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우리 동네 골목 시장 구경해 보실래요?
[소설] 우리 동네 골목 시장 구경해 보실래요?
  • 성광일보
  • 승인 2022.01.2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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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설자
오설자 시인

한여름 오후 두 시. 모든 것이 정지된 시간이다. 차들은 느릿느릿 기어가고 나뭇잎조차 까딱하지 않는다. 흰 구름도 길을 잃고 멍하니 떠 있다. 뜨거운 햇살을 양산으로 가리고 나른하게 걷다가도 시장 골목에 들어서면 문득 기운이 난다. 정지 화면이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골목시장 아치형 간판을 지나면 팥죽집이 있다. 이집 팥죽이 맛있다. 팥죽을 좋아하는 나는 찬바람이 불면 그곳에 자주 간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겨울이 기다려진다. 횟집과 속옷가게,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청과물가게를 지나 모퉁이를 돌면 생선집이 있다. 얼음을 올려놓았지만 숙성되어가는 생선 냄새가 가득하다. 사람 사는 냄새다. 

그 옆에 자주 들리는 야채가게가 있다. 육십 대 후반 정도인 주인아주머니는 항상 조용한 목소리로 말씀하시고 늘 정갈하게 채소를 손질하여 놓는다. 채소들이 그녀를 닮았다. 때로 현금이 부족하여도 다음에 주라면서 봉지에 담아주신다. 
“호박잎 좋아하나 봐.”
“네, 남편이 좋아해요.”
“내가 껍질 다 벗겨 놓았어. 그냥 찌면 돼.“
'앞으로 나란히' 정돈한 것 중에도 제일 여리고 싱싱한 것으로 주신다.

또 들리는 야채가게 할머니는 거의 90도에 가깝게 허리가 굽어 있다. 쪼그려 앉아 야채를 다듬고, 뒤집어놓고, 물을 뿌리고, 어떻게든 푸성귀가 사람들 눈에 띄게 애를 쓰신다. 당장 먹을 것도 아니면서 거기를 지나치지 못하고 꼭 한 가지는 산다. 우리를 힘들게 키우던 수십 년 전, 시장 한 귀퉁이서 풋고추를 쌓아 놓고 '열 개에 300원!' 하며 파는 어느 여름날 엄마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과수원 한쪽에서 키운 고추가 너무나 싱싱하여 한여름 내내 그것을 팔아 우리들 학비에 보태셨다. 돈을 받을 때 할머니는 신기하게도 기역자 허리를 반듯하게 펴신다. 구겨진 천 원짜리를 펴서 노란 고무줄로 묶어 허리에 찬 돈주머니에 넣는 것을 보며 할머니가 오래도록 돈을 많이 벌기를 바라게 된다. 

손바닥에 강정을 올려놓고 맛보라는 떡집 아주머니와 인사를 하고 길바닥까지 상자를 엎어놓고 신발을 늘어놓은 곳을 지나면 기름집이다. 기름집 아저씨는 고소한 기름을 짜고, 야무진 아주머니는 매운 고춧가루를 판다. 이제는 '엄마표 참기름'을 먹을 수 없어 은선이에게 참깨를 사서 직접 짠다. 예전에 기름을 짜고 소주병에 담았더니 아홉 병이나 되었다. 앤젤도 한 병, 주리도 한 병, 선생님도 한 병…. 이리저리 주다 보니 얼마 남지 않았다. 원래 그렇단다. 있는 것 남들 퍼 주고 결국 나는 사 먹는 거라고. 그래도 나눌 때 기뻐하던 그들을 떠올리니 흐뭇해진다.  

