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지금 익선동은
[수필] 지금 익선동은
  • 성광일보
  • 승인 2022.04.1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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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라
수필가
성동문인협회 이사
황미라

익선동에는 내가 무척 아끼는 찻집이 있었다. 기둥과 대들보, 서까래와 기와지붕을 그대로 살린 한옥이다. 꽃밭으로 꾸며진 아담한 뜰은 방 안에서 바라보아도 좋고, 바깥 좁은 툇마루에 걸터앉아서 봐도 좋다. 창을 통해 따스한 햇살이 들어온다. 안온(安穩)함에 졸음이 온다. 

이 찻집을 품고 있는 익선동 한옥마을은 기와를 얹은 낮은 지붕이 서로 맞닿을 듯 대문을 마주보며 길이 이어진다. 작은 창을 열고 마주보며 손을 뻗으면 두 손이 잡힐 듯 골목은 좁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지붕과 지붕 사이로 각진 좁은 하늘이 보인다. 얽히고설킨 여러 선들을 짊어진 전봇대가 버거운 모습으로 좁은 하늘을 가른다. 측은하면서도 정이 간다.

어두운 가로등 불빛 아래로 하늘하늘 눈송이 내리는 새벽 골목을 연상한다. 개구쟁이 녀석들이 금방이라도 함성을 지르며 골목 어디에서 뛰어나올 것 같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삶의 고단함을 한바탕 웃음으로 풀어내는 엄마 얼굴이 떠오른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골목길을 걷다 보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듯 묘한 희열이 있다. 길 위에는 걷는 이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숱한 발걸음이 있다. 길은 삶과 삶을 이어가는 끈이며 서로에게 위안이다. 그래서 좋다.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

1920년대 서울은 사대문 안 청계천을 중심으로 조선인은 북촌(종로 북쪽), 일본인은 남촌(남산기슭)에 거주하였다. 그런데 일본인들 수가 늘어나면서 남촌 거주지는 포화상태가 되었다. 일본은 총독부 등 정부기관을 북촌지역에 건설하여 자연스럽게 일본인이 북촌으로 이주하도록 하였다. 또한 종로통에 '도시미화운동'을 벌여 저소득층 조선인들이 북촌을 떠나도록 유도하였다. 

조선인 사회에서는 이런 현상을 막아보려는 움직임 속에서 근대적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등장한다. 삼청동·가회동·인사동 등지에서 볼 수 있은 도시형 한옥 집단 지구가 이때 만들어졌다. 같은 시기 익선동 한옥마을도 조성되었다. 조선인 출신 최초 건설업자인 건양사 설립자 정세권에 의해서였다. 그는 철종 생부인 전계대원군 사저(누동궁터)를 사들여 서민을 위한 15평 안팎의 '조선인을 위한 조선 집' 지었다. 민족자본가 정세권은 1942년에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국어학자 33명이 검거되었을 때 재정지원을 했다는 이유로 재산이 몰수되는 등 탄압을 받았다. 

익선동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개발과 보존이라는 부침의 시간들이 있었다. 한옥마을에 14층 높이 주상복합단지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2010년 한옥보전 방안이 재검토 되면서 부결되었다. 2014년에는 재개발추진위원회가 자진해산 하였다. 이런 과정을 지나오면서 동네 주민들은 집수리를 포기하거나 아예 집을 팔고 동네를 떠나는 사람도 늘어나면서 한옥은 본래의 모습은 잃어갔다. 카페가 들어서고, 식당이 들어서고, 각종 상품을 파는 가게도 늘어났다. 여러 매체에 익선동이 소개되었다. 그래서일까 불과 2~3년 사이에 이렇게 변할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이며,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제 완전히 거주지에서 상업지로 탈바꿈 하였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사람들은 넓은 길보다 좁은 길에서 서로 어깨를 살짝 살짝 부딪치며 걸을 때 친밀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아마 이런 자연스런 이끌림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거기에다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빼앗는 장치들이 골목을 따라 쭉 이어져 있다면 사람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진마저 예쁘게 나오니 SNS로 소통하는 세상에서는 금상첨화다. 

익선동 한옥마을은 이제 낯선 이들의 발걸음만이 골목을 채운다. 안온함에 졸음이 오던 그 찻집에도 손님이 많다. 앉을 자리가 없어 그냥 돌아갈 때면 아쉬움이 커서 다시는 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궁금해진다. 이곳은 프렌차이즈나 대규모 가게는 들어올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골목길을 그대로 살려두었다. 입점한 가게들도 변형은 했지만 한옥의 틀은 유지하고 있다. 한옥 지붕보다 높은 건물이 없다. 시대 변화를 거부할 수 없다면 이 정도가 마을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개발과 보존이라는 갈림길에서 개발논리에 함몰되지 않고 힘겹게 버텼을 이들의 애씀이 보인다. 다행이다. 더 이상 변형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 찻집은 나만 알고 싶은 장소였다. 익선동 한옥마을은 내가 그리고 싶은 서울 모습이었다. 골목골목에는 추억을 담은 내 발걸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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