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 켠의 그리움
마음 한 켠의 그리움
  • 성광일보
  • 승인 2022.04.04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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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논설위원
송란교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 이런 마음 한 조각 지니고 사는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 흉잡힐 일은 아닐 것이다. 응달진 곳에 두껍게 쌓인 겨울 눈이 봄 햇살에 녹아내리듯 그리운 마음으로 죽도록 미워했던 마음을 녹여낼 수 있다면 더더욱 좋은 일이 아닌가. 인향(人香)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에게 너무 싱거운 놈이라 핀잔을 주면서 소금에 절인 왕소금 한 바가지를 뿌리지는 않겠지요? 봄 가뭄에 마음이 메마르고 지쳐갈 때 대지를 흠뻑 적셔주는 엄마의 포근한 눈빛이 그립다. 갓 피어난 노란 개나리꽃들은 까치들이 수없이 쪼아대지만 떨어질 수 없다고 굳세게 버텨낸다. 그러면서 까치발을 곱게 세우며 저 멀리서 다가오는 반가운 봄에 미소를 짓고 있다. 다른 사람의 입술이 수없이 닿았던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그리움 조각들, 그 그리움에 나도 입술을 갖다 대고 있다. 인연의 씨가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은 빈털터리에게도 봄은 그렇게 서둘러 다가오고 있다.

누군가는 호박에 줄을 그으면 수박이 되는가? 라고 묻던데, 호박과 수박의 차이는 글자 하나 차이밖에 없다. 호박은 돈맛이 강하고 수박은 단맛이 더 강한 듯하다. 동그란 모습은 서로 엇비슷하다. 맛있는 것도 차이가 별로 없다. 올 봄에는 호박과 수박을 한 구덩이에 심어볼 요량이다. 다투지 않고 사이좋게 잘 자라는지 궁금해진다. 호박이 열리면 처음에는 옅은 푸른색이지만 차츰 커지고 익어갈수록 노란색으로 변해간다. 잘 익었음을 상징하는 노란색 호박, 늙어서 대접받는 게 노란 호박이다. 그리움도 처음에는 푸른색이지만 자라다 보면 노란색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아주 빨갛게 익어갈 것이다. 수박 속의 꽉 찬 단맛이 그렇게 빨갛게 익어가는 것처럼 그리움도 단단하게 단심(丹心)을 박음질할 것이다.

반려견 반려묘에 온통 마음이 쓸려가니 옆에서 걷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혹여 내 강아지가 가는 길을 그 사람이 막아서지나 않을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볼 뿐이다. 다리 근육이 힘들어해서 좀 천천히 걷고 싶은데 주변이 온통 서두름 뿐이니 이제는 나잇 값을 제대로 못 한다는 푸대접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오뉴월 맑은 하늘에 우박 떨어지듯 멸시와 무시가 대책 없이 쏟아진다. 남쪽 나라에서 불어오는 봄 향기에 사람 냄새도 함께 실려 오면 좋겠다. 파도는 누가 붙잡지도 않은데 왜 가다 말고 다시 돌아오는 걸까? 네가 뒤따라오는 길이 지워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외치는 듯하다.

나른한 봄 햇살을 안고서 밭고랑 사이에 길게 누워있는 그리움을 갈아엎는다. 나무들도 겨우내 움츠렸던 앙상한 가지 끝에 젖 몽우리 봉긋 솟는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다. 야들야들한 아기 손바닥 만지듯 보드라운 잎새들을 만지작거린다. 새싹이 눈을 뜨기 시작한다. 며칠 동안 눈을 감고 있으면 아마도 세상은 온통 푸른 물결로 뒤덮일 것이다. 거무스름하지도 않고 희끄무레한 털들이 온통 푸른 새싹으로 털갈이를 할 것이다. 안구정화(眼球淨化)의 시간, 마음이 포근해지는 시절이다.

내가 가장 먹고 싶은 것을 고를 때는 메뉴선택의 기회가 오롯이 나에게 있다. 누가 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먹고 싶은 것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천국의 문 지옥의 문, 그 문의 열쇠를 누가 가지고 있는가? 그 열쇠를 가지고 다니다 잃어버렸는가 보다.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조차 사라져버렸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내 마음을 조정하는 리모컨을 맡겨둔 채 왜 내 맘대로 안될까 불평할 필요가 없다. 그 리모컨을 찾아오면 될 일이다. 비 내리는 밤에 가로등 붙들고서 왜 우느냐고 호통칠 필요가 없다. 뺨을 타고 내리는 빗물을 눈물인 양 입맛 다셔보면 될 일이다. 그리움에 눈물을 주지 말자. 그리움은 스스로 바람이 되고 노래가 되고 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비스듬히 눕는 봄 햇살을 보고 왜 누었느냐고 따지려는가?

‘리셋 버튼’ 함부로 누를 것이 아니다. 쌓아둔 그리움도 함께 사라진다. 재부팅 하는데 시간이 제법 걸린다. 사진을 찍으면서 꽃보다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그 꽃을 꺾지 말자. 그러면 병풍 속의 화려한 주인공의 모습도 꺾인다. 그 꽃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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