새마을 구판장과 건어물 가게를 지나면 티브이에도 나온 집이 있다. 찐빵과 꽈배기와 도넛이 피라미드처럼 쌓여 있고 고추와 오징어 튀김이 그득하지만 저녁때가 되면 다 팔리고 없다. 유명한 고추튀김과 유명한 꽈배기를 사면서 왠지 나도 유명해진 기분이다. 아주머니는 주문을 받고, 돌아서서 튀김을 뒤집고, 다시 돌아서 빵을 꺼내고, 종이봉투에 척척 담은 다음, 집게로 설탕을 착착뿌려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주고, 돈을 받고 잔돈을 내주고. 거기까지 십초가 걸리지 않는 듯, 몸동작이 숙련된 로봇 같다. 카우보이모자를 쓴 아저씨 얼굴은 밀가루처럼 하얗다. 오이 고추를 반 갈라 속을 넣고 반죽을 묻혀 큰 고추튀김을 만들다가, 오징어 튀김을 뒤집고 건진다. 아저씨 동작도 만만치 않다. 그렇게 두 분이 정해진 일을 쉼 없이 한다. 오랜 세월 익숙해진 탓에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
멀리서 생선가게 힘 좋은 청년들이 시장이 떠나가라 외친다.
“자 오늘 생선 물이 좋습니다. 게가 만원이고요! 갈치도 좋습니다.”

전복을 고르면서 얼마인지 물었더니 서글서글한 외국인 청년이 웃으며 말한다.
“나선 마리에 만 원이예요.”
'다섯 마리'라고 알려 줬더니, 비닐에 전복을 담으며 큰소리로 말한다.  
“다섯 마리에 만 원!”

그의 외침을 뒤로하고 걸어가면서 나는 생각한다. 머나먼 타국, 이 골목시장 생선가게에서 일하는 그에게 코리안 드림이 이루어지길. 고국으로 돌아가면 결혼도 하고 번듯한 집도 사서 아이들과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기를. 

시장 끝나는 길모퉁이에 있는 친구네 금방은 장보러 온 적마다 들리는 참새방앗간이다. 나를 보더니 환하게 웃다가 이내 한숨이다. 가게는 파리만 날리는데 세금만 올린다고 세모꼴 눈을 한다. 나를 따라 들어온 손님이 비싼 팔찌를 산다. 다행히도 그녀는 오늘 파리만 날리지 않아도 되니 세금 낼 때도 억울하지 않을 것이다. 이곳은 할머니들의 사랑방이기도 하다. 그녀는 할머니들이 올 적마다 시원한 물이나 믹스커피를 드리고 말 상대를 해 준다. 풍채 좋은 할머니가 스쿠터를 문 앞에 떡 세우고 들어오더니, “나는 커피!”하고 주문한다.
“남편이 죽었는데 밥도 잘 먹어지더라고. 10년 동안 아팠는데 죽으면서 저거 빨간 오토바이 사 주고 갔어.”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집을 사서 이사 가고……. 할머니 팔십년 굽이굽이 인생길을 들으며 우리도 같이 굽이굽이 돌아간다. 유쾌한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다 못 산 세월까지 오래 오래 사실 것이다. 
사는 것이 힘들 때 시장으로 나가보라. 그들의 굵은 손가락을 볼 때, 나물 하나라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볼 때, 잘 살아야겠다는 결의가 모락모락 피어오를 것이다. 골목 시장에서 만나는 정겨운 사람들에게서 나는 소박하고 부지런히 사는 모습을 배운다. 삶이 경건해지고 소중해진다. 그들은 나물을 팔고 생선을 팔고 또 덤으로 행복을 파는 분들이다. 

나는 일주일에 두어 번 골목 시장에 가서 장바구니 가득 행복을 사고, 고마운 마음을 거스름으로 받아온다. 우리 동네 골목시장을 다녀올 때마다 나는 힘이 난다.

<오설자 프로필>
- 수필가
- 2016년 에세이문학 등단
- 2021 아르코 문학창작지원금 수혜
- 저서 《야무지고 꼼꼼하게 선생님이 알려주는 초등1학년》
- 공저《지금은 나를 사랑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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