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과 채움의 수레바퀴 ?
비움과 채움의 수레바퀴 ?
  • 송란교
  • 승인 2021.10.2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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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 / 논설위원
송란교

요즘에는 물병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자주 보게 된다. 생수병은 자판기나 편의점 어디에서나 쉽게 살 수 있다. 물을 담고 있는 물병도 이제는 패션화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병은 물이 채워져 있을 때 물병의 기능을 할 수 있다. 

물을 다 마시고 나면 쓰레기통 속으로 버려지기도 하지만 버려지지 않고 다른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버려지는 물병과 계속 살아남는 물병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는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버리고 싶으면 아낌없이 버리고 남기고 싶으면 귀하게 아낀다. 물병은 담고 있는 물을 누군가가 마셔줄 때 그 가치가 있다. 그 물이 목이 타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목마름을 해갈해주면 생명수가 되는 것이고, 꽃잎에 뿌려지면 단비가 되는 것이다. 

물이 채워져 있는 동안은 물병으로서의 가치만 있다. 하지만 비워지는 순간 그 물이 무엇을 위해 사용되었는가에 따라 그 가치는 다양하게 변한다. 채워진 물을 그저 물일 뿐이라 한정시켜버린다면 물 이상의 가치는 발휘될 수 없을 것이다. 

채워진 것이 물이면 물병, 참기름이면 참기름병, 약물이면 약병, 다른 물건들이 채워져 있으면 ~~병이라는 이름이 붙여질 질 것이다. 나름 좋은 것을 채우려 해도 그것은 맘대로 되지 않는다. 
사용하는 주인장의 마음에 따라 다르다. 무언가가 채워져 있다면 다른 무엇을 채울 수 없다. 몸값을 달리하고 싶지만 채워진 것을 비우기 전에는 그 꿈을 이룰 수 없다. 가치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채운 것을 비워야 한다. 물레방아는 비우고 기다리고 채우기를 반복한다. 사람도 먹고 움직이고 싸기를 반복한다. 인생도 다른 사람을 만나서 사귀다가 헤어지고 또다시 만나기를 반복한다.  

초등학교 다니면서 머릿속에 채운 지식으로 팔순 때까지 버틴다면 그 가치는 고집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과 지혜를 채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움이 필요하다. 채우고 있을 때의 가치는 제한적이지만, 비우고 있을 때의 가치는 무제한적이다. 채워져 있을 때보다 비워져 있을 때, 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모든 것을 집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움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밖으로 꺼내어 다른 사람과 나눈다는 것 아니겠는가? 가치 있게 비워진다면 감사할 일이다.

무엇을 담고 무엇을 비워야 할 것인가? 무엇을 채워서 누구에게 나누고 누구에게 베풀 것인가? 내가 가진 장점, 내가 잘하는 재능이 나만을 위한 소유물에 그치면 그 가치는 나 혼자만의 것이 된다. 가득 채우면서 비움의 공간이 없다면 그저 물병 속의 물일 뿐인 것이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고 베풀어질 때 그 가치는 무한대로 커지는 것이다. 학생 시절에는 열심히 지식을 채운다. 어른이 되어서는 그것을 사회를 위해 내놓는다. 달도 차면 기운다. 

왜 그럴까? 어제를 내려놓고 오늘을 비워야 새로운 내일을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골프를 하다 보면 홀컵에 들어간 공은 즉시로 꺼낸다. 다른 사람을 위해 비워주는 것이다. 축구 골대에 공이 들어가면 골인을 선언하고 그 공을 꺼낸다. 꺼내지 않고 있으면 어찌 되는가? 계속 경기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그 공을 꺼내야 한다. 게임에 참가한 모든 사람을 위한 배려인 것이다. 

깨끗하게 비워둔 쓰레기통은 왜 이리 빨리 채워지는지 모르겠다. 날마다 청소를 했건만 집안 가득 쌓인 먼지는 언제 이리도 쌓였을까?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음식도 줄이지만 내 허리둘레는 왜 빛의 속도로 굵어졌을까? 채워진 항아리보다 비워진 항아리가 존재 가치가 더 있다고 하지만, 소유함의 가치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세상의 인심이다. 빈자리는 너무 쉽게 채워진다. 채워진 자리는 절대 내놓지 않으려 한다. 정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끝까지 내놓지 않고 더 오래도록 유지하려 한다. 그러니 채우기에 급급한 사람들이 마음을 비우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네 삶은 채움과 비움의 연속이다. 바다는 밀물과 썰물로 어김없이 하루에 두 번씩 채우고 비운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 사이에도 비움이 있으면 채움이 있고, 채움이 있으면 반드시 비움이 있게 마련이다. 무엇을 가득 채울지 고민하기 전에 불필요한 것들을 먼저 비워보면 어떨까. 내가 할 수 없는 헛된 '채움병(病)'으로 꽉 찬 나를 깔끔하게 비워내고,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나눔병(甁)'으로 새로운 나를 채워보면 어떨까. 속 빈 대나무는 배가 고프다고 울지 않는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 채움의 허망, 비움의 행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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