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업이 만난 사람] 성동구립극단 황정원 예술감독
[원동업이 만난 사람] 성동구립극단 황정원 예술감독
  • 원동업 기자
  • 승인 2021.11.24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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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만큼 재밌는 우리 동네 연극 보셨나요?”
현실서 꿈꾸고, 꿈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주민연극단 성동구립극단
성동구엔 서울시 최초의 시민참여 구립극단이 있다. <성동구립극단>의 황정원 예술감독

성동구엔 서울시 최초의 시민참여 구립극단이 있다. <성동구립극단>의 황정원 예술감독

우리는 연극을 통해 나는 경험하지 못했던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그 사람의 고통이나 슬픔이나 설렘은 고스란히 나도 이전에 느꼈던 것이다. 연극을 통해 우리는 그 경험을 다시 하면서 카타르시스(정화)를 느낀다. 연극은 과거 어느 골목의 세탁소를 재현하기도 하고, 때로 다른 나라 왕국의 연회장도 재생시킨다. 연극은 또 하나의 삶이다.

연극은 물론 환상이다. 처음과 끝을 가지고 정연한 질서를 갖고 진행되는 세계는 허구(虛構)로 짜여진 거짓말이다. 연극에서 시간은 순식간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넘나든다. 일상에서 대화를 할 때, 어디 음악이 들려오고, 빛이 번쩍번쩍 하는가? 연극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진다. 배우들의 눈빛은 이미 정해진 곳을 향한다. 연습한 대로다. 그건 굉장히 인위적인 세계이기도 하다. 연극은 그래서 마음이고 상상이다.
연극은 애초 있지 않았던 것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이다. 상상에만 있던 어떤 아이디어가 작가가 쓰고 연출이 가르치고, 조명감독과 음향감독의 손이 무대를 조물락조물락 하고 나면 '짠'하고 연극이 태어난다. 이 과정의 산파와 산모가 되는 이들이 극단이다. 서울시 최초의 구립극단 황정원 감독을 만났다. 코로나19의 시대, 사람의 만남으로서만 가능한 연극-인. 안녕한지 묻고 싶었다. 

월드2인극 페스티벌서 유일하다, 성동 이름 단 3개의 연극단 

- 지인이 최근 2인극 페스티벌에 출연한다고 했다. 지난 11월 16일 화요일이었다. 가보니 그날 상연된 두 편의 연극이 각각 극단 <성동미소>와 <극단성동>이었다. 18일엔 <성동예인>까지 있었다. 다른 구에서 이런 참여가 있나 보니, 없었다. 흥미로운 순간이었다.

“2011년에 아들 도윤이가 태어났다. '도'자를 한자로 풀면 '물이 맑고 깊은'이란 뜻이다. 연극을 전공하고, 배우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아이를 가진 엄마가 계속 프로의 세계에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대학에서 학생들 연극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들이 무대에 오르고 지속적으로 연극을 하기 위한 그릇이 필요한 것 같았다. 그래서 창단한 게 극단 <물맑고 깊은>이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다녔다. 성동구에서 30여년을 살아오고 있었고, 마침 그때 자원봉사센터의 여러 주민들과 연극을 함께 하고 있기도 했다. 그분들과 시민연극제에 꾸준히 참여해 왔었다. <성동미소>와 <극단성동>의 연출을 내가 맡았다. 보신 감상은 어떠신가?”
- 하하. 일단 21년 동안이나 월드 2인극 페스티벌을 계속해 오고 계신 연극인들이 존경스러웠다. 연극 <꽃고무신>을 쓰고 주연도 하신 채수원 선생이나, <첫경험>에서 열연하신 이진실 님은 성수동, 마장동에서 마을활동도 같이 했던 분들이었다. 연기도 대단히 훌륭했다. 주제가 노근리와 치매 아니었나, '시대와 같이 호흡하려 노력하시는구나!' 느꼈다. 

“연극을 하는 분들이 내게 놀라며 묻는다. '저 연극을 하는 사람, 지난해 지지난해 그 사람 아니야?' 괄목상대하게 발전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다. 분장을 해주시는 윤일향 님이나, 음악을 담당해 주시는 이재원 같은 분, 정경자, 이진실, 도영애, 고동희, 박숙자, 이명숙선생님 같은 분들은 자원봉사센터부터 10여년 가까이 저와 함께 하고 계신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정말 자랑스럽고 고맙다.”

