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통에 총알 박힌 느티나무가 들려주는 뚝섬 만세 운동 - 뚝섬 나루, 밑바닥 인생들의 거룩한 분노
몸통에 총알 박힌 느티나무가 들려주는 뚝섬 만세 운동 - 뚝섬 나루, 밑바닥 인생들의 거룩한 분노
  • 서성원 기자
  • 승인 2022.01.25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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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40) 성수동 성당 느티나무
가을날, 성수동 성당의 느티나무. ⓒ서성원

○ 소재지: 서울 성동구 성동구 성덕정길 23(성수동 성당)  

 성수동 성당 느티나무 위치

◆성수동 성당에 사는 느티 형제
나는 성수동 성당에 살고 있습니다. 신부냐구요? 아닙니다. 수녀요? 역시 아닙니다. 제 이름을 말하겠습니다. '느티'입니다. 이름이 멋있죠. 성당에는 나만 사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은 서로 형제, 자매라고도 하죠. 우리는 그런 형제는 아닙니다. 잘 모르겠다면 제 나이까지 알려드릴게요. 마흔 살입니다. 그냥 마흔은 아니고, 삼백마흔 살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수동 성당 마당에 있는 느티나무 형제입니다. 삼 형제였는데 지금은 둘만 남았습니다.

여름 날의 느티나무, 잎이 싱싱하다. ⓒ서성원

◆오백 살 회화에게 밀리는 삼백 살 느티
오래 살았으니 뚝섬에 대한 것이라면 모르는 게 없습니다. 그런데 회화 형 앞에서는 기를 펴지 못합니다. 오백 살 넘는 형이니까요. 회화 형은 성당에서 오백 미터쯤 한강을 거슬러 올라간 곳에 있답니다. 형은 뚝섬 터줏대감인 셈이죠. 살아있는 생명으로서는 뚝섬 최고의 역사이고 산증인입니다. 하지만 내가 회화 형에게 밀리지 않는 게 딱 한 가지 있습니다. 뚝섬 만세 운동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몰래 모여서 무슨 일인가 꾸미고
때는 1919년 3월이었습니다. 봄이라고 해도 한강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이 제법 쌀쌀한 계절이었습니다. 봄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까치가 날아왔습니다. 회화 형이 보낸 전령이었습니다. 요즘 들어서 동네 사람들 행동이 이상하다고 했습니다. 사람들 눈을 피해서 무언가 작당을 한다고 했습니다. 모여서 태극기도 그리고 격문도 쓰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들이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소달구지꾼, 마차꾼, 짐차꾼, 지게꾼, ……. 들어보니까 그들은 뚝섬 나루 일꾼들이었다. 배운 것이 적어서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회화 형을 자주 찾는 사람들입니다. 집안이 평안하게 해달라, 병 없이 살게 해달라고 회화 형에게 매달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회화는 그들을 지켜주려 했습니다. 나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나는 형의 마음을 잘 압니다. 그런데 회화 형이 볼 때, 뭔가 큰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서, 내 그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어떠냐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나한테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나 역시 느끼고 있었습니다. 동네 공기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었던 참이었습니다. 성덕정 자리에 있는 느티나무라고 해서 나한테 의지하는 동네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나도 회화처럼 내 그늘에 있는 사람들을 평안하도록 해줘야 할 책임을 느끼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 무렵의 동네 사람들은 무언가 수상했습니다.

