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겨울 꽃 이야기
[소설] 겨울 꽃 이야기
  • 성광일보
  • 승인 2021.10.27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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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당/소설가, 시인·성동문인협회 이사
김근당/소설가

동백꽃

“아줌마가 그렇게 좋아? 우리 설화가 좋다면 그렇게 할까?”
당신도 아주머니와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꿈만 같았습니다. 엄마가 생기다니…  거기다 제가 좋아하는 아줌마가…  저는 행복했습니다. 아줌마를 엄마라고 부르고 승기 오빠와도 더욱 친해졌습니다. 승기 오빠도 당신이 공부를 잘 가르쳐주어서 그런지 당신을 좋아했고 성적도 많이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그전보다 더욱 저를 예뻐하고 맛있는 것도 자주 만들어주었습니다. 당신도 그때부터 집에서 자는 날이 많았고, 자다가 깨어보면 당신은 옆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엄마가 된 아주머니는 더욱 활달해졌고 생기에 넘쳤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웃고 떠들기도 하고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밭을 드나들며 일도 열심히 했습니다. 이웃 아주머니들도 엄마 집에 놀러 와서 수다를 떨고 삐 삐 삐 하며 무전치는 소리를 들으며 젊은 군인하고 한 집에 살아 좋겠다고 엄마를 놀리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그래 좋다. 너희들은 평생을 살아도 모를 걸.'하며 한바탕 웃음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았고, 가을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해바라기 꽃이 고개를 꺾고 낙엽이 떨어질 때였습니다. 우리 집에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여자들과 잘 웃고 떠들던 엄마는 혼자 지내는 날이 많았습니다. 동네 여자들도 엄마에게 놀러오지 않았습니다. 동네 여자들이 쉬쉬하면서 엄마를 따돌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남자 어른 두 명과 여자 어른 한 명이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저도 한두 번 보았던 승지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였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처음 보는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말없이 대청마루로 들어서는 어른들의 찬바람에 얼른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엄마가 저에게 와서 당신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엄마의 얼굴이 창백해 보였습니다. 저는 통신대 천막으로 뛰어가 당신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굳은 얼굴로 집으로 와 엄마 방으로 들어가고 조금 있자 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여태 하숙을 치는 줄만 알았는데 이게 무슨 꼴입니까? 동네 창피하게. 제수씨는 낯도 없습니까?”
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저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대청마루로 나가보았습니다. 승기 오빠도 대청마루에서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아우님! 어쩌려고 아이까지……”
“죄송합니다. 먼저 말씀을 못 드려서…… 승기 엄마와 저는 함께 살기로 했습니다. 이제 결혼식도 올리고……“

당신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자 당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큰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보아하니 당신은 근본도 없는 사람 같은데…… 데리고 다니는 여자 아이는 또 어떤 아이고! 거기다 나이도 일곱 살이나 어리면서…… 이게 말이나 됩니까?”
승지 큰아버지였습니다.
“우리는 서로 어려운 처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어르신!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풍파를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당신은 간곡하게 말했습니다.
“자네도 같은 생각인가?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이……”

승기 큰어머니였습니다. 
“예. 저로서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였습니다. 
“아우님! 이러면 안 돼지요. 새파랗게 살아있는 승지 아버지는 어쩌고요?”

방에서 또 다시 큰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네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네. 팔 년 동안 잘 참고 지내온 줄 알았는데…… 언제라도 서방님이 돌아올 것 아닌가. 그러면 그때는 어쩔 건가?”
승지 큰어머니였습니다.
“아니. 내년에라도 돌아올지 모르지. 북에 납치되었다가 탈출해온 사람들도 있고…… 사람 일을 어찌 알겠나.”
승지 큰아버지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한 번 북으로 끌려가면 탈출도 불가능하고 풀려날 길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돌아온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러니 승기 어머니를 데려가겠다고? 어림도 없습니다. 우리 이 씨 집안에서는 절대로 용납 못합니다.”

사람들이 거칠게 문을 열고 나가자 엄마가 대청마루에서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승기 오빠도 엄마에게 달려들어 울었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그렇게 승기 큰아버지가 다녀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파견대장이 왔고, 당신은 부대로 불려가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부대의 명령을 따라야 했고, 부대에 들어가서 징계를 받았습니다. 당신이 파견대 외에서 거주를 했고, 남편이 있는 여자와 정을 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은 불명예제대를 했습니다. 당신이 나중에 저희에게 말했듯이 승기에게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당신이 그곳에 가기 팔 년 전 속초 앞 먼 바다에서 북한의 무장선박에 의해 납북되었다고 했습니다. 여섯 명이 탄 작은 어선이라고 했습니다. 정부에서는 유엔적십자를 통해 교섭도 했지만 팔 년이 지나는 동안 송환 기미는 보이지 않고 동해안에 간첩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희망을 잃고 있었습니다.
  
  극락조화 꽃
  
제대 후 당신은 다시 강릉에 내려가서 승기 큰아버지에게 무릎 꿇고 간정했습니다. 그러나 승기네 집안은 완고했습니다. 당신은 승기 큰아버지와 동네 사람들에게 쫓겨나다시피 송정동을 떠나야했습니다. 승기 큰 아버지는 아기를 당신에게 떠넘겼습니다. 당신의 핏줄이니 당신이 책임지라고. 엄마는 안 된다고 애원했지만 집안 어른들의 반대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당신도 아기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저와 함께 오누이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당신과 제대로 말 할 기회도 없었던 엄마는 울면서 당신과 아기를 보냈습니다. 꼭 기다리라고, 언젠가는 다시 찾아가겠다고.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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