<성동구립극단>은 서울시 최초의 구립극단이다. 2018년 <극단 물맑고깊은>을 기초로 주민들을 모집, 성동구립극단이 됐다. 구립오케스트라도 있고, 구립합창단도 많지만, 극단이 이런 경우는 드물어 각 지자체와 연극계에서도 큰 화제가 됐었다. 이를 모델로 타 지자체에서도 구립극단 창단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런 결과는 극단이 주민들과 함께 해온 그간의 이력을 인정받아서였다. 2015년에 극단은 자원봉사센터와 함께 장애인 연극제를 진행했다. 시민연극제에도 꾸준히 참여해 왔다. 알차게 옹글어가는 활동에 걸맞은 옷이었다. 시민의 문화를 지향해 가는 서울시와 구청의 의지도 있었다.  

아직 전용 연습실이 없어 성동구청 지하를 빌려 연습한다. 왼쪽부터 황정원 연출자, 고동희, 지은혜, 윤경순, 이명숙, 이경림 단원. 여러 단원중 동화구연을 중심으로 하는 이들이다.

주민에 연극 가르치고, 무대 올리려 연출과 기획자 역할 한다

- 배우로 시작해서 연출을, 이제 기획자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유가 있다면?
“마을 안에서, 주민들 학생들 혹은 장애우들을 만난다. 그들을 무대에 올릴 때 필요한 것은 연출이다. 그들 안에서 가장 그들다운 것들을 뽑아내는 일을 하는 거다. 기획자는 실제로 공연을 만들고, 사람을 모으고, 성공시켜야 한다. 대학서 학생들 가르치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그들이 설 공간을 마련해 줘야겠다는 점이었다.”


- 그 역할들을 잘 해왔다고 생각한다. 성동구립극단이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을 연극화해 마장이나 송정의 도시재생에서도 서고, 3.1운동 백주년 기념식에도 서고, 태조 이성계 살곶이 축제도 서고…. 연극이란 예술이 일상의 문화로 스민 모습이었다. 
“연극을 올리려면 최소 세 달, 길게는 육개월여 넘게 연습해야 한다. 일주 한번 하는 게 공식적인 일정이지만, 실제는 거의 매일 모이기도 한다. 그 열정을 주민이 먼저 보이시니까 그걸 외면하기도 어렵다. 올해 9월에 시민연극제때 이진실 님은 연기상을 받았다. 10월달엔 여성연극협회서 독백대회를 했는데 우리 정윤주 단원이 대상을 받았다. 지원자가 삼백여 명이 넘고, 경연자는 70여명정도 되었는데, 대단한 거다. 채수원 선생님은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이 분들이 취미로 연극을 하시지만 그 열정과 열의는 프로 못지 않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마을활동과 봉사를 병행하시면서 열정을 쏟으신다.”
- 최근 2021년 성동구민대상이 발표됐다. 황정원 연출가는 2019년에 문화예술부문 대상을 받았지 않나?
“맞다. 2018년에는 서울시 최초로 주민주도형, 참여형이라 해야하나? 아마추어가 중심인 구립극단이 되었고, 2019년에는 성동구 <이성계 살곶이다리 축제> 예술감독을 내가 맡았다. 우리 극단이 주제공연을 했고…. 제일 높게 비상한 때였는데, 그 만큼 추락도 했다. 되게 아픈 시간들이 계속됐었다.”마을은 관계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같은 일을 도모한다. 서로는 서로 다른데, 이들이 한 마음처럼 움직이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다른 처지에, 서로 다른 말을 하다보면 오해도 깊어진다. 황정원 감독도 그런 일들을 겪었다. 함께 성장해 왔던 이들과 헤어지는 일, 서로 반목하는 일, 여기저기에 고하고, 이에 대응하고 반박하고…. 흔한 일은 흔하게 일어나는 법. 마을 안에서 숱하게 벌어지는 시간들이 이 극단 안에서도 흘렀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황감독도 극단도 이후엔 더 단단해졌다. 코로나19 시대, 만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연극과 극단을 고스란히 유지시켜온 힘은 어디서 왔을까? 혹은 받아야할까? 
아직 전용 연습실이 없어 성동구청 지하를 빌려 연습한다. 왼쪽부터 황정원 연출자, 고동희, 지은혜, 윤경순, 이명숙, 이경림 단원. 여러 단원중 동화구연을 중심으로 하는 이들이다.

성동구립극단의 2020년 정기공연. 좌상으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살고지고>, <늦은 행복>, <명동, 그리운 사람들>, <백조의 노래>다. 성동구가 코로나19에 지친 주민들을 위해 녹화공연하고, 유튜브에 공개했다. 연극 전체 풀영상을 볼 수 있다.

