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과 풍수 (용대기 43)
동양학과 풍수 (용대기 43)
  • 성광일보
  • 승인 2022.01.2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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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老泉)김흥국/
광진투데이 편집위원장
삼오지리학회장역임
현재 한국현공풍수학회장
신화씨엠씨(주)대표
노천(老泉)김흥국

지난시간은 오월오일 단오날이 치우천황 탄신일로 우리민족의 삼대명절이며 위로는 임금부터 아래로는 백성들까지 치우천황의 가피력으로, 일 년의 액땜을 치우부적으로 하였으며 다양한 액막이 행사를 했다고 했다.
부적의 내용도 어마어마하게 온갖 액땜을 요구하는 후손들의 간절한 마음이 염치없이 들어있다. 이는 같은 핏줄의 후손으로 하는 요구이지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은 할 수없는 기원과 절규이다.

내용은 오월오일 천중지절 상득천록 하득지복 치우지신 동두철액 적구적설 사백사병 일시소멸 급급여율령(五月五日 天中之節 上得天祿 下得地福 蚩尤之神 銅頭鐵額 赤口赤舌 四百四病 一時消滅 急急如律令) 
풀이하면 “오월오일 천중절 위로는 하늘의 녹을 얻고 아래로는 땅의 복을 얻어 적구적설의 치우신이 404가지 병을 일시에 물리쳐주십시오”라는 내용이다.

적구적설이란? 붉은 입 붉은 혀를 말한다. 마치 용이 불을 뿜듯, 화염방사기처럼 모든 악을 불태워 버리는 능력을 의미하며, 붉은 색은 치우를 상징하는 색깔이다. 오늘날 붉은 악마라는 별칭도 이러한 근거가 연결된 것이다.

붉다는 것은 피와 같이 신성한 생명을 상징하며, 모든 악을 불사르는 개념으로 부적을 붉은 주사로 쓰는 것도 이렇게 신령한 기운의 위력을 발산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용에는 404가지의 병을 일시에 소멸시켜달라는 염원이다. 이는 후손만이 조상할아버지께 할 수 있는 애정 어린 어리광인 것이다.

전쟁이 없는 작금의 시절에는 스포츠에 남아서 국가대항전처럼 대외적인 게임에서 나도 모르게 민족의 수호신에게 기원하고 염원하는 것이다. 이는 단군조상보다 더 높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신성으로 우리 뼛속에 DNA로 유전되고 있다. 아마도 상나라 때 청동 솥의 치우문양도 이와 똑같은 자손의 염원이었을 것이다.
우리민족의 핏줄에는 치우천황의 신성이 나도 모르게 깊숙이 유전되고 있다.

이러한 적구적설의 강한기운을 얻기 위해 단오절에 붉은 수수팥떡이나 붉은 고추, 붉은 대추를 먹는 풍습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치우신의 가피력이 동이족의 풍습으로 전해져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벽사용 적령부는 대궐기둥이나 대문, 사대부집 등에서 세상의 잡귀와 악령을 막기 위해 부적을 붙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부작으로 신라의 용면와나 백제의 도철문양이나 대문의 손잡이, 용마루 등에서 벽사용으로 사용되어졌지만 지금은 귀면와나 도깨비로 해석되고 이름 지어졌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근본은 용문양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이제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우리는 조상의 가피력으로 모든 악에서 구해주는 벽사부적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최초의 훈민정음 책인 석보상절(9:36)의 도깨비와 관련한 돗가비 내용을 보면 악마나 귀신이 아니라는 증거가 더 명쾌해 진다. “신령께 플며 돗가비 청하야 복을 비러 목숨 길오져 하다가 내 종내 득디 몯하나니”여기에 돗가비는 복과 명을 빌어주는 신령적인 존재와 같다. 해코지하고 죽이고 잡아먹는 악령 같은 존재가 아니라 초능력을 가지고 복과 명을 빌어주는 영험한 존재인 것이다.
아마도 우리선조들은 돗가비의 존재가 치우상징과 맥락을 같이 함을 알았던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지금의 도깨비를 정확한 고증하면 1915년 경, 당시 소학교 교과서에 실린 “혹부리영감”으로 삽화도 일본의 오니를 그대로 옮겨 방망이든 도깨비로 소개되었기 때문에 생긴 오해의 소산으로 일제 수입산 동명이체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돗가비는 서양의 유령이나 중국의 요귀나 일본의 오니 등과 같은 악랄함이 전혀 없는 선량한 또 다른 공간차원의 인간미 넘치는 아저씨 같은 캐릭터이다.
이름도 왕도깨비 장수도깨비로 전해지지만 실제 도깨비 면상이 그림으로 전해지는 것은 없었다. 지난연재에서 도깨비방패에 새겨진 임금 王의 글자도 도깨비라면 이마에 王자를 새길 수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치우상징으로 전쟁의 수호신으로 승리와 안전을 염원하는 벽사용문양인 것이다.

이러한 치우상징은 치우부적과 치우둑기와 더불어 우리민족에게는 “치우를 믿고 의지 한다”는 의미로 전쟁에서 무신의 보호를 받고, 천우신조로 죽음을 면하고 승리를 주는 신성인 것이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도 임진왜란 중에 계사(1593)년, 갑오(1594)년, 을미년 3년 동안 매년 치우천황의 사당인 뚝신사에서 제를 올렸다는 난중일기의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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