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겨울 꽃 이야기
[소설] 겨울 꽃 이야기
  • 성광일보
  • 승인 2021.11.10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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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당
소설가,
시인·성동문인협회 이사
김근당

하지만 당신은 할 일이 없는 홍천에서 살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군대에서 나와 어디에 발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거기다 당신에게 딸린 어린 두 목숨까지 있었습니다. 당신은 저와 아기를 유치원원장 이모 집에 맞기고 하루 종일 일자리를 찾으러 다녔습니다. 그러나 작은 산골 읍에서는 뜨내기가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신은 남쪽 공업도시에 새로 짓는 비료공장에서 직원을 많이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았습니다. 당신에게 하늘의 별따기 같았지만 그래도 당신은 그 별을 따러 올라가야 했습니다. 당신은 남은 삼주일 동안 시험에 필요한 책을 사서 낮에는 고된 노동을 하며 밤을 새워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올라가서 본 시험에 용케도 합격이 되었습니다.

남쪽 도시에서 우리는 작은 공장들이 여기저기 있고 화물을 나르는 기찻길이 가까운 단독주택의 단칸방에서 살았습니다. 아기 이름은 송정동 소나무가 많은 곳에서 얻었다고 송동松童이라고 지었습니다. 당신은 오전과 오후 그리고 밤으로 교대하며 공장에 다녔고, 밤에 당신이 없을 때는 내가 송동을 데리고 잤습니다. 주인 집 아저씨도 당신과 같은 공장에 다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주인집 아주머니는 참 친절했습니다. 밤에 송동이가 울면 데리고 가서 잤고, 송동이의 우유며 제 밥까지 챙겨주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사 학년이 될 때까지 저희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엄마가 없어도 외로움을 타거나 불편한 것도 별로 없었습니다. 당신과 주인 집 아저씨는 형제처럼 지냈고 아주머니는 저희를 한 식구처럼 돌보아주었습니다. 주인 집 언니 오빠하고도 사촌처럼 지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산 밑에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비록 허름한 집이지만 방이 세 개나 되고 마루도 있는, 당신이 돈을 알뜰히 모아 장만한 집이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밥도 짓고 빨래도 하며 살림을 도맡아야 했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내 방이 따로 있고 송동이도 여섯 살이 되어 제 할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엄마를 까맣게 잊었고 살았습니다. 당신도 잊은 듯 했습니다. 그렇다고 새엄마도 들이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당신은 의연했습니다. 슬픔과 고통을 이겨낸 사람처럼 이러저러한 세상일에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저희 둘만이 삶의 보람이고 기쁨인 듯 했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저희와 함께 행복을 나누었고, 훈육도 엄하게 시켰습니다. 저희의 생활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정직해야 했고 자기 일에 열심이어야 했습니다. 특히나 남매간의 우애와 분별이 각별해야 했습니다. 동생은 깍듯하게 누나 대접을 해야 했고, 누나인 저는 동생에게 모범을 보여야했습니다.

당신에게 매를 맞은 기억도 있습니다. 저희가 처음으로 싸웠을 때였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이고 송동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습니다. 어느 날 송동이가 제 방에 몰래 들어와 남학생에게서 받은 편지를 꺼내 보았습니다. 같은 중학교에 다녔던 학생이었는데 집 근처에서 저를 기다리기도 하고 편지를 주기도 했습니다. 송동은 제게 그놈이 더 이상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확실한 태도를 보이라고 잔소리까지 했습니다. 저는 송동이가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나 싶기도 했지만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화가 났습니다. 나는 송동이 손에서 편지를 낚아채며 '너는 쬐그만게 누나 일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니!'하고 소리쳤습니다. 송동이도 '누나나 행동을 똑바로 해! 나는 이제부터 누나를 감시할 거야!'하고 대들었습니다. 저는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송동에게 '네가 뭔데?'하며 밀쳤고, 송동이도 '나는 누나를 지키는 사람이야!'하고 대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밀치고 소리치며 싸웠습니다. 그때 당신은 저희를 앉혀놓고 말했습니다.

“너희는 엄마 없이 자란 남매간이다.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누나 동생이 아니냐. 옆 집 순이 엄마만 하더라도 너희를 얼마나 대견스럽게 보고 있느냐. 그런데 서로 아끼고 도와주도 모자랄 판에 서로 손찌검까지 하며 싸우느냐. 몸가짐을 올바르게 하고 살아도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는 우리 집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서로 위하며 바르게 살라고 때리는 것이니 앞으로 오늘의 일을 잊지 마라.”

당신은 나와 송동이 종아리를 회초리로 여섯 번씩이나 때렸습니다. 저희는 처음 맞는 매가 아파서 울었습니다. 당신도 돌아서 눈물을 감추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엄마가 찾아온 것은 그리고 한 해가 지난 뒤였습니다. 밤 근무를 마치고 오전 내 잠을 자고 일어난 당신은 주저주저하며 대문을 밀치고 들어오는 여자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직 새 학기가 시작되지 않아서 저희도 집에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마루에서 TV를 보고 있었고, 송동은 자기 방에 있었습니다. 안마당으로 들어선 여자는 바바리코트를 차려 입었지만 검게 그을린 얼굴에 나이 많은 티가 역력했습니다. 당신은 처음 보는 여자가 찾아온 것처럼 번히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머뭇거리던 여자도 당신보다 제 손을 먼저 잡았습니다. 저는 당황했지만 가까이서 보는 얼굴에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저에게 엄마였던 여자! 파도에 젖은 젖꼭지가 까맣던…… 동백꽃이 빨갛게 피었던 나무 밑에서 꼭 안아주던…… 엄마였습니다. 저는 반가운 마음이 솟아올랐습니다. 엄마는 어정쩡하게 서있는 당신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더니 방에서 나오는 송동을 보자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갑자기 당한 송동이가 여자에게서 빠져 나오려고 했지만 더욱 힘주어 끌어안았습니다. 엄마는 송동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감개무량한 듯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송동은 여자에게서 빠져 나왔습니다. 
  마침 당신이 삼 일간 쉬는 기간이라서 엄마와 당신은 절에 가서 불공도 드리며 저희와 함께 지냈습니다. 그동안 엄마는 송동에게 정을 붙이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송동은 엄마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송동에게 그제야 '너의 엄마다. 지난 사정은 차차 이야기하마.'하고 어렵게 말했지만 송동은 갑자기 나타난 늙은 여자가 엄마라는 말에 충격이 큰 것 같았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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