. 저는 그 텐트 속에서 당신과 또 두 명의 군인 아저씨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두 명의 군인 아저씨 중에 한 명은 발전 병이었고 또 한 명은 당신의 조수였습니다. 텐트 안은 꽤 넓었습니다. 한 쪽 벽에는 커다란 장비가 설치되어 있고, 당신은 그 앞에 있는 책상에 앉아 삐,삐,삐삐 하며 무전을 치곤했습니다. 군인 아저씨들은 저를 통신대의 마스코트라고 하며 귀여워했습니다. 당신의 조수 아저씨는 텐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삼거리 구멍가게에 저를 데리고 가서 제가 고르는 과자와 사탕을 사주기도 했습니다. 

당신은 그곳 통신대의 파견 대장이었습니다. 저도 잘 알고 있는 그때의 일을 당신은 송동에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그곳에 가게 되었고, 또 어떻게 엄마를 만나게 되었는지를……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 당신이 했던 말들을 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제가 다섯 살인지 여섯 살인 때의 일이었으니까요.  

동해안 지역으로 무장공비들이 침투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때 반공교육시간에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무장공비들은 십오 명씩 조를 편성해서 아군복장, 등산복, 신사복으로 위장하고 강원도 지역을 휩쓸고 다니며 게릴라전을 폈고, 산간 주민들을 모아놓고 남자는 남로당에, 여자는 여성동맹에 입당하라고 총검으로 위협하며 다녔습니다. 그 무장공비들을 소탕하기 위해 당신이 있던 사단의 일개 연대가 동원되었고, 사단의 통신 중대에서도 작전지역의 상황보고를 위해 통신대가 파견되었다고 했습니다. 토벌 작전은 이 년이 넘게 계속되었고 그때 당신은 그곳에 파견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곳 생활이 행복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행복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아마도 그곳에 간 후 두 달쯤 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들어간 집 아주머니도 엄마처럼 저를 돌보아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몸매도 얼굴도 예쁘고 성격이 활달한 아주머니였습니다. 당신은 통신대에서 가까운 그 집에 가서 외아들인 이승기라는 초등학생의 공부를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저를 맡기는 대신에 아이의 과외공부를 맡기로 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때 이승기는 초등학교 삼학년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젊은 것 같은데 벌써 그만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또 이상한 것은 그 집에 아저씨가 없이 아주머니가 아들 하나만 데리고 밭농사를 지으며 사는 점이었습니다. 통신대 천막이 쳐져있는 솔밭을 나가면 동네길이 가로질러있고, 그 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아주머니 집이 있었습니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대청마루가 있고 그 왼편에 안방과 작은 방, 그리고 오른쪽으로 또 하나의 방이 있었습니다. 안방에는 아주머니가 작은방에는 이승기가 그리고 대청마루 건너 떨어져 있는 방이 제 방이었습니다. 방에는 메주 덩어리도 매달려있고 감자자루며 곡식자루 같은 것들이 한쪽에 쌓여있기도 했습니다. 당신도 때로는 통신대를 발전병과 조수에게 맡기고 집에 와서 나와 함께 자기도 했습니다. 겨울에도 춥지 않았습니다. 제 방에는 아궁이가 따로 있고 아주머니가 군불을 넉넉히 때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당에는 동백꽃이 빨갛게 피어있었습니다. 동백나무도 한 그루가 아니었습니다. 아주머니가 동백꽃을 좋아하는 모양이었습니다. 겨울에도 꽃이 빨갛게 피어 있었고 때로는 하얀 눈을 소복이 안고 있는 꽃이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했습니다. 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설화야! 동백꽃이 참 탐스럽지? 아줌마는 저 동백꽃을 보면서 지금껏 살아왔단다. 승기가 두 살 때 아버지가 북쪽으로 납치되어 간 후 저 붉은 꽃을 보면서 마음을 달래곤 했지. 그런데 이제 저 꽃도 시들하구나."
  아주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말했습니다. 나는 아주머니의 말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아주머니가 동백꽃을 특별히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주머니가 동백꽃을 닮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동백꽃처럼 활달하고 정이 많은 아주머니였습니다. 저는 그런 아주머니가 참 좋았습니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아주머니는 파도가 치는 날이면 바닷가에 나가 미역을 건져 올렸습니다. 높은 파도에 떠밀려오는 미역 줄기를 긴 장대 끝에 매단 갈고리로 끌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동네 여자들은 파도에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미역을 건지느라 야단들이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옷이 다 젖은 몸으로 밀려오는 파도 소리보다 더 높은 소리를 지르며 웃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건진 미역을 잘 말려 시장에 팔면 돈이 되는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뒤에서 리어카를 지키며 아주머니를 보고 있었습니다. 몸이 날렵한 아주머니는 여자들 중에 미역을 제일 많이 건져 올렸습니다. 아주머니는 큰 젖무덤의 검은 젖꼭지가 드러나도록 젖은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보며 '우리 설화가 리어카를 잘 지키고 있으니 든든하네.'하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나는 그런 아주머니가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그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마당가의 동백꽃이 시들어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녁을 먹은 후 당신은 통신대로 갔고,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마당가에서 당신을 배웅하던 아주머니가 나를 꼭 끌어안고 말했습니다. 
“설화야!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지? 내가 설화 엄마 할까?”

나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아주머니의 말이 참말인지 아닌지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기뻐서 다음날 당신에게 말했습니다. 아주머니가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아주머니가 엄마하자고 했다고. 그러자 당신이 말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특별시 광진구 용마산로128 원방빌딩 501호(중곡동)
  • 대표전화 : 02-2294-7322
  • 팩스 : 02-2294-732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연
  • 법인명 : 성광미디어(주)
  • 제호 : 성광일보
  • 등록번호 : 서울 아 01336
  • 등록일 : 2010-09-01
  • 발행일 : 2010-09-01
  • 발행인 : 이원주
  • 편집인 : 이원주
  • 회장 : 조연만
  • 편집이사 : 김광부
  • 논설주간 : 김정숙
  • 자매지 : 성동신문·광진투데이
  • 통신판매 등록 번 제2018-서울광진-1174호
  • 성광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1 성광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gilbo@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