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업이 만난사람] 성동문화원 문해교육 교실을 가다
[원동업이 만난사람] 성동문화원 문해교육 교실을 가다
  • 원동업 기자
  • 승인 2022.03.15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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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머리 늙은 소녀들이 까르르 웃다. 글이 비춰준 세상 읽으며
“더 일찍, 더 많이, 공교육 문해교육 있었더라면, 더 멋진 세상 됐을 걸!”
춘래불사춘이지만, 아름다운 봄풍경은 어디나 있다. 늦었지만 배움의 자리는 언제나 아름답다

성동문화원 윤필교 주임께서 어르신 문해교육 장소를 일러주었다. 평소 교육이 이뤄지는 소월아트홀 내 구민대학이 마무리 공사 중이라 장소를 옮겨 수업이 이뤄진다는 말씀이었다.  
장소는 행당1동 주민자치센터. 건물 바깥으로 난 계단을 오른 뒤에, 다시 좁고 가파른 철제계단을 오르고 나서야 겨우 장소에 도착했다. 성동문화원 교실 안내가 거기 덩그라니 붙어있다. 
교실로 들어가는 양 옆은 캐비넷 사물함이 촘촘하다. 거기 어르신들 이름이 작게 붙어있다. 옆에는 서예 수업 때 쓰는 한지 받침이 돌돌 말려 있다. 아마도 시간을 번갈아가며 수강생을 받는 모양이다. 

교실 한켠에서 햇살이 들어오는데, 젊은 선생님은 앞에서 칠판에 글을 쓰고 있고, 늙은 학생들이 고개를 들었다 숙이고 들었다 숙이며 연필로 공책을 채우고 있다. 
할머니들의 머리는 한결같이 뽀글이 파마를 해서, 뒤에서 보면 마치 브로콜리 같다. 벽 달력엔 '일동제약 아로나민 실버_프리미엄' 광고가 보인다. 이곳은 어려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분들을 위한 늦깎이들 학교다. 2022년 3월 7일 월요일, 21대 대통령 선거를 이틀 앞둔 날의 화이트보드엔 이런 글자들이 쓰였다 지워지고, 쓰였다 지워졌다.  

저녁마다 외삼촌이 PC(피씨)방에 간다. / PC 방에서 인후염이 옮았다. / 강원도에 산불이 났으니, 상부상조합시다. / 과부가 홀애비 심정을 안다. 동병상련 / 부조금을 천만 원 했어요.
소련은 1991년에 해체됐다. / 우크라이나에서 석류를 3kg 사왔다. / 生(생)과일 주스 3.5ℓ를 만들었다. / 대선 지방선거 총선
외숙모는 신경인지장애 검사를 했다. / 신경인지장애^치매. ^는 등호. / 작년에 밴댕이젓을 3kg 샀다. kg=킬로그램 

“부조금이에요. 부주금이 아니고. 우리 얼마나 봉투에 넣을까요? 오만 원? 에이, 우리가 말로만 하는 건데, 더 쓰세요. 백만 원? 천만 원 하죠! 좋아요. 어머니들, 은 이거 아시죠. 꽁치! 세월호 리본같이 생긴 거. 이거는 리터예요. ( )는 괄호예요. ^ 는 등호, 같다는 말이에요. 괄호 치고 글을 쓰면 그건 왼쪽이랑 같다 이런 말이에요. 똥구멍이 평소에는 어떻게 돼 있어요? 네, 꼬옥 닫혀 있죠. 그리고 응엉엉~ 할 때는 어때요? 열리죠? 의사선생님들은 그 똥꼬를 뭐라고 하냐면, 괄약근. 이런다고요. 어려운 말로. 열고 닫고 하는 거. 여기 '괄'이 그런 괄짜예요. 우리는 우리끼리니까… 똥꼬~.”
할머니들은 여고생이 된 것처럼 까르르르 웃는다.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대선이구요. 우리 서울시장님, 구청장님 뽑는 선거가 지방선거예요. 총선은 국회의원 뽑는 선거예요. 내일모레 우리 선거 하잖아요. 어머니들도 선거 꼭 하세요. 아들하고 딸하고 누구누구 뽑으세요 한다고 뽑지 말고, 어머니들이 이것도 보시고, 저것도 찾아보신 다음에 투표하셔야 해요.”

