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의 노포] 35년 한 자리 마장동 <꼬끼오 치킨호프>
[성동의 노포] 35년 한 자리 마장동 <꼬끼오 치킨호프>
  • 원동업 기자
  • 승인 2022.02.23 1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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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 2002월드컵, 2018평창동계올림픽 이웃과 함께 본 치킨호프집”
20억 자산가 딸, 35년 가게 지킨 엄마가 서로 배운 것? “나 위해 돈 쓰세요!”
꼬끼오 치킨호프의 박태선 사장이 딸 이지영 작가의 책을 들고 있다. “여름 밤엔 밖에서도 자리 폈으면… ”소박한 꿈도 꾼다.

박태선 사장은 51년생이다. 겨울 초입 12월이 생일이니, 지난해말 정확히 일흔의 세월을 살았다. 그중 35년 동안 치킨 그리고 호프는 그녀의 일이었다. <꼬끼오 치킨호프>. 
마장동축산물시장 서문을 건너, 육교쪽으로 조금만 오르면 그녀의 가게가 있다. 살짝 자리를 파고들어간 '겸손한 자리'다. 35년을 그 한 자리에서, 이름을 바꾸지도 않고, 메뉴를 고치지도 않고, 특별히 종업원을 쓰지도 않으면서 88년 올림픽을, 2002년 월드컵을 그리고 2018년의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동네 사람들과 소리지르며 박수치며, 묵묵히 치킨을 튀겨내고 골뱅이소면을 말면서 함께 자리를 지켰다. 

지난해 우연히 들르게 된 그 가게엔 자녀들이 보낸 꼬끼오 35주년 축하 화환이 문 앞에 우뚝 버티고 서있었다. 그리고 매장 안에는 그 박태선 사장의 따님이 지은 책 세 권이 나란하다. 《엄마의 돈 공부》 《엄마의 첫 부동산 공부》 그리고 《엄마의 경제독립 프로젝트》.

2020년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보았을 이들이 박태선 사장같은 자영업자들이었다. 어려움의 시기 동안에도 꼬끼오 치킨호프는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50억 자산가의 엄마이자, 35년 자기 가게를 굳건히 지켜온 사장 박태선 님과 지난 2월 10일 만났다. 인터뷰 후에도 박태선 사장은 가게를 열기 위해 자신의 일터로 갔다. 

35년간 한 자리, 한 메뉴, 엄마 박태선의 가게

- 35년은 강산조차 세 번 반쯤 바뀌는 세월이다. 오랜 동안 수고 많으셨다. 자녀들의 같은 마음으로 축하인사 전하고 싶다. 처음 가게를 이곳서 하게된 계기가 궁금하다.
“1986년 찌는 여름이었다. 당시 내가 살던 곳은 중곡동. 거기서 2년여쯤 첫 치킨호프 가게를 하고 있었다. 장사가 잘 됐는데, 비워달란 말을 들었다. 서대문에 있는 녹십자병원에 가는 길에 이곳을 지나다, 문을 연 호프집을 봤다. '대낮부터 장사를 하다니, 이곳 목이 좋은가보다!' 그렇게 생각해 돌아오는 길에 내렸다. 우리집 옆 선경부동산이 옛날엔 몽성사였다. 그곳 할아버지가 이곳을 소개해 주셨다. 당시 돼지갈비식당이었던 곳이었는데, 살짝 건물이 들어가 있어 가게세가 좀 쌌다. 인수를 한 뒤 중앙시장 가서 에어컨도 설치하고, 인테리어도 한 다음에 7월초 문을 열었다. 어느새 35년이다.”

- 마장동 축산물시장 앞의 치킨 호프집이다. 장사는 잘 됐나?
“당시엔 시장 경기가 좋았다. 상인분들이 바빠서 옷도 못 벗도 여길 오시는 거다. 장화 신고, 앞치마도 벗지 않은 채로, 노란 의자였는데 핏물이 고이기도 하고…. 그래도 뜨거운 치킨이랑 차가운 맥주를 맛있게 드시고,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까 좋았다. 위로 받고 가시는 분들도 있고. 직원 없이 홀로 버티면서 식사를 챙기기도 어려우니까 배고플 때도 여러 번이다. 겨울에 문열러 오면 춥고, 밤늦게까지 하려니 힘들지. 그래도 묵묵히 도와주는 분들에게 힘을 얻었다. 따뜻한 눈인사로 추위도 잊고, 가끔 김밥 같은 거 사서 들러주는 분도 있고. 그런 분들 덕분에 현재까지 버틴 거지. 이젠 두 아이도 다 출가하고, 손주까지 있지만, 계속 가게를 하는 이유일 거다. 놀면 너무 심심할 것 같고.”

