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봄의 정경 - 두보를 만나다
[수필] 봄의 정경 - 두보를 만나다
  • 성광일보
  • 승인 2022.01.2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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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백중/수필가, 성동문인협회 이사
윤백중/수필가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두보의 생가를 보았다. 정문을 들어가니 궁궐 문을 들어가면 꼭 있는 해자의 축소판과 같이 작은 개울물이 흐른다. 다리를 건너 조금 가니 두보의 동상이 보였다. 바짝 마른 전신 동상은 볼품이 없었다. 동상 옆 뒤로 들어가니 두보의 모든 것이 여러 방에 꽉 차가 있었다. 순서대로 모두 보았다. 거의 한문으로 되어 있었다. 그중 유명한 내용이 한글로 번역된 것이 있었다.

기록을 보면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나라의 번영상쇠와 통일에서 붕괴로 이어지는 격동기에 살았다. 민중의 참상과 시대의 실상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한때 당 현종의 신임을 받았으나 생업이 없어 어렵게 살기도 했다. 늦은 나이에 미관말직을 얻었으나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실업자가 되었다. 숙종(肅宗) 때 직업을 얻었으나 얼마 안 되어 관직을 버렸다. 생가인 쓰촨성 청두에 있는 완화 초당에서 잠시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살 때도 있었다. 내전 시대에 살았으므로 신변의 안전을 위해 거처를 자주 바꾸었다고 한다. 어려운 생을 살아서 항상 우울했다는 기록도 있다.

양양이 고향인 두보는 집안이 모두 관리 생활을 했다. 어려서는 어머니가 일찍 사망하여 고모 집에서 살았다. 7세에 시를 썼고 서예에도 재능이 있어 20세에 명성을 얻었다. 독서파만권(讀書破萬卷) 하필여유신(下筆如有神) 했다는 그도 벼슬 운은 없었다. 35세에 미관말직을 얻어 시안에 왔다. 조실부모 등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우울하고 부정적 생각이 많은 것 같다. 장안에서 지은 여러 편의 시(詩)도 우울한 내용이 많다는 설명도 있다.

천보 13년에 홍수로 추수를 못 한 장안의 백성들은 자식을 팔아 곡식을 구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가난했던 두보는 벼슬 전 자식을 굶어 죽이는 시련도 겪었다. 처자식을 고향 근처 봉선에 보내 구걸도 시켰다. 다음 해 겨울 어느 날 가족을 보려고 장안을 떠나 봉선현으로 향했다. 겨울밤인데도 길에는 온통 전쟁 난민들로 붐볐다. 여산(驪山)을 지날 무렵 산 밑 화청궁(華淸宮)에서는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고 고기 굽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현종과 양귀비가 밤낮을 잊고 환락에 빠진 현장이다. 화청궁에서 주색을 즐기던 사람들은 모두 귀족인데 그들이 입은 옷은 모두 가난한 백성들이 한 올 한 올 짜낸 것으로 만든 옷이다. 남자들은 모두 전쟁터로 내몰고 모든 재물은 통치자에게 바쳤다. 이렇게 불공평한 사회를 묘사한 시를 지었다.

아주 낮은 벼슬인 팔품 하(八品下)에 속하는 우위 솔부 참군(右衛率府參軍)이란 벼슬을 얻고 가족을 데리러 봉선을 가다가 화청궁 앞을 지날 때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시 한 수를 지은 것이 있다.

〈봉선으로 가면서〉

귀족들 집안에는 술과 고기 썩는데 주문주육취 (朱門酒肉臭)
길가엔 얼어 죽은 사람들의 시체들 노유동사골 (路有凍死骨)
지척에서 부귀와 가난이 이처럼 다르니 영고지척이 (榮枯咫尺異)
슬프도다 더 이상 말을 잇기 어렵구나 추창난재술 (惆悵難再述)

인구의 반 이상이 사망했다는 안사의 난은 서기 755년에 시작하여 9년 후인 763년에 끝난 당나라 때 전쟁이다.

아래의 시는 당나라 6대 현종(玄宗) 천 보 11년에 전쟁터로 끌려가는 전사들이 청해(靑海) 고원에서 흉노와 싸우면서 죽어갈 때 계속 군대에 끌려가는 가족과 병사의 전송 장면을 본 두보가 시로 표현했다.

