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업이 만난 사람] 장구 세탁소 신용수 사장
[원동업이 만난 사람] 장구 세탁소 신용수 사장
  • 원동업 기자
  • 승인 2021.11.10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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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중요한 옷 그에게 맡긴다. 그가 만난 가장 중요한 사람은?
- 뭇사람 옷 받아 때 빼고, 수선해 왔다. 장구하게 그 일 이어지리라!
강원 동 영월 예밀리 소년은 이곳 성수동에서 세탁업을 한다. 산판에선 칫수를 재고, 유압프레스 공장에선 기름을 썼더랬다. 과거의 경험은 차곡차곡 쌓여 오늘의 삶을 이룬다.

장구 세탁소. 우리 동네 오래 된 세탁소다. 거기 얼마전 현수막이 붙었다.
“성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1월 10일까지 영업합니다.”
내가 사는 동네는 변천이 심한 동네다. 골목골목마다 있던 작은 가게들은 대개 편의점으로 바뀐 지 오래다. 주변에 늘어나는 것은 새 단장을 하고 들어서는 음식점이나 카페. 전체적으로 땅값과 임대료가 올랐다. 동네에 살던 기존 주민들은 떠나고, 늘어난 지식산업센터 손님들은 지역의 편의시설 이용이 줄었을 터다. 세탁업계로선 최근 무인 빨래방이 여럿 늘었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는 공장형세탁을 하고, 배달까지 완료해 주는 프랜차이즈 광고가 요란하다.  그런 여파일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딸랑 소리가 들리고, 다음엔 세탁소 특유의 냄새가 난다. 채 열 평이 되지 않는 작은 곳이라서 더 그런지 모른다. 증기를 이용한 다리미판, 촘촘히 천장에 걸린 세탁된 옷들, 거기 주인장 신용수 님이 언제나처럼 일감을 만지고 있다. 이런 분을 볼 때마다 한편으로 존경스럽고 한편으로 안쓰럽다. 밥벌이의 성스러움과 장인의 손길에 애정을 줄 수밖엔 없고, 저 작은 공간에 갇혔을 청춘과 육신에 위로를 보내고 싶다. 그는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로 갈까? 찾은 옷 세 벌을 앞에 두고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 강원도 영월 예밀리 소년, 성수동서 세탁업 하기까지

- 11월 10일까지 영업하신다고요. 얼마나 여기서 세탁소를 여신 거죠?

“이 자리에서만 25년 됐어요. 그 전에는 중곡동에서 양복점도 하고. 도로시 공장이라고 일감이 오면 그걸 빨리 납품해주는 일도 답십리 골목시장서 한 일도 있고. 직원 데리고서…. 양복점이 기성복에 밀리면서 자연스레 세탁소로 넘어온 거예요.”

- 애초부터 의류 다루는 일을 하신 거예요? 많은 장인들이 처음 배운 일들을 평생 하시는 경우도 봤거든요.

“내가 중학교 졸업하고 서울 올라와서, 그전에는 쌍문동 옆에 신창동이라고 있었어요. 샘표간장 있던 곳 옆에 제비표 페인트 공장도 있던 곳.. 거기 공장에서 가죽 벨트랑 지갑 만드는 일도 했어요. 공터에 컨테이너 놓고. 거길 한 2년쯤 다니다가, 고향이 영월인데, 고향으로 다시 갔어요.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서. 학교 갈려면 서울서 계속 있었어야 됐겠는데, 여긴 연고가 아예 없으니까. 내려가선 우연하게 산판벌목을 하게 됐어요.”

- 성수동은 영월과는 인연이 있죠. 한강이 댐으로 막히기 이전에는 정선, 영월서 베어낸 나무를 뗏목으로 여기 뚝섬까지 와서 부렸었죠. 무슨 일을 하셨어요? 거기에선?

“내 고향이 지금은 김삿갓면이 된 하동면이에요. 각동리 거기서 뗏목에 콩 같은 거 싣고 와서는 갈 때는 소금 같은 거 갖고 가곤 했대요. 산판에선 벌목공들이 쓰러뜨린 나무를 도끼공들이 가지를 다듬어 놔요. 내가 몸이 작고 신참이니까 처음 한 일은 열두 자, 아홉 자를 나무에 표시하는 거예요. 그 나무들을 산 아래로 내려 보내면 닦아놓은 임시도로로 들어온 차량에 실어서 저기 왕십리 목재공장 같은 데 보내는 거지.”