- 35년여 기간 동안 어려운 일이 많았겠다 싶다.
“가게에 불이 난 적도 있다. 우리집은 치킨을 압력솥에서 튀긴다. 훨씬 더 보드랍고 잘 익으니까 오래전부터 그렇게 했지. 헌데 어느날은 내가 가스불만 줄여진 상태로 마감을 했나 보더라고. 아침에 와서 보니까 솥에서 연기는 나지, 기름은 쫄아붙었지. '장사 해야지!' 하는 급한 마음에 거기에 물을 부었다. 그랬더니 확 기름증기에 불길이 번져서 천장에 불이 붙은 거라. 실크도배지라 금새 번지는데, 마침 옆집 성인약국 할아버지가 소화기를 갖고 계셨다. 옆 치과서도 소화기를 갖고 와 함께 꺼주셨다. 전기가 다 나가고 난리가 났지만, 그래도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이웃들이 늘 고마운 이유다.”

-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을 안 물을 수가 없다. 식당이나 카페처럼 사람이 모여 음식을 먹는 곳의 매출은 특히 어려울 것 같은데.
“우리집 꼬끼오는 오후 4시부터 장사를 한다. 그리고 9시면 영업을 마쳐야하니까 손님이 1/3으로 줄었다. 1차 손님을 받을 수는 있는데, 2차는 못받으니까. 어려움은 물론 코로나19 이전에도 있었다. 여름엔 손님들이 바깥에서 앉아 먹었으면 한다. 우리 가게는 바깥에 상을 펴도 사람들 통행에 방해가 덜 되는 편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렇게 야외에서 영업을 하다가 누군가 신고를 하면 그걸 못하는 거다. 벌금도 물고. 한 삼년여 그런 신고 때문에 장사를 할 수가 없었다. 한여름에만 2달 정도 장사를 하는데. 유럽 같은 데는 노상 카페도 있고, 이게 한여름 밤의 낭만도 되는 건데…. 그런 점을 행정에서도 배려를 해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35주년을 맞은 박태선 사장의 가게에 가족들이 축하 화한을 보냈다

 

“나를 위해 돈 쓰세요!”20억 자산 가진 딸이 엄마에게 하는 말

- 따님의 책이 가게에 전시돼 있었다. 돈 공부, 부동산 공부, 경제독립 프로젝트 관련한 책이었다. 20억대의 자산가시라고. 김미경TV에서 200만회 조회에, 유튜브 강의 모습도 봤다. 그 책들의 엄마가 혹시 박태선 사장님인가?(웃음)
“그건 아니고. 우리딸 지영이가 평범한 엄마였다. 밖에서 일하고, 집에서도 일하고, 애들 키우고, 그게 얼마나 장한 일인가. 그런 이들이 돈도 벌고, 집도 사고, 경제 독립도 했으면 싶어서 낸 책이란다. 책 사다가 열심히 읽고, 밤새서 공부하고, 세미나도 참석하고 그러더니 책을 냈더라. 사람들이 많이 찾아서 지금은 강의도 하고, 지방에도 가고 해서 엄청나게 바쁘다. 돈을 제대로 쓰는 데 도움이 되는 가계부 같은 것도 내서 총 다섯 권을 낸 걸로 알고 있다.”

- 저자 이지영이 부모님 이야기를 책에는 무엇이라고 썼나?
“엄마 아빠가 돈 때문에 다투는 모습?(웃음) 사람들은 그 책을 읽고 되게 쉽게 읽힌다고 하더라. 다른 재테크 관련 책은 읽기가 되게 어려워지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게 쓰여졌다고... 다 내 이야기 같고 눈물이 나더라는 사람이 많았다.”

- 그렇다면 엄마로서는 따님의 책을 보고 새롭게 배운 부분이 있을까? 그 부분은 무엇인가?
“나를 위해 돈을 써라! 그렇게 말했더라.”

- 돈을 나를 위해 써야 한다고? 
“그 말이 맞다. 내가 없이 살 때도 아이 교육비를 아끼지 않았거든. '무슨 과외를 해?' '대학을 무슨 돈으로 보내?' 그렇게 주변에서 이야기할 때도 우리는 그러지 않았으니까.”

