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내 인생의 음악 , 아리랑
[수필] 내 인생의 음악 , 아리랑
  • 성광일보
  • 승인 2022.01.1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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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순

아리랑이 내 인생의 음악으로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 일이다. 반세기 넘게 조국을 떠나 살아온 한 지리학자의 책을 만들면서였다. 팔순의 노교수가 아리랑을 공부하면서 3년 동안 아리랑 연고지(서울 , 정선, 밀양, 진도)를 세 번이나 답사하고 쓴 글을 읽는 순간, 무엇에 이끌리듯 아리랑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그 후 '아리랑'소리를 들으면 눈과 귀가 열리고 가슴이 뛰었다. 아리랑의 모든 것이 궁금하고, 아리랑이 왜 우리 겨레의 노래인지, 아리랑이 어떻게 세계에 전파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노교수를 조르고 졸라 영문판 아리랑 해설서를 두 권 더 만들었다. 그러자 노교수께서 “서 선생도 아리랑꾼이 되어 가는군!”하셨다.

아리랑꾼! 참 듣기 좋았다. 그리고 나의 아리랑 사랑은 점점 확장되어 갔다. 알면 알수록 아리랑의 신묘함에 빠져든 나는 '아리랑 로드 대장정' 팀원이 되어 답사의 길을 떠났다. 아리랑이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 그 길을 따라 아리랑을 부르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1차 대장정은 3년 동안 이어졌다.

첫 답사지가 될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현지에서 고려인 강제이주와 아리랑에 대해 이야기해 줄 분을 소개받기 위해 광주 월곡동 국내 최대 고려인 자치마을을 찾았다. 그리고 안산, 진천, 음성 등에 흩어져 있는 고려인 3,4 세들은 만나 도움말을 들으면서 마음이 급해졌다. 1937년 연해주에서 강제이주당한 고려인 1세들이 거의 생존해 있지 않아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국내에서의 사전 답사가 아리랑 로드 대장정을 서두르게 한 이유가 되었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유명한 재래시장 꾸일루크 바자르는 고려인들의 생활 터전이었다. 김치, 장아찌, 무청시래기 등을 팔고 있는 여인들에게 다짜고짜 말을 걸었다. 언제 이곳에 왔는지, 아리랑을 들어본 적 있는지, 그리고 아리랑을 부를 수 있는지. 그들은 잠깐 경계의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더니 작은 목소리로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내 하나가 되어 아리랑을 합창했다.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것이 목을 타고 넘어와 눈물로 쏟아졌다.

말로만 듣고 책으로만 보던 고려인을 현지에서 처음 만난 감동은 상상 이상이었다. 가난한 조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나라 잃은 수모를 겪으며 숨죽여 살아왔을 한과 서러움. 그럼에도 굳세게 살아남아 고려인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존심. 그것을 지켜오면서 그들을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게 만든 중요한 대목에 아리랑이 있었다. 말과 글은 잊어버렸어도 아리랑은 부를 수 있는 그들에게 아리랑은 무엇이었을까.

80 여 년 전 일본군이 연해주를 침략하기 위해 고려인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자 스탈린은 이를 구실 삼아 고려인을 포함한 소수민족 강제이주정책을 집행했다. 지식인들은 그보다 먼저 처형해 버리고, 민중들은 화물차와 가축운반차를 개조한 열차에 짐짝처럼 실어 중앙아시아라는 황무지에 내다버렸다. 하지만 그들은 매서운 삭풍이 불어대는 허허벌판에 토굴을 파고 자갈밭은 일구어 낯선 땅 곳곳에 뿌리를 내렸다.

우즈베키스탄 '아리랑요양원'이라는 곳에서 그 주인공들을 만났다. 평균 연령 83.5세. 서너 살 무렵 부모 등에 업혀 와 이 땅에서 평생을 살아온 고단한 삶. 눈 감기 전 한국에 한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그들을 얼싸안고 부른 아리랑. 된장과 김치를 좋아하고 우리와 같은 말을 하지만 내일이면 만날 수 없는 어르신들이 부르던 아리랑이 지금도 가슴을 울린다.

긴긴 아리랑 로드 대장정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 카자흐스탄 알마티와 크질오르다, 강제이주 첫 도착지인 우슈토베 기차역과 고려인 무덤, 키르기스스탄 재래시장, 다시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라즈돌노예 역, 하바롭스크, 이르쿠츠크와 바이칼, 유형의 땅 사할린, 강제 징용되어 목숨을 바친 탄광, 그 광부와 아내, 지금도 가난한 아들들. 그들과 함께 부른 아리랑은 진정 우리 삶이 만들어 낸 한숨이요 슬픔이요 위로였다. '노래 중의 노래' 아리랑은 그렇게 우리 민족을 일으켜 세우는 대서사시로 지금도 곳곳에 살아 있었다.

이처럼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정서적 수렴체로, 때로는 시대 모순에 대한 저항의 발현체로, 편향과 극단의 차단체로, 고난을 극복해 내는 의지의 추동체로 창작되고 가치화된 겨레의 노래다. 사랑과 이별, 만남과 헤어짐, 슬픔과 기쁨, 행복, 화해, 저항, 대동(大同), 해원상생(解寃相生) 정신을 이어온 아리랑은 한민족이 살고 있는 곳 어디서든 불리고 있고,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세계의 노래가 되었다.

이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리랑에 담긴 정신과 문화를 세계인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려면 학문 간의 통섭(consilience)을 통해 아리랑은 재정립되고 아리랑 정신은 더욱 발현되도록 해야 한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기적과 부활을 이루어 우리 삶이요 희망이요 역사가 된 아리랑이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기적의 힘을 발휘하도록 더 널리 더 멀리 퍼져나가 대한민국의 창(窓)이 되길 소망해 본다.
그리고 나는 지금 2차 '아리랑 로드 대장정' 출발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서용순

<서용순 프로필>

- 수필가
- 광진문인협회 고문
- 이지출판사 대표
- 에세이문학작가회 부회장
- (사)해외동포책보내기운동협의회 이사
- 저서《갈망의 노래》《Colors of Arirang》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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