연극이 바꾸는 개인의 일과 삶, 예술이 문화로 성장하는 동네

19일 금요일, 오늘은 연습이 있는 날이다. 황 감독을 따라 성동구청 지하2층에 내려갔다.  아직 '우리 공간'이 없어 이렇게 구청 '국선도' 동아리방에 신세를 지고 있다. 벽에 '적선지가 필유여경' 여덟 글자가 선명하다. '덕불고 필유린'이 생각났다. 스무 명 단원 중 오늘 모인 다섯 주민들은 모두 동화구연을 하는 이들이다. 성동구자원봉사센터에서 만난 사람들. 아이들 환자들 장애인들을 만나 몸으로 이렇게 말로 봉사를 한다. 코로나19로 오래 못 만나왔지만…. 꾸준히 <규중칠우쟁론기> <장수탕 선녀님> <송아지와 바꾼 무> <아버지의 시험> 등 대본을 가지고 연습해 왔다. 단원들에게 '극단원'으로서의 한 장면에 대해 물었다. 

“동화구연을 11년 동안 했어요. 황정원 감독님 만나서 역량이 되게 업그레이드 됐죠. 연극을 배우니까, 이야기 전할 때 훨씬 자연스럽고 감정을 싣게 되요. 제가 49년생이니 일흔이 넘었는데, 우리 박숙자 언니도 같이 해요.'아, 이런 거구나!' 하는 감동이 매일매일 있어요.” - 윤경순

“저는 시간이 제한적이에요. 육아를 하니까요. 잠깐잠깐만 여기 참여할 수 있어요. 육아에 지쳐있다가 여기 와서 재충전을 하고 가죠.” - 지은혜
“우리가 '깜'이 안 되는데, 황단장님 만난 게 행운이에요. 동화구연하다 연극으로 점프하게 되니까, 배우는 게 많아요. 손주한테 읽어주는데, 요즘은 세이펜이라고 누르기만 하면 엄청 재미난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니까 허투루 하면 애들이 안 들어요. 이걸 배우다 보니, 어디서 포인트를 주는지 그걸 해내고 있어요. 그럼 통하지.” - 윤경순

“동화구연만 하다가 이제는 거의 동극처럼 해요. 저는 성동구 문화역사 해설가인데, 성동구립극단에서 배우고 내 자부심이 커졌어요.” - 이명숙

“나는 올해 정기공연에서 이성계를 맡았어요. 언제 내가 '여봐라! 성동구민 행복을 위해 문화와 예술발전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여라!' 이런 말을 해보겠어요. 속에 갇힌 것도 많고, 답답한 생활 하다가 여기 오면 뻥 뚫린다니까요.” - 이경림

“저 같은 일반사람도 멋지게 연극을 해 낼 수 있구나! 행복해요” - 김희순

“황감독님과 봉사로 시작한 만남이라 그런지 서로 양보하며 아끼고 있어요. 참 따뜻하죠. 연극을 통해 타인을 삶을 살아보면서 내 삶에 올바른 가치관과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점도 참 좋아요.” - 이진실

“전 성동구립 이전부터 황 감독님과 함께하는 연극에서 분장을 했어요.. 이렇게 성동구립극단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건, 단원 한분한분의 헌신과 사랑이 확고하기 때문일 거예요.” - 윤일향

성동구청은 지난해 11월 20일 하나의 유튜브영상을 올렸다. 성동구립극단의 정기공연작 4편의 풀영상이다. 류수현 작 <살고지고>와 닐 사이먼의 <늦은 행복>, 최불암 작 <명동, 그리운 사람들> 그리고 안톤 체홉의 작품 <백조의 노래>다.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잊히거나 잃어버릴 수 있는 사람들간의 연대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작품들이다. 코로나시대에 대처하는 '작은 연극'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게 아마추어 연극이라고? 정말?" 할 만큼 성동구립극단의 작품 완성도는 높다. 주제를 전달하는 연기와 발음, 조명과 무대 디자인, 음향과 음악은 물론이고, 곳곳서 잡은 화면도 자연스럽다. 넷플릭스 <DP>가 아니고도, <오징어게임> 말고도, 정주행해 볼만한 연극도 있는 법이다. 이 '놀라운 세계'는 어디서 왔냐고? 성동의 주민들로부터! 현실서 꿈을 꾸고, 상상에서 현실을 만들어내는 연극인과 극단으로부터. 우리 곁엔 성동구립극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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