교실은 빼곡하다. 코로나가 무섭지만 배움의 열기는 내내 가시지 아니했다

문해교육은 단순한 글자배움 아니다. 세상 여는 열쇠

교육을 받는 할머니의 눈은 초롱하고, 손은 굳세다

수업을 뒤에서 듣고 보고 있자니, 지금 이 자리 문해교육은 단순히 '글자'를 배우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빛을 보지 않는다. 빛이 비추는 세계를 본다.”고 하는데, 지금 이곳의 사람들은 말이 비추는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 선거는 똑같은 선거지만, 국가와 자치단체가 다르고, 행정부와 입법부가 다르다는 걸 새삼 안다. 언어는 글자만이 아니라, 기호가 있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이들이 사는 세계만이 아니라 나 자신도 알게 된다.  

의사의 언어와 우리들의 언어가 다르다는 것도 새삼 깨닫는다. 치매를 신경인지장애라고 하는지를 처음 알았다. '괄'이란 말이 '조이고 단속'하는 것이로구나 깨닫는다. 치매는 이들에게 가까운, 어른어른거리는 그림자다. 세상은 말을 통하여 비로소 이들에게 각인된다. 강렬하게 그리고 은밀하게. 강사 지현정(51) 님의 말. 

“이분들의 수업은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일이에요. 어린이들이 흡수지처럼 받아들이지만, 할머니들은 … (방수시계처럼 잘 안 스미죠!-기자(웃음) 그게 잘 안 되죠. 제가 자주자주 생활과 가까운 말씀들을 드리면서 수업하는 이유가 있어요. 하나는 그렇게 해야 어머니들이 기억해요. 또 하나는, 어머니들이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시도록 돕고 싶은 거죠. 어머니들이 사는 세계가 남편하고 애들하고 집만 있는 게 아닌 거잖아요.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해서 차근차근 알아가는 건 당연한 거예요.

우리 세대는 공교육이란 걸 너무나 당연하게 체험한 세대죠. 하지만 이분들의 시대는 그러지 못했어요. 가난 때문이기도 했지만, 유교사상도 영향을 끼쳤죠. 여자아이들은 배울 필요가 뭐가 있어. 집안일 하고, 시집 가면 그만인데. 여기 계신 분들도 자녀분들 모두 시집장가 보내고, 남편도 은퇴하시고 그렇게 시간이 되어서야 늦깎이로 공부를 하러 오신 분들이에요.”

농부들은 논에 물들어 가는 소리를 가장 좋은 소리라 듣는단다. 부모들은 자식 목에 밥 넘어가는 소리, 아이들 글읽는 소리에는 배고픔을 잊는단다. 그네들에게도 그 소리만큼 듣기 좋은 소리가 없을 것이다. 할머니들의 글 읽는 소리는 어떤가? 그들의 목소리도 더없이 듣기에 좋다. 학생 참여자 박성자(75)님의 말. 

“너무 좋아요. 나는 늦게 소식지를 보고, 전화를 했어요. 그리고 다음날 찾아와서 그날부터 수업을 하게 된 거예요. 우리도 읽는 것은 읽는데, 읽기만 하지, 솔직히 잘 받아쓰지를 못하는 거라. 알면서 사용하니까 좋지요. (읽을 수는 있는데, 쓸 수가 없다는 게 무슨 뜻이죠?) 솔직히 우리 말이 '얼라를 낳는다!' 이러잖아요. '병이 나았다' 이것도 있단 말이에요. '그게 더 낫다' 이런 말이 다 다른 건데, 읽을 때는 '낫다' '나따' 이렇게 같으니까. 공부를 하면서 그게 다른 걸 아는 거지요.”

이건 글자 교육이 아니다. 세상 교육이고, 자신을 키우는 일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 없다. 그래도 스스로 피는 꽃처럼

'이렇게나 좋은' 수업을 위하여 거쳐야할 어려운 과정이 여럿이다. 첫째 이런 수업이 있다는 걸 들을 통로가 별로 없다. 이분들 중 많은 이들은 이 소식을 <성동구 소식지>를 통해서 알게 됐는데, 거기 글씨가 너무나도 작다. 사회에서는 흔히 이렇게 말도 한다. “지금 글자를 배워서 뭘 하겠다고?” 그동안 글을 모르는 엄마이고, 할머니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 이런 것에도 스스로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 있다. “수강자 분들 사진을 찍으시면 안 됩니다.”하고, 문화원의 담당자는 내게 단디 일러주었다. 

