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사랑의 기쁨과 슬픔2
[소설] 사랑의 기쁨과 슬픔2
  • 성광일보
  • 승인 2021.12.3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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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규/소설가, 번역가
곽명규

“그러니까, 사랑의 기쁨이 들리면 전화를 받고, 사랑의 슬픔이 들리면 안 받고... 정말 간단하네요!”
그녀는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허공을 겨냥하고 있다.
“간단하죠? 생활의 지혜라는 게 이런 거 아니겠어요? 하하하.”

2.

잠을 잘 못 자고 뒤척거리던 힘든 밤이 끝났다. 어제의 일들이 차례로, 혹은 뒤섞이며 떠오른다. 
그는 지금 만으로 서른일곱이다. 방황하는 외톨이로 언제까지나  머물 수도 없어서 이제는 그냥 웬만한 여자라면 결혼 상대로 받아들여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제의 그 여자는? 그녀는 거리에서 스치고 지나가는 보통 여자들보다 훨씬 매력이 있는 멋쟁이라는 것이 그의 평가이다. 그러나 그녀와의 결혼을 떠올려보는 때면 그의 마음은 어딘가 허전하다. 
아직도 속마음은 결혼을 원치 않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그 여자가 결혼상대로서 흡족하지 않다는 것일까? 

마음속에 사랑이 들어 있으면 혼자 있어도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는 그런대로 즐겁다. 그러나 데이트가 끝나고 돌아오면 마음이 텅 빈 듯하고 쓸쓸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녀가 결혼 상대로서 정답이 아니라는 뜻인가 보다. 
그렇다면 그녀와의 데이트도 더 계속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빨리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고.
그는 전화기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린다. 아직도 양복 주머니 속에 그대로 들어있다는 것이 생각난다. 옷장 문을 열고 재킷의 주머니를 더듬어 전화기를 꺼내  든다. 
“전원이 꺼져 있네. 어제 오후에 꺼 놓고는 아직까지 잊고 있었군!”

그는 전원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린다. 화면에 불이 들어온다. 부재중 수신이라는 표지 밑에 모르는 전화번호가 찍혀있다. 그녀와 데이트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았던 일이 떠오른다.
누구였을까?
반사적으로 손가락이 통화기록 버튼을 누른다. 그러나 여전히 전화번호만 있고 이름은 알 수 없다. 
“맞아. 바보같이... ”

그는 중얼거리기 시작하다가 갑자기 멈춘다. 바보같이, 입력되지 않은 번호에는 이름이 뜨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 못했다고 혼잣말을 하려다가, 퍼뜩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다리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침대 위에 주저앉는다. 
“이 전화가 마지막이었군. 어제 오후부터 지금까지 아무한테서도 전화가 오지 않았어. 사랑의 기쁨이든 슬픔이든.”
갑자기 두껍고 무거운 외로움이 머리 위로부터 쏟아져 내리며 온몸을 휘감는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전화를 꺼버린 벌을 받는 모양이지. 지금이라도 답을 해야겠어.”
그는 엄지 손가락으로 발신 버튼을 꾹 눌러 본다.  
“받으실 분의 전원이 꺼져 있습니다."

실망과 아쉬움이 솟구친다.
"그쪽에서도 어제 이렇게 실망을 했었겠지."

기분이 매우 우울하다. 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어 버린 듯한 자신의 존재가 점점 작은 점으로 줄어들며 허공으로 사라져가는 것 같다. 의식 또한 점점 흐릿해져 가면서, 잠과 깸의 영역이 따로 구분되지 않는 듯 흐리멍텅한 상태가 되어 간다. 그는 그림도 글자도 없는 황량한 꿈속을 먼지처럼 떠돈다.  
미 라 - 미- - 미 레 미 파 - -
솔 레 - 레- - 레 도 레 미 - -

갑자기 첼로 소리가 슬픔의 멜로디를 그의 가슴팍에 쏟아붓는다. 그는 전화기를 급히 귀에 가져다 댄다.
"여보세요."

대답이 없다.
"여보세요."

그는 더 큰 소리로 상대방을 불러 본다. 미지의 공간 끝으로부터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전화기의 뚜껑을 닫지 못한다. 누군가 절실하게 그의 도움을 청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거꾸로 그를 위험으로부터 구출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통화를 하지 못하면 다시는 걸려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는 거듭거듭 전화기 속으로 소리를 부어넣는다. 차가운 땅 밑의 깊은 굴속에 매몰된 광부를 부르듯, 또는 스스로 암흑 속의 광부가 되어 자신의 위치를 바깥 세상에 알리듯, 필사적으로 외치고 있다.
"여보세요?"

아아, 마침내 사람의 응답소리가 들려온다. 매몰된 광부를 구해 낼 기회가 온 것이다.
"네, 여보세요!"

그는 기쁨에 차서 큰 소리로 대답한다. 다른 말은 한 마디도 알지 못하는 외국인처럼, 오직 "여보세요!"라는 말만 반복한다.
"미안합니다. 우리 아기가 전화기를 만졌나 봐요. 서윤아! 미안합니다-해봐. 미안합니다! 옳지! 아이, 예뻐라. 서윤이가 말 대신에 고개를 끄덕였네요. 미안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전화는 끊어졌다. 그는 눈을 뜬다. 손에 전화기가 들려 있다. 잠깐 잠이 왔던 것 같다. 
"꿈이었나?"

그는 중얼거리며 일어선다. 아기 엄마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귓속에 남아 있다. 고개를 끄덕이며 미안해하던 아기의 모습까지 직접 본 것처럼 그의 망막에 새겨져 있다.
꿈이었다고 생각해도 아쉽지는 않다. 오히려 그런 꿈을 꾸었다는 것이 실제 통화를 한 것보다 더 기분 좋게 느껴진다. 하늘로부터 구원의 밧줄이 내려온 듯, 무기력에 빠져 있던 그의 몸이 순식간에 구석구석 활기로 채워진다. 
그는 가벼운 옷을 찾아 입고 집을 나선다. 일요일 정오의 채 익지 않은 싱그러운 햇살이 부드러운 봄바람에 실려 얼굴을 쓰다듬으며 지나간다.

3.
"아아, 얼마 만인가!"
마지막으로 공원에 산책을 나왔던 것이 벌써 이 년 전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혼자가 아니었다. 그에게도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삼 년 전, 오늘처럼 따뜻했던 봄날 오후, 산책길에 바로 이 공원에서 마주친 여자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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