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과 풍수 (용대기44)
동양학과 풍수 (용대기44)
  • 성광일보
  • 승인 2022.02.1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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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국/
광진투데이 편집위원장
삼오지리학회장역임
현재 한국현공풍수학회장
신화씨엠씨(주)대표
김흥국

그동안 치우천황의 상징인 용문양에 대해 연재를 했다.
오늘날, 용은 중화족에게는 한나라 이후 왕권의 상징으로 차용됐지만 지금은 자신들이 마치 용의 후손이나 되는 듯이 온갖 축제를 열고 행사를 한다.
본래 근본이 약하면 떠들썩하고 화들짝하는 법이다.
용의 근본은 동이족에서 출발했다. 

7600년 전 중국이 말하는 “중화제일 龍"이나 “천하제일 龍"으로 부르는 곳은 동이족의 근거지인 홍산문명의 발상지에서다. 중국은 없는 용문화를 살리기 위해 온갖 놀이와 행사로 떠들썩하고 있지만 우리는 있는 용문화도 제대로 못 살리고, 근본마저 서서히 잊어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화의 미래를 위해서 약 4700년 전, 치우천황의 행적을 찾아서 현재 민속문화에 존재하고 있는 용의 근본에 대해 규명하고 다양한 유물을 통해 용의 출처를 파헤치는 작업 중이다.
그 결과 우리의 민속놀이에 사용 중인 용대기는 치우천황이 황제 헌원과 싸울 때 깃발이요 도깨비나 귀면와 등은 치우상징인 용에서 출발한 치우부적으로 규명해 보았다.
그리고 우리민족의 삼대명절은 추석과 설날과 단오절이다. 단오절이 삼대명절에 속한 것은 이 날이 치우천황의 탄신일이며 치우부적인 적령부로 일 년의 액땜을 하는 소중한 날이기 때문이다.

단오절은 치우의 붉은 기운이 하늘에서 서리듯 양의 기운이 하늘에서 뻗쳐 서서히 땅을 데우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봄의 기운이 마감하고 여름의 시발점으로 더위로 인한 온갖 질병과 전염병이 창궐하는 때이기에 우리민족은 치우부적인 적령부로 일 년의 액땜을 하는 날로 잡은 것이다.
참고로 중국은 단오절 의식이 없으며 액땜 부적도 없다. 그들은 치우핏줄이 아니기에 자격이 없는 것이다. 다만 5가 겹치는 날이기에 중오절(重五節)이나 천중절(天中節)이란 명칭으로 물에 빠져 죽은 초나라 충신 굴원을 기리며, 용선경합이라는 뱃놀이로 대신한다. 그들에는 뚜렷한 용문화가 없기 때문에 작은 불씨라도 살리고 싶은 행사이다.

하지만 치우는 우리의 얼과 정신 속에 깊이 잠재되어 수천 년을 승리의 신으로 DNA에 유전되어 왔다. 그래서 오랜 세월 다양한 벽사부로 궁궐이나, 기와지붕, 대문, 청동솥 등등의 외부와 연결되는 장소에 부정을 막아주는 문양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은 이를 도깨비라 명명하고 귀면와란 이름으로 격하하였으며, 우리의 강단사학자들은 검증 없이 교과서에 그대로 실었기에 우리는 치우상징을 도깨비나 귀신으로 잘못 오해하고 있으며 그 결과 붉은악마라는 명칭이 탄생한 것이다.
지난 연재를 통해서 우리는 치우상징의 벽사부적이 도깨비나 귀면와로 오도된 과정과 이유를 규명해 보았다.

이제 우리의 전통놀이를 통해서 치우깃발을 검증해 보자.
일제는 조선 강점기를 통해서 우리의 정신과 얼을 빼놓기 위해 온갖 문화적 악행을 저질렀으며, 우리를 얼빠진 민족으로 만들어 영원한 식민국으로 부려먹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강압적 사상은 잠시잠깐 머물렀고, 수천 년을 이어온 전통의 미래는 자손의 숨결 속에 맥박으로 뛰어서 오늘까지 이어온 것이다.
치우깃발도 우리 전통문화의 맥박과 함께 용대기나 용당기 등으로 전래되어 있다.

출발은 수천 년 전에 군대놀이에서 농군(農軍)이라는 형태로 시작했지만 세월이 흘러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명칭과 함께 지금은 농악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출발이 군대놀이였기에 연희자도 상급자와 하급자의 서열을 가진다. 상쇠나 꼭두쇠가 대장으로 천둥소리인 꽹과리장단으로 무리를 유도하고, 심장고동소리에 맞춘 북소리를 공격신호로, 징소리는 바람소리로 후퇴신호를 삼았다.

그리고 농악은 길군악으로 시작한다. 이는 전시에 출정하는 행군과 같은 것이다. 진풀이로 원진, 태극진, 십자진, 오방진, 을자진 등의 보법은 전시용어 그대로이다.
그리고 농악대가 쓰는 벙거지나 고깔은 군모를 대신 한 것이며 그 중심에는 치우천황의 상징인 용대기를 높이 올려 연희를 한다.
이는 왕실에서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정조대왕의 화성행궁그림에도 이러한 내용이 그려져 있다. 임금을 상징하는 용기(龍旗)와 둑기(纛旗)가 항상 앞장을 섰으며, 평소에는 수어 관청에서 이를 관리했고, 해마다 봄, 가을 치우사당에서 둑신제(纛神祭)를 지낸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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