한국사회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대입이다. 거기에 온 나라가 달라 붙는다. 다음에는 중등이나 초등 혹은 유아 교육이 순위를 다툰다. 어릴 적 여하한 이유로 배울 기회를 놓치고 여기까지 온 이들을 위해서는 별 국물도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잔혹한 추격극이요, 스릴러인데, 우리 현실에서도 그렇다. 초등학교를 마친 이들을 위한 중학과정은 훨씬 더 드물다. 성동구 역시 중학과정이 하나쯤 있긴 하지만, 고등과정은 아예 없다. 문해교육은 겨우 '한글' 익히기에 족하고, 영어나 수학 같은 과목에 대해서는 세심하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강의자들이 강력하게 원하는 부분이 여기다. 왜 이런 환경에서도 이들은 배우기를 멈추지 않을까? 

“옛날엔 강이면 다 강인갑다 했지. 세상은 그냥 세상인 줄로만 알았지. 그런데 강에는 미국강도 있고, 인도 강도 있고, 세상엔 5대양 6대주가 있는 거잖아요.”- 이건 할머니 학생의 말이다. 
“할머니들이 예전에는 파리바케트를 못 읽으시니까, 거기 파란 간판 있는 데서 만나! 이러셨단 말이에요. 그런데 거기 가게가 없어지면, 한참을 다른 곳에서 도시기도 하는 거죠.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면 이제 세계가 열리는 거예요. 동기동창이 생기기도 하는 일이잖아요.”

이건 강사 지현정 강사의 말. 그는 말을 잇는다. 
“어르신들을 위한 문해교육에 국가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아요.(유엔에서는 '문해교육의 해'를 선포한 해가 1990년이었다) 이전에는 뜻있는 분들이나 단체에서 개별적으로 진행하다가, 나라에서 평생교육의 차원으로 지원을 하기 시작한 거거든요. 어르신들을 뵈면 정말 열정적으로 배우세요. 공부만 제대로 했으면 정말 큰일을 하셨겠다 싶을 만한 분들을 많이 뵙거든요. 우리가 여자들을 가르치지 않아서, 그만큼 나라에도 손해가 됐다 그렇게 생각하죠. 아직도 늦은 일이 아니구요.”

문해교육을 받는 할머니의 책상 풍경

남자어르신들, 더 많은 교육장과 프로그램…등 할 일 아직 많다

“어머니들이 문해교육을 받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니에요. 여기서 한번 배우기 시작하면, 점점 자신감을 가지시거든요. 그러면 사회복지사에도 도전하고,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얻으러 다니시고 그러세요. 졸업장은 그냥 종이 한 장이 아니라, 그 다음 세상으로 가기 위한 출입증 같은 거예요. 그래서 성동문화원도 코로나 기간에 어머니들의 요구로 문을 열어 놓았던 거죠.  여러 군데로 옮겨다니며 불편하셨을 텐데도, 다 따라오신 거구요.”

남자어르신들이 거의 없는 건, 그분들은 모두 다 글을 알고 있어서는 아니다. 가난으로, 전쟁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이들은 이들도 별반 다를 것도 없다. 다만 그들은 '늦게 배우는 일'을 들키는 일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네들의 손을 이끄는 다정한 환대의 손길이 없어서다. 그런 생각을 하자니, 아직 차가운 햇살 아래 장기를 두고 있거나 그 옆을 서성이는 종묘근처의 어르신들이, 소월아트홀 옆의 남자어르신들 몸짓이 애잔하다.

봄이 왔는데, 봄 같지 아니(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한 날들. 전쟁으로 다툼으로, 미세먼지로, 마스크로 아득한 서울 한복판. 이 땅에서 아름다운 풍경이 어디에 있을까 싶었다. 그러다 이곳이 생각났었다. 어머니들께 “아름다운 꽃 사진 한 장 찍자!”말씀드렸다. 당신네들의 이 모습은 얼마나 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냐고…. 그네들이 공책을 앞에 들어보이며 사진을 허락하였다. 세상으로 나오는 창과 문을 앞에 두고, 그 뒤에 어머니들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문해교육은 한글만이 아니라 영어와 한자를 넘나들고 국어와 사회를 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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