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코로나 이전 내 고장 수변 걷기를 그리며
[수필] 코로나 이전 내 고장 수변 걷기를 그리며
  • 성광일보
  • 승인 2022.04.15 11: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규석
수필가
성동문인협회 회장
이규석

연중 매주 일요일 오후에 걷는 동호인 모임이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이 모임은 SNS만 유지되고 안타깝게 2년 이상 휴면 상태입니다. 이 모임에서 걷던 우리 동네가 생각나고 그립기까지 합니다. 올해는 아내와 함께 추억을 더듬으며 이 길을 다시 걸어보려 합니다.

코로나 이전 2월 어느 일요일 오후 2시, 이 모임의 안내를 할 차례가 되었고 당연히 내 고장에서 보여 주고 싶은 곳을 선정해서 안내했습니다. 이날 주말 걷기에 참여하기 위하여 지하철 3호선/경의중앙선 '옥수역' 강변공원 출구를 지나 강변 휴식 공간에 회원 39명이 모였습니다. 최저기온 영하 11도, 낮 최고기온도 계속 영하여서 걱정하였습니다. 다행히 이날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6도, 낮 최고기온은 영상 3도로 평년기온에 근접해 어제까지의 기온에 비하면 아주 양호했습니다. 미세 먼지 없이 맑고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여서 걷기 하는 동안 동쪽을 향해 걷는 우리 일행에게 오후 햇살이 등을 따뜻하게 해주었습니다. 

옥수역은 옥정수 골이라는 샘물이 나오는 동네였던 옥수동의 강변에 있습니다. 역의 남단 부근을 두무개길이 지나는데 이 길은 한강 북안의 강변대로와 나란히 지나며 서울 강북의 동서를 한강을 따라 횡단하는 간선도로입니다. 두무개길은 이 길 일대의 옛 지명인 두무개 · 두뭇개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두무개는 한강과 중랑천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조선 시대 한강진(漢江鎭)은 한남대교 근처고 용산 앞은 용산강(龍山江), 이보다 서쪽의 강은 서강(西江) 동쪽의 강은 동강(東江)이라 불렀는데 특히 이 옥수동 앞 동강지역을 동호(東湖)라 불렀다고 합니다. 즉 옥수역 근처를 두모포, 두무개라 불렀는데 그 앞의 강을 동강, 동호라고 부른 것입니다. 옥수역 4번 출구 앞에 이곳이 두모포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이 표지석에 의하면 두뭇개나루터는 경상도와 강원도의 세곡과 물산이 집결되었고 경승지로도 유명한 나루터였습니다. 이곳은 임진왜란 이전까지 한성을 떠나 일본으로 가는 4개 도로 중의 하나였고, 1419년(세종 원년) 5월에 대마도를 정벌하러 수군을 보낼 때 왕이 상왕인 태종을 모시고 친히 나와 잔치를 베풀고 이종무 등 장수들을 전송한 곳으로 역시 표지석이 있습니다. 

지금의 옥수동에서 강 건너에 바로 압구정이 보이고 예전에는 동호 강변의 나루터인 두무개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넜습니다. 퇴계 선생도 이곳을 지나서 왕래하였다고 하는데 수많은 조선 시대의 선비, 학자, 문인, 예술가들이 배를 타고 지나던 곳이 바로 이 동호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보는 강 가운데는 약 36만 평에 10여 호가 살던 저자도 속칭 옥수동 섬이 있었고 강 건너 작은 언덕에 압구정이라는 정자가 있었습니다. 저자도에는 말 그대로 한지를 만드는 닥나무가 많이 살고 있었답니다. 남북 강안은 아름다운 풍광으로 이름을 떨쳤고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왕족과 세도가의 별장지대였다고 합니다. 이곳 별장과 정자에 관련하여 대표적인 사람이 고려 시대 한퇴지, 세종의 딸인 정의공주, 한명회의 압구정, 가장 최근은 박영효의 별장이 있었는데 을축년 장마 때 떠내려갔다고 합니다. 이 아름다운 곳을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이 그림을 남겼고, 조선의 젊은 학자들이 동호를 바라보며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독서당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에 섬으로 있었던 저자도의 흙을 파, 뚝섬을 돋우고 강의 남쪽 지대를 메워 압구정 지역에 아파트를 지은 것이 1980년대 초입니다. 최근에 옥수동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저자도를 복원하자는 운동이 있었습니다. 

동호대교 밑에서 출발하여 400m 강을 거슬러 가면 한강과 중랑천이 합수하는 곳이 나옵니다. 이곳을 지나는 다리가 용비교이고 그 옆은 개나리로 유명한 응봉(산)이 있습니다. 응봉을 지나면 바로 응봉역이 있고 이 역 옆에 최근 완공된 흰색 아치가 아름다운 응봉교가 있습니다. 응봉교 밑을 지나 조금 걷다 보면 체육공원이 펼쳐지고 이곳에서 성동교 밑을 지나자마자 왼편에는 한양대학교 건물이 있고 오른편 중랑천이 흐르는 곳에 살곶이 다리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이 지역 일대는 임금님의 사냥터와 군인들의 훈련장, 관마(官馬)를 기르던 말 목장이 있던 곳입니다. 말 목장은 후에 경마장이 되었다가 과천으로 이주하고 지금도 작은 규모로 말을 타는 곳이 서울숲공원 안에 있습니다.