봄에 새잎이 돋아나는 느티나무는 싱그럽다. ⓒ서성원

◆뚝섬 밤하늘을 뒤흔든 함성
그런데, 1919년 3월 26일, 저녁 무렵,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회화 형 동네 쪽에서 큰 외침이 들려왔습니다.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를 들고 이뭇개에 모여서 외치던 사람들이 순사 주재소가 있는 곳으로 밀려왔습니다. 그 외침에 사람들이 합세했습니다. 사람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날은 어둑한데, 대한 독립 만세 소리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뚝섬의 어두운 하늘을 뒤흔들었습니다. 
만세를 부르는 이들이 주재소 쪽으로 밀려갔습니다. 순사들은 주재소 안에서 놀라서 튀어나와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평소에 했던 것처럼 방망이를 휘두르며 위협했습니다. 그래도 시위대가 두려움 없이 밀려들자 마구 두들겨 팼습니다. 그러자 태극기를 든 사람들이 맨손으로 순사들을 제압했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도록 만들었습니다. 
수에서 열세였던 순사들은 성난 군중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싸움이 끝나나 싶었습니다. 날은 더욱 깜깜해졌습니다. 대한 독립 만세 소리는 도무지 잦아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늘어나서 그렇기도 했지만, 이들 군중이 나에게로 향하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나는 난감했습니다. '왜, 나한테로 오지? 나에게 나라를 독립시켜 달라고 부탁하려는 건가? 혹시, 성덕정 느티가 영험하니까, 그곳으로 가자고 누가 주장이라도 했던 걸까.'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뚝도면 사무소로 몰려온 만세 시위대
주재소에서 성덕정 쪽으로 오는 길은 마차가 다닐 정도로 넓었습니다. 신작로(新作路)라고 하는 길입니다. 그 길을 따라서 성난 군중들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나는 내 몸을 다 태워서라도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요. 조선을 독립된 나라로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만나고자 했던 것은 내가 아니었습니다. 뚝도면사무소였습니다. 조선시대 때 성덕정은 사라졌었고 그 자리에 뚝도면 면사무소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뚝도면 면사무소 마당에 서 있던 느티나무였습니다. 나는 그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 성난 뚝섬 사람들이 면사무소로 몰려오는 이유를요. 면사무소에는 뚝섬 사람들을 잔인하게 괴롭혔던 면서기가 있었습니다. 면서기라면 뚝섬 사람들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부들부들 떨 정도였습니다. 그 면서기를 징벌하기 위해 군중들이 몰려왔던 것입니다.
면사무소에 막 도착했을 때, 요란한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상원길 쪽에서 달려온 헌병차였습니다. 차에서 내린 헌병들은 만세를 부르는 군중들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앞에서 만세를 외치던 사람들이 픽픽 쓰러졌습니다. 그래도 군중들은 만세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쓰러졌습니다.

보호수 표지판. ⓒ서성원 

◆내 몸에 박힌 총탄은 끝끝내 말하지 못했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회화 형이 보낸 까치가 날아왔습니다. 간밤에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총소리를 들었으니 회화 형은 당연히 걱정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밤에 보았던 일을 까치에게 전했습니다.  
지게꾼과 마차꾼, 소달구지꾼이 면사무소 마당에서 일본 헌병과 어떻게 싸웠는지 전해 줬습니다. 뚝섬 나루의 밑바닥 인생들, 얼마나 순수하고 위대했는지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 역할을 다하지 못한 느티나무였습니다. 면사무소 마당이라면 확실하게 내 그늘이 드리운 곳입니다. 내 보호구역 안에 들어온 그 사람들을 나는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무지막지 당했는데, 내가 어떻게 동네 사람들의 수호신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내 몸에도 총알이 몇 개 박혀 있다는 말을 끝내 하지 못했습니다. 목숨을 잃은 이들이 있는데, 몸에 총알 몇 개 박혔다고 죽을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어쨌거나 뚝섬 만세 운동, 그 일 이후로 회화 형은 오백 살 넘었다고 나를 얕잡아 보는 일은 더는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마찬가집니다. 내 몸에 일본인들이 만든 총알이 박혀 있다는 것을 회화 형이 눈치챘나 봅니다.

<1919년 3월 26일 뚝섬 만세 운동 전개 과정>
-1919년 3월 23일 서뚝도리에 유인물 뿌려짐
-3월 26일 밤 9시 뚝도리 곳곳에서 만세 시위
-1500명 면사무소 습격
-300명은 헌병주재소 포위하고 만세 시위
-헌병대와 해산을 협의 하던 중, 증파되어온 15명의 헌병이 무차별 사격
-1명 사망, 12명 부상, 103명 연행 
-시위 주동자로 체포, 기소 12명 중 10명은 마차꾼, 소달구지꾼, 짐차꾼, 단순노동자 등 노동자. (참고 자료, 성동역사문화연구회)

나뭇잎을 떨구고 맨몸으로 서 있는 느티나무. ⓒ서성원

 

느티나무가 선 길 건너편, 재개발해서 서울에서 알아주는 고급 아파트가 들어섰다. ⓒ서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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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섬 만세 운동 관련 체포된 사람들 모습 (출처 성동역사문화연구회 발행 도서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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