- 치수를 재셨다니까, 옷을 만들며 재단 일 하신 게 연상됩니다. 산판일은 어떤 방식으로 합니까?

“전국을 돌죠. 한번 하면 먹고 자고 하면서 머물러야 하니까 막사부터 지어요. 터를 만들고, 땅을 고르고, 나무를 워낙 잘 다루는 사람들이니까 직접 나무해 집을 세워요. 루삥이라고 콜타르 칠한 지붕도 씌우고, 바닥에는 가마니하고, 습기를 피할 수 있게 설비도 좀 하고. 겨울 빼고 봄부터 가을까지 다녔어요. 당시에도 휘발유 부어 전동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그랬어요. 잘라놓으면 나무 메는 사람들이 힘을 쓰는 거지.”

◆ 가장 중요한 옷 그에게 맡긴다. 그가 만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산판에서 벗어나 서울로 다시 와 이번엔 양복점에 취직을 했다. 이모가 소개한 곳이었다. 군대도 갔다. 71사! 태릉서 기본군사교육을 받은 뒤, 거여동에 있던 육군교도소에서 근무했다. 야간경비병.
사춘기를 앓던 시절 그를 사로잡았던 의문들이 있었다.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간이란 대체 어떤 존재인가? 그런 질문들은 시시때때로 그의 삶에서 돋아났다. 나는 지금 왜 여기에 있는가? 왜 저들은 갇혀있나? 격일제로 근무해 이병제대가 아닌 일병제대를 할 만큼 군생활은 길었다. 그동안 양복점 일을 하며 독자적 생계를 유지했다. 격일근무를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압프레스기 공장에도 있었어요. 당시 교회서 아는 분이 계셨는데, 기술자가 나갔다고 3개월만 공장을 지켜달라는 거예요. 그러다 거기 6년여를 있게 됐어요. 유압프레스는 천장에 다섯 드럼 기름이 있어서 그게 프레스를 내려눌러 그릇을 찍어내요. 터널등도 만들고 가로등 갓도 만들고. 저기 영종도 가 있는 갓이 우리가 만든 거에요. 깊이가 다르고 모양도 다르고. 거기 전기부속이며 안정기 같은 것도 넣어야 하니까 일이 많고 어려워요. 사람들은 난리지. 양복기술 가진 사람이 거기서 뭐하는 거냐고?”

세탁소에 맡기는 옷들은 대개 물빨래 하면 옷감이 망가지는 것들이다. 컴퓨터세탁 혹은 드라이크리닝이라 부르는 세탁법에 기름이 사용된다. 특수기름에 일종의 비누인 쇼프를 넣어 살살 흔들면서 빨래한다. 가죽옷은 찬바람으로 냉풍건조를 한다. 옷감에 따라, 오염된 물질에 따라서도 다른 세탁기술을 적용해야 한다. 이런 '기술'들을 배우러, 요즘은 오히려 그를 찾는 이들이 제법 있다. 성수동에 많이 들어와 있는 의류회사에서 옷감 재료별 특성에 대한 작은 실험을 해보자고 오기도 한단다.

그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옷들은 대개 소중한 것들이다. 자신이 입는 옷 중 수선을 해서라도 오래 입고 싶은 옷도 있고, 특별한 예식에 참여한(할) 옷도 있다. 그러니 그 옷을 대할 때마다 그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를 찾아온 가장 특별한 손님도 있었다. 그는 운명처럼 그를 찾아와 아예 그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 그를 휘어잡았다.
“예수님을 만난 게, 예수님을 믿은 게 내가 세상 태어나 제일 잘 한 일일 거예요.”

장구 세탁소 주인장 신용수의 집은 강원도 영월 예밀리. 아버지 일터는 옥동광업소. 구름이 모인다는 모운리(주문리)가 지척인 고원마을이다.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에 폐업하기 전까지 그곳에는 학교, 세탁소, 미장원, 철물점, 병원에 극장까지 갖춰진 소도시가 있었다. 그곳에 이대 봉사단이 와 성경학교를 열었다. 그들을 맞이했던 옆마을 예밀리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따님이 소년 용수에게 오르간을 가르쳐주었다. 인간의 땅에서 신에게로 향하는 소리를 듣고, 스스로 연주를 하는 그 순간이 그에겐 새로운 탄생의 순간이었다.