살곶이란 지명의 유래는 태조(이성계)와 태종(이방원)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나 이것은 야사라고도 합니다. 실제로는 이곳의 지형이 화살 모양이라서 그런 이름이 있게 되었다고도 하고 응봉(산)에 화살을 쏘는 사대에서 과녁을 이곳에 놓고 쏘아 이곳을 살곶이라고 했다고 이 지역 사람들은 말하기도 합니다. 살곶이 다리 조성 공사는 세종 2년(1420년) 5월에 시작되어 1483(성종 14년)에 완성한 조선 시대 다리로는 가장 긴 다리였습니다. 지금은 살곶이다리 북단에 다리의 원형을 찾아 복원하는 공사를 마쳤고 협소하지만 걷기와 자전거 전용 도로도 있습니다. 살곶이 다리를 지나 300여 m 이동하면 중랑천 물이 청계천 물과 합수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한강 물과 중랑천 물이 합수하던 곳부터 이곳까지 3,279m가 되는데 이 구간은 철새 도래지로 철새보호구역입니다. 눈에 자주 띄는 철새는 주로 물오리들이었는데 떼로 앉아 있거나 자맥질하는 철새들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안내판에 기록된 글에 의하면 이곳 철새보호구역에는 논병아리, 왜가리, 황조롱이, 때까치, 백할미새, 흰뺨검은 오리, 넓적부리 오리, 고방오리, 댕기흰죽지, 비오리, 잿빛개구리매, 깝작도요 등 다양한 철새가 찾아오는 지역입니다. 

청계천을 따라 시내 방향으로 올라가면서 천변에는 사람 키보다 더 큰 많은 갈대가 있고 바로 옆에는 청계천 맑은 물이 유유히 흘러 대규모 하천 공사 전에 악취가 나던 시절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곳을 지나는 고가 도로는 내부 순환도로로 많은 차량이 다니고 있습니다. 제2마장교 직전에 천변에서 올라와 이 다리를 건넜습니다. 한때는 이 지역에서 꽤 유명했던 명문예식장을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선회하여 다시 청계천 변을 따라 이번에는 물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내려왔습니다. 다리 아래 초입은 담양 대나무 숲을 만들어 놓았는데 한겨울인데도 대나무 잎이 푸르러서 보기에 좋았습니다. 곧이어서 매화나무가 늘어서 있습니다. 

청계천이 복원될 당시 하동군에서 매실나무를 기증받아 2006년 3월에 조성된 거리라고 합니다. 이름도 '하동 매실 거리'라고 커다란 자연석에 예서체로 예쁘게 써 놓았습니다. 마장2교에서 용답역으로 가는 청계천 따라 매실나무가 1.2km 줄지어 있습니다. 많은 회원이 이 매화꽃은 언제 피느냐고 문의를 하셨는데, 열심히 공부 해온 옥수동을 비롯한 이 지역 지명, 살곶이다리를 비롯한 다리, 철새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이 없다가 예습하지 않은 매화꽃이 피는 시기를 물으셔서 안내자인 본인이 모르고 있는지를 귀신같이 알고 계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리 알고 가지는 못했어도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알아보았는데 3월 셋째 주부터 피기 시작하여 벚꽃 필 때까지 피어있어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의 매화나무는 많이 크지도 않고 하동 매화마을처럼 나무가 밀집되어 서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볼 수 있음에 만족하실 분은' 이 거리를 걸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사진도 올라와 있었는데 홍매화와 흰 매화였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나무는 더 크고 탐스러워져 갈 것입니다. 모처럼 회원님 안내를 하려는데 걷기 전 답사 때는 조류 독감이 염려되었고, 오늘 음식은 구제역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지금은 미증유의 코로나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3년째 쩔쩔매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감염률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도 결국은 이 질곡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지난겨울 전국에서 응애라는 해충과 기후 변화로 꿀벌 77억 마리가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슬픈 일입니다.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의 생존도 위험하다고 했답니다. 그러나 자연의 복원력을 믿습니다. 곧 그립던 산하를 더불어 다시 누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특별시 광진구 용마산로128 원방빌딩 501호(중곡동)
  • 대표전화 : 02-2294-7322
  • 팩스 : 02-2294-732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연
  • 법인명 : 성광미디어(주)
  • 제호 : 성광일보
  • 등록번호 : 서울 아 01336
  • 등록일 : 2010-09-01
  • 창간일 : 2010-10-12
  • 회장 : 조연만
  • 발행인 : 이원주
  • 자매지 : 성동신문·광진투데이·서울로컬뉴스
  • 통신판매 등록 : 제2018-서울광진-1174호
  • 계좌번호 : 우체국 : 012435-02-473036 예금주 이원주
  • 기사제보: sgilbo@naver.com
  • 성광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성광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gilbo@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