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등(差等) 평등(平等) 무등(無等)을 생각한다
차등(差等) 평등(平等) 무등(無等)을 생각한다
  • 성광일보
  • 승인 2022.04.1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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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 / 논설위원
송란교

평등(平等)은 권리, 의무, 자격 등이 차별 없이 고르다는 것이고, 무등(無等)은 등급이나 차별이 없는 절대 선(善)의 경지를 의미한다. 사회학적으로 빈부, 귀천, 차등이 없는 상태라 말하기도 한다. 차별은 비합리적 기준으로 어느 한쪽 편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면, 차등은 합리적이고 이해될만한 기준에 근거해서 각자의 행위를 정당하게 평가받은 결과라 할 것이다. 불합리한 조건 없이 한곳의 시작점에서 참가자들이 동시에 출발한다 해도 각자의 생각이나 판단, 노력의 차이에 따라 도착점에서는 차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차등은 참가들이 불평이나 불만 없이 모두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을 표현할 때 붕어(崩御), 서거(逝去), 졸(卒), 사망(死亡), 절명(絶命), 운명(殞命), 별세(別世). 돌아가셨다. 죽었다 등의 여러 단어를 사용한다. 신분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승을 떠나는 헐벗은 육신에도 여러 형태의 차별적 등급이 매겨져 왔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떠나가는 과정임에도 그런 차별적 표현에 매우 익숙한 듯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듯하다. 음식을 먹는 표현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처먹다, 퍼먹다, 드시다, 잡수다 등등. 내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다른 사람에 대한 존경과 배려를 담은 표현이라면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작점에서부터 차별이 있다면 ‘누구는 입이고 누구는 주둥이인가?’ 하면서 고른 대우가 아니라는 불만이 생길 수 있다.

말과 글로써 표현했을 때, 전달하고자 하는 뜻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것이었을 텐데 편을 가르고 등급을 매기면서 차별적 표현이 나타났을 것이다. 은연중에 내가 너보다는 더 잘산다거나, 자신이 더 잘났고 더 높은 신분임을 과시하고픈 비교우위의 욕망이 내재 된 것은 아닐까? 물고기는 물 고마운 줄 모르고, 참새는 바람 고마운 줄 모르고 살아가는 것처럼 항상 내 곁에 있으니까, 항상 그래왔으니까 하는 타성(惰性)에 젖어 들었는지도 모른다. 가랑비에 옷 젖다 보면 결국 내 몸도 젖게 될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차별적 등급에 걸맞는 단어를 써야 한다는 가식(假飾)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는 사람만 알게 하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게 한다면 알려고 하는 사람은 어찌하는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못 하는 사람에게는 가르쳐주면 된다. 알면서 안 하는 사람이 문제다. 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 그래서 선인들께서 자는 놈 몫은 있어도 자는 척하는 놈의 몫은 없다고 하였는가 보다. 먹고 싶으면 무엇을 먹고 싶은지 말하고, 아프면 어디가 아프다고 말을 해야 한다. 숯덩이가 되어가고 있는 부침개를 보고 뒤집지 않으면서 어찌 맛있는 부침개를 맛볼 수 있겠는가? 설마 옆 사람이 나 대신 뒤집어 줄 거라 믿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수지주하 사방무택야(水之走下四方無擇也), 물이 아래로 흐름은 순리를 따른 것이다. 물이 가고 싶은 곳만을 선택해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 그랬듯이 물도 그렇게 아래로 흘러야 순한 것이다. 순리를 따름에야 어찌 손가락질할 수 있겠는가? 억지로 그 물길을 거슬리려 할 때 손가락질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불의를 보고 맞서 싸우는지 불이익을 당했다고 맞서 싸우는지 조금은 헷갈리는 시절이다.

태양은 좋은 사람만을 골라서 빛을 쬐어주는가? 달빛은 고운 사람만을 골라서 어두운 길을 비추는가? 바람은 나쁜 사람만을 골라서 휘몰아치는가? 비는 가뭄이 드센 지역만 골라서 촉촉한 비를 뿌리는가? 風雨至公而無私, 風雨無鄕而怨怒不及也(바람과 비는 지극히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다. 바람과 비는 고향을 따지지 않는다. 그래서 원망과 분노가 일어나지 않는다)

관자 형세해편(管子, 形勢解篇)에 이런 구절도 있다. ‘해불사수 고능성기대, 산불사토석, 고능성기고, 명주불염인, 고능성기중, 사불염학, 고능성기성’(海不辭水 故能成其大, 山不辭土石, 故能成其高, 明主不厭人, 故能成其衆, 士不厭學, 故能成其聖 : 바다는 어떤 물도 사양하지 않기 때문에 광대해질 수 있다. 산은 흙과 돌을 사양하지 않기 때문에 높아질 수 있다. 현명한 군주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다. 선비는 배우는 것을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성인이 될 수 있다)

자연은 평등을 체험적으로 가르쳐 준다. 함께 맞는 회초리는 덜 아픈가? 다 같이 가난하면 모두 행복한가? ‘평등(平等) 공양(供養)’, ‘차등(差等) 보시(布施)’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무등산 서석대를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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