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는 듯한 사람에게 두 번 속는다
잘 아는 듯한 사람에게 두 번 속는다
  • 성광일보
  • 승인 2022.02.1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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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논설위원
송란교

내가 조금 아는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친구야 00 친구 잘 알지?’. ‘응 그래, 잘 아는 친군데 무슨 일이야?’. 이렇게 시작한 전화가 나를 제외한 다른 두 친구 사이에 큰 사단이 났었다. 전화를 걸어온 친구는 나를 그만큼 신뢰를 했는데, 내가 잘 안다고 말한 친구는 나를 그저 안면이나 있고 속여먹기 딱 좋은 먹잇감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나를 믿고 전화를 한 친구는 내가 잘 안다고 했던 친구와 어떤 일을 도모하다 큰 낭패를 보았다고 했다. 나한테는 직접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는데 다른 친구들 입을 통해 그 불만의 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다. 마음이 참 씁쓸했다. 내가 나를 고르고 너를 골랐는데 누구에게 실망하고 누구에게 화를 낼 수 있단 말인가?

얼마 전 서울 근교 가평에 있는 연인산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정상에서 하산하다 길을 잘못 들어 상당히 먼 거리를 되돌아와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예전에도 늘 다니던 길인데, 잣나무도 그때 그 나무인데, 오늘따라 아는 얼굴이 크게 화를 내는 듯, 왠지 낯설다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엉뚱한 길은 아니겠지 하면서 엇비슷한 길을 터벅터벅 내려왔다. 목적지는 보일 듯 말 듯, 이 길이 맞는 듯하고 저 길이 아닌 듯한데도 어렴풋한 기억에 의존해서 맞는 길이라 생각되는 길을 선택했었다. 결과는 아닌 듯한 길이 원래 목적했던 그 길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선택의 기로였던 그곳으로 다시 올라가서 올바른 방향으로 내려가라 했다. 다시 오르려니 귀찮은 마음이 앞서고 힘 빠진 다리마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큰길로 내려와서 목적지로 가는 택시를 타려고 했었다. 큰길까지 내려와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상당 시간 동안 택시는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머피의 법칙이 이곳까지 따라왔나 보다. 어린 시절 민방공훈련을 하면 지나가는 차들이 모두 정지한 상태로 도로변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그 시절이 왜 떠오르는 것일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택시를 무시하고 목적지를 향해 무작정 걸었다. 산길이 아닌 아스팔트 길을 꽤나 걸었더니 무릎이 시렸다. 산악대장의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8명이나 되는 친구들도 덩달아 고생했었다. 리더의 선택과 판단은 그만큼 막중하다는 것과 어중간한 기억을 밑천 삼아 길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큰 교훈을 깨달은 날이었다.

인지자실야,이기소장자(人之自失也,以其所長者,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은 그가 가장 잘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선유자사어심지,선사자사어중야(善游者死於深池,善射者死於中野, 수영을 잘하는 사람은 깊은 물에 빠져 죽고, 활을 잘 쏘는 사람은 들판에서 죽는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고 짐승은 앞만 보고 달리다 덫에 걸린다.’라고 누가 스치듯 한마디 하고 지나갔다.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완전 초보자는 가르침을 주시는 선생님이 무척 대단해 보인다. 그러다 조금 아는 듯할 때 그 선생님에 대한 존경은 타지 않고 세워둔 자전거 앞바퀴의 타이어에 바람이 빠지듯 그렇게 사라진다. 마치 본인이 다 아는 것처럼 뽐내려 한다. 특히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마치 자신이 모두 다 아는 것처럼 떠벌린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그 분야에서 전문가 수준에 도달하면 선생님에 대한 존경이 다시 살아난다. 한겨울 잘 견뎌낸 인동초 꽃잎이 봄 햇살에 피어오르듯 존경하게 되는 것이다.

아는 듯한 길, 가다 말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게 만든다. 어렴풋이 아는 길을 얼렁뚱땅 무모하게 가다 보면 길을 잃는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게 되고 어정쩡 주춤거리게 된다. 그러니 잘 모르는 길은 아예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고 출발하면 된다. 세상 이치를 잘 아는 사람과 아는 척하는 사람과 잘 모르는 사람도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 이와 비슷할 것이다. 내가 잘 아는 친구나 잘 모르는 친구가 아닌, 잘 아는 듯한 친구가 나를 속인다. 알만한 사람이 왜 그랬을까? 내가 확실히 안다고 생각하여 나의 곳간 열쇠까지 모두 내준 것은 아닌가?

잘 알아야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지위지지,부지위부지,위지지야(知之謂知之,不知謂不知,謂知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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