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맞으며 추억해보는 아버지와의 유년시절
명절을 맞으며 추억해보는 아버지와의 유년시절
  • 임태경 기자
  • 승인 2022.01.27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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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경/학생기자
임태경/학생기자

소년의 치기어림이었다. 더벅머리를 한 채 한쪽다리를 길게 뽑고 서 있는 소년이 흑백 사진 속에 서 있었다. 다 불타버렸다던 옛사진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한장이였다. 사진 속 소년은 세상이란 알지 못한다는 눈빛으로 터져나오려 하는 순박한 웃음을 속으로 크게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소년에게 이 사진 한 장은 아마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의 설램이였을 것이다. 맨날 제 것을 빼앗는 형들에겐 없는 멋진 독사진. 서울에서 온 삼촌이 너에게만 사진을 찍어줄거라 했을 때부터 소년의 머리 속은 온갖것들로 가득 차 올랐을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위 위에 올라 가장 멋진 옷을 입고 가장 어른스러운 포즈를 취해야지. 그날부터 소년은 거울 앞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옆구리를 콕콕 찌르는 형들의 농간에도, 하교길 달음박질을 치다 그만 미끄러 넘어지더라도 소년은 발딱일어나 삼촌과의 달콤한 약속을 떠올렸을 것이다.

소년에겐 항상 꿈이 있었다. 커가면서 그 꿈은 조금씩 얼굴을 달리했지만 항상 이루고 싶은 무언가가 소년의 마음 속에 있었다. 소년이 나이가 들어 청년이 되었을 적 그의 꿈은 서울에 올라와 딴따라가 되는 것이었다. 어디든 앞에 나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길 좋아하던 그는 문득 친구들끼리의 술자리가 아니라 사람들 앞에 서고 싶어졌다.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박수를 받고 싶었다. 염원 끝에 어렵게 작은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지만 그는 자신의 첫 무대에서 한 없이 못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너절해진 꿈과 함께 시작된 그의 서울살이. 그의 꿈은 서울에서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것으로 바뀌었고 술 한잔에 뽑던 노래 한자락도 더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의 꿈을 비켜선 그는 아파트 한 켠의 베란다에 작은 정원을 꾸렸고 매일 아침 조리개에 물을 담아 화분을 적시는 것으로 자신의 꿈을 위로했다. 산과 들을 좋아했던 소년은 어느덧 가장의 무게를 내려 놓아도 될 만큼 다 큰 자식을 둔 주름진 아비가 되었고, 다시금 그를 타박하는 것 하나 없는 들로 가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어느날 아빠가 기울이는 술잔 끝에 이제 본인은 꿈을 이뤘다 했다. 오늘 드디어 고향의 산에 제 이름을 세겼다며 너희들을 얼른 출가시키고 엄마와 함께 내려가서 살겠다 했다. 아빠의 나이든 꿈이 부러웠다. 제 이름을 세긴 산을 밟으며 세월을 느꼈을 그 모습이 애잔하게 그려졌다.<practice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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