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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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성원 기자
  • 승인 2022.01.13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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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인형이 된 파랑새 / 글 서울숲

느지막이 일어났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느릿하게 움직인다. 침대에서도 그렇고 거실에서도 그렇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꿈지럭거린다고 할지 모르지만, 시간 넉넉한 사람이어서 어쩔 수 없다. 시간만 그런 게 아니다. 시간 말고 내가 풍족하게 가진게 더 있다. 사람들이 제일 부러워하는 건데, 바로 돈이다. 딱히 쓸 데가 없는데 나는 돈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렇다고 나를 재벌쯤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시간 여유가 많다니까 어떤 사람들은 내가 놀고먹는 줄 안다. 아니다. 나도 일을 한다. 단, 골라서 한다. 일감을 주는 사람들이 나에게 연락을 해오면 나는 내키는 일만 한다. 예고도 없이 일을 해달라고 전화를 걸어오는 이가 가끔 있다. 그런 사람에겐 나는 절대로 일을 해주지 않는다. 다른 데 가서 알아보라고 나직하게 말해버린다. 일을 줄이려 하는 나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거실에서 주방으로 들어섰다. 오늘은 왠지 토스트 굽는 냄새를 맡고 싶었다. 빵조각을 토스트기에 넣고 스위치를 누르자, 노릇한 냄새가 퍼진다. 기분이 좋다.
토스트 접시를 들고 식탁에 앉았을 때다. 익숙한 노래가 주방으로 흘러든다. 거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래다. 아하, 그 노래잖아. 오랜만이네.

'파랑새', 그가 잘 불렀던 노래였다. 아니다. 내가 좋아했던 노래였다. 내가 좋아한다니까 그가 기를 쓰고 배웠다. 듣긴 좋지만 부르기 쉬운 노래가 아니었다. 새소리를 표현한 곳, 때문이다. 어설프게 부르면 우스꽝스럽게 들리는 노래였다. 그런데 그는 가수보다 잘 불렀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디선가 파랑새가 날아올 것 같았다. 그가 밤잠을 줄여가며 익힌 노래였다. 그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의 파랑새였다. 

어디 그뿐인가. 그는 나를 도우려고 내 주위를 비행했다. 내가 클라이언트를 만나러 갈 일이 있으면 그는 자기 일을 제쳐놓고 날아왔다. 그래서 나는 파랑새를 사랑했다. 그렇지만 나는 파랑새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었다.
“우리 사랑, 오래 갔으면 좋겠어. 그래서 하는 얘기야. 나를 네 것으로 생각하고, 독점하려는 거, 그건 아니라고 봐. 어떻게 생각해?”

파랑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됐지?”

나중에는 내 친구들에게까지 환심을 사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 마음 모두를 붙들고 싶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랑새가 나에게 노래했다.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 바다로 내려간 /소금 인형처럼 / 당신의 깊이를 알기 위해 / 당신의 핏속으로 / 뛰어든 나는 …….”

나의 파랑새는 끝끝내 나의 피앙세가 되지 못했다. 
지금은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 둥지는? 지금도 바다의 깊이를 알려고 할까. 
나는 추억의 박스를 열어둔 채, 토스트 접시를 내 앞으로 끌어당겼다. 아함, 오늘 하루는 어떨까. 그래, 시간도 넉넉한데 들길을 걸으면서, '소금 인형'이나 들어봐야겠다.

·최제희 작가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 
♤재밌는 생각으로 행복과 밝은 에너지를 그리는 일러스트 작가. 연무장길에서 <티티팩토리>를 열고 활동하고 있음. 
♤titijehee@naver.com

·서울숲 작가
○글 쓰고 사진 찍는 작가 
○'울숲'은 동네 울타리가 되는 숲을 말하는데 성수동 동네 사람으로 살고 있음. 
○in.seoulsup@gmail.com

 <파랑새> 최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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