- 그건 엄마가 딸을 위해 쓴 것 아닌가?
“딸도 자기 투자를 많이 했다. 해외여행을 해도 그게 자신의 추억이 되고 힘이 되고 그러니까, 그런 건 한다. 나도 일요일이면 등산을 하고 여행을 간다. 토요일 밤에 떠나서 일요일 돌아오는 때가 많다. 돈 아낀다고 안 가고 집에 있어봐야, 아프면 그게 다 병원비로 들어가는 거니까. 건강하게 활력을 찾고. 자신에게 보상을 해야, 새롭게 살아갈 힘이 생긴다는 거다. 그런 건 딸에게 배운 거다.”

지영씨는 책에서 '엄마가 이렇게 자신을 위해 투자'를 하는 모습을 처음엔 서운해 했다. 손녀의 생일도 간단히 토요일날 점심때 가게서 때우자는 이유가 밤이면 엄마의 여행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지영씨도 곧 마음을 바꿔 엄마를 응원하고 있다.  

- 누구와 함께 가시나?
“마장동에 녹색산악회라고 있다. 향일암에도 가고, 정동진으로 새해 해돋이도 보러 가고. 주변 세탁소 아저씨랑 풍물방 사람들도 함께 간다. 이웃들도 만나고 참 좋다. 남편은 다른 취미가 있어 함께 가지 않는다. 나는 산을 정상을 갔다 와야하는데, 남편은 좋아하질 않으니까.”

박태선 사장은 남편을 젊어 다니던 회사에서 만났다. 규모가 큰 무역회사였다. 당시 아홉 살 위이던 남편은 불문학을 공부했던 사람. 딸이 영어통역대학원에 갈 만큼 영어에 관심이 크고, 책을 몇 권이나 낼 만큼 문재(文才)가 있는 건 아마 그런 영향일 것이다. 엄마 태선이 딸 지영에게 권한 공부는 수학과였다. 이러한 이력으로 지영씨는 당시엔 외국계 사모펀드가 최대주주로 있던 은행에 입사, 본점에서 최고경영자들을 수행하며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혔더랬다. 인생의 일들이란 허투루 쌓이지 않는 법이다.

따님 이지영 작가가 낸 책들. 엄마는 그 자격만으로 돈을 벌고 인생을 즐길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성실하게 일하고 넉넉한 마음 지닌 엄마는 이미 부자 

딸 지영씨가 쓴 책에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부모님은 평생 집을 산 적이 없다. 부모님의 사업이 잘 되어 꽤 넉넉할 때조차도 전세로 살았다. 몇십 년 전 알아봤던 아파트의 분양가가 1억2천만원, 전세가가 8000만원이었는데, 부모님은 담보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결국 8000만원을 내고 전세를 살았다. 이를 그 집주인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결국 그때 집주인은 분양가와 전세가의 차익인 자기 돈 4000만원을 갖고 새 아파트를 소유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아파트의 시세는 7억원이다. 더 안타까운 건 그때보다 연세가 더 많아진 부모님께서 지금도 전세로 살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부모님은 전세금은 언제든 받을 수 있는 안전이 보장된 돈이고, 집을 사게 되는 순간 리스크는 커진다고 여기신다.”-《엄마의 돈 공부》72쪽에서

지영씨는 어떻게 했을까? 지영씨는 5:1:1:3 원칙을 지킨다. 일단 수입의 50%는 먼저 저금하고, 30%는 생활비로 쓴다. 1/10은 자신을 위해 투자하고, 1/10을 다시 자신을 사랑하는 일, 즉 보상에도 쓴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영씨는 이러한 방법으로 종잣돈 1억원을 3년 안에 모은 다음, 꾸준히 공부를 하면서 집을 마련하고, 부를 쌓아나갔다.

다음에 오는 세대는 이전의 세대보다 늘 더 나은 법이지만, 그렇다고 이전의 세대가 다음 세대보다 더 낡거나 바보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 가고, 새로운 세대가 거기 적응하고 있을 뿐. 부모는 변하지 않는 세상의 더 큰 원칙에 충실한 이들일 뿐. 딸 이지영 씨도 엄마가 자신의 삶을 즐기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준 데 대해 경의를 표했었다.

- 따님 이지영은 “엄마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경제 멘토”로 책에 소개됐다. 따님이 <꼬끼오 치킨호프>를 프랜차이즈화 하자고 하지는 않나?(웃음)
“하하. 말만. 딸이 미혼모를 돕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오히려 그랬지. 혹시 그 친구들이 내 기술을 배우러 온다고 하면 아낌없이 가르쳐 주겠다고.”
태선 사장의 낭군은 아침이면 재료를 준비해주고, 가게 청소를 하고, 정리정돈도 해준다. 넉넉한 마음을 일에도 관계에도 쏟는 엄마는 이미 충분히 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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