“아버지가 교회를 못 가게 했어요. 선반에 성경을 감추어놓고 다닐 수밖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날 술독이 뽀개지면서 그 안에서 구렁이가 수도 없이 쏟아지는 거예요. 그게 멍석위에 있었는데, 내가 왼손으로 걷어내니까 그게 둘둘 말리고는 떠서 저기 하늘 멀리로 떠나는 거예요.”

소중한 옷들을 들고 뭇사람이 그에게로 온다. 그 옷들엔 때가 끼고 수선이 필요하다. 그에게도 귀하게 영접한 이가 있다. 마음의 때를 빼고, 삶을 수선하는 이름이다.

◆사람의 마음에서 때를 빼고, 삶을 수선하는 것처럼

꿈이었다. 그에게는 계시처럼 보였다. 그런 일은 또 있었다. 돈을 많이 번 친구가 그를 데리고, 좋은 차를 타고, 술집으로 갔다. 용수 역시 술을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배운 술이었으니까. 그런데 밴드를 부르고 아가씨가 들어오고 하는 그런 곳이었다. '하나님 어떡해요?' 대답이 왔다. '떠나라!' 그는 '약국을 간다'는 핑계를 대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이후로 술 생각이 나지 않았다. 친구는 2년 쯤 뒤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 성경에서 좋아하는 구절은?

“요한복음 3장 16절이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세속의 번다한 일들 말고, 그에게 중요한 많은 일들이 교회 안에서 벌어졌다. 그가 '실연(失戀)을 하고 매달린 일은 운동이었다. 그가 자취를 하던 옆방에 당시 한국화장품 소속 권투선수가 있었다. 그를 따라 로드웍을 다니다가, 그는 마라톤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우유와 물을 먹어도 염소똥만 나올 만큼 그는 달렸다. 심야기도회에 다니며 '방언이 터지는' 특별한 성령도 받았다. 감리교는 넓고 큰 세상의 교회. 그는 성동광진의 청년회장을 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갔다. 지금은 동네 근처 감리회성암교회에 다닌다.

1987년 6.29 선언이 있기까지 시민사회단체와 기독교 카톨릭 불교계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로 광범하게 연합해 있었다. 이때 그는 전국을 다니며 회의를 열고 데모에도 열심이었다. 논산 강경에 물난리가 났을 때, 그는 이제 농촌봉사활동의 주역이 돼 있었다. 중국으로도, 러시아로도, 멀리 말레이시아로도 선교 활동을 갔다. 백두산에 가고 연변의 조선족 축제에 참여하고, 사마르칸트와 블라디보스톡의 교민들도 문화로 종교의 이름으로 만났다. 세상에서 어려운 시기가 많았지만, 이런 일들에 꾸준히 참여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신용수 장로(그는 47세에 장로가 됐다)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경영이 어려워서 카드로 돌려막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때도 그랬죠. 하느님 어떻게 할까요? 그러니까 다음날 국민은행 지점장이 오셨어요. 대출을 해준다고. 나를 훈련시키신 것 같아요. 많은 경험을 하게 하신 건…. 지금은 계속 주변을 살피게 돼요. 그리고 돕고자 하게 돼요. 사람들은 너부터 챙겨 그러지만….”
그의 이후 계획을 물었다. 일단 쉬어야지, 오랜 동안 너무나 같은 곳에서만 머물렀으니까. 늘 자신의 손을 필요로 하는 이곳 작은 세탁소를 벗어나는 것도 보기에 좋은 일이다. 하나의 문이 닫히고 새 문이 열리기 전까지의 그 시간, 그게 그에게 안식과 지혜의 시간이 될 것이다. 그가 생각해 본 것 중 하나는 '산약을 재배해 볼까?' 하는 것이다. 영월 사람다운 생각이었다.

- 저는 여태껏 짱구세탁이구나 했었어요. 장구 세탁이군요. 왜 장구 세탁입니까?

“영원하다. 오래되다. 장구하다는 그 뜻이에요.”
그가 오랜 동안 해온 일은 뭇사람의 옷을 받아 때를 빼고, 수선했던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다음 일도 그같은 일이 이어질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그는 사람의 마음에서 때를 빼고, 사람의 마음을 수선하는 일과 함께 일 것이다. 그의 휴식과 새로운 일에 행운과 신이 함께 하기를.                                        <성수동 쓰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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