〈병거행兵車行 〉 일부

수레는 삐걱삐걱 말은 씩씩 車轔轔馬蕭蕭 (거린린 마소소)
출정하는 병사의 허리에 찬 화살 行人弓箭各在腰 (행인궁전각재요)
부모처자 총총걸음 뒤쫓으며 전송하니 耶孃妻子走相送 (야양처자주상송)
먼지 날려 함양 교 잘 안보이네 塵埃不見咸陽橋 (진애불견함양교)
옷 잡고 발 구르며 길 막고 통곡하니 牽衣頓足擱道哭 (견의돈족각도곡)
통곡소리 구름 뚫고 하늘을 찌르네 哭聲直上千雲霄 (곡성직상천운소)

전쟁으로 함양은 함락되었다. 현종은 양귀비를 데리고 서촉 지방으로 도망갔다. 현종 이후 즉위한 숙종(肅宗)을 알현하려 했으나 반란군에 여덟 달을 잡혀있던 두보는 운 좋게 석방되어 장안으로 갔다. 전쟁은 계속되었다.

폐허로 덮인 장안 궁성에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다. 파릇파릇 싹이 나오고 꽃이 피는 정경을 보고 희망을 읊으려 했으나 봄의 풍경과 어지러운 나라와 자신을 생각하는 시를 썼다. 이 시는 역사에 남은 유명한 시다.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져 5.6 십 년대에는 대학입시에 거의 단골로 등장했다. 매년 두보의 춘망에서 문제가 나와서 필자도 열심히 공부했던 생각이 지금도 생생하다. 덕분에 지금도 춘망은 달달 외운다. 역사적 의미를 포함해서.

봄의 정경 (春望)

국파산하재 國破山河在 나라는 깨어져도 산하는 그대로 있고
성춘초목심 城春草木深 도성에도 봄이오니 초목이 무성하다
감시화천루 感時花濺淚 시절을 아는지 꽃조차 눈물 쏟고
한별조경심 恨別鳥驚心 이별이 한스러워 새들도 놀라는 구나
봉화연삼월 烽火連三月 봉화가 석 달 동안 계속 이어지니
가서저만금 家書抵萬金 집에서 온 편지는 만금같이 소중하다
백두소갱단 白頭搔更短 흰머리는 긁는 대로 짧아져서
혼욕불승잠 渾欲不勝簪 도무지 비녀도 못 이길 지경이구나

두보는 우울한 사람이지만 인간적인 면이 있다. 만년에 자연현상을 좀 더 가깝게 글로 표현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만년에 자연을 노래한 시 한 수 적어 본다.

양개황리 명취류(兩箇黃鸝鳴翠柳)

꾀꼬리 두 마리 푸른 버드나무에서 울고 양개황리명취류 兩箇黃鸝鳴翠柳
백로는 줄지어 푸른 하늘 날아간다. 일행백로상청천 一行白鷺上靑天
창문에 박힌 듯한 소령의 천 년설 창함서령천추설 窓含西嶺千秋雪
문 앞에 머문 만 리 밖 동오의 배 문박동오만리선 門泊東吳萬里船

시성 두보의 일생을 4기로 나누어 보았다. 1기는 시성으로 평가를 받으면서도 직업을 못 구하고 자식이 굶어 죽는 어려움을 겪은 시대로 부정적이고 우울증을 심하게 겪던 시대다. 2기는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던 시대를 살면서 〈봉선(奉先)으로 가면서〉 〈병거행兵車行〉 같은 시를 썼던 시기다. 3기는 안녹산의 난 등으로 세상이 불안하고 자신의 근심을 노래한 춘망(春望)이란 시를 발표했다. 이 시는 여러 가지 역사적 의미가 있다. ‘봉화 연 삼월 하니, 가서 저 만금’ 전쟁이 계속되니 집에서 온 편지는 금보다 소중하다는 가족사랑은 두보의 시의 백미(白眉)이다.

4기는 본인의 정신적 여유를 준 시기로 자신과 인간의 선(善)을 글로 썼던 시기다. 인생을 정리한 때로 볼 수 있다. 안녹산의 난으로 국민의 반 이상인 3,600만 명이 사망했다는 전란을 겪으면서 시인의 이름도 한때 반짝하고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었다. 서기 770년 59세에 생을 마감하면서 그의 존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200년이 지난 11세기 북송대에 와서 그의 존재가 높이 평가되면서 유명한 시성(詩聖)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두보는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성종 때 유윤겸(柳允謙)이 그의 시를 우리말로 번역한 두시언해(杜詩諺解)가 있다. 조선 시대 그의 작품이 높이 평가되었다. 중국을 대표했던 시성 두보는 이태백과 동 연대 살면서 두 사람을 이두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 국가를 대표했던 시인이 국난으로 어려운 시대에 활동하면서 힘든 생을 산 것을 보면 운명으로만 보기에는 너무나 안타깝고 허무하다고 생각하면서 두보가 살았던 허름한 옛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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