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구 여자축구단, 공이 구르기 시작하다
성동구 여자축구단, 공이 구르기 시작하다
  • 원동업 기자
  • 승인 2022.04.26 1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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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업이 만난사람] 성동구에만 없었다. 20명 모집에 120명 지원한 여성축구단

“이 재미있는 걸 왜 남자들만 했던 거야?” 축구교실 넘어 축구단 꿈

여자축구교실은 성동여자축구단이 될 수 있을까? 공이 어디로 굴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자는 축구를 하지 않는다.' 2017년께쯤의 성수동 경동초등학교 운동장. 다른 초등학교 축구클럽과 붙은 경동축구클럽의 아이들은 온통 남자아이들 뿐이다. 코치 선생님에게 묻는다. 왜 여학생들은 없는 겁니까? 
“여학생들에게도 문호가 열려있지만, 지원을 하는 아이들이 없는 거죠.”
이상했다. 여자아이들은 어릴 적에 남자아이들보다 더 키가 크다. 더 목소리가 크고, 드세다. 내가 아는 그 여자아이도 여느 남자아이들보다 훨씬 더 잘 달린다. 그런데 왜 이 자리에는 없는가?
새벽이면 거의 모든 초·중·고 운동장을 점유하고 있는 이들은 중년의 남자들이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학교 운동장 정원화 프로젝트에 가장 먼저 반대했던 이들이 조기축구회였다. 이들은 토요일 일요일이면 감질났던 축구를 질리게 한다. 올해 이른 봄 용답동을 다닐 때, 한 떼의 사내들을 만났다. 축구를 끝내고, 다함께 다소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나오는 남자들이었다. 빨갛다고 해야하나? 검다고 해야하나? 그들의 혈색은 건강하고, 살은 탄탄했다. 
“우리 회원 중에는 80대 할배도 있소.”
어리거나 젊거나, 빨리 달리거나 힘이 있거나, 모든 것을 다 가진 여성들은 왜 축구에는 없는가? 남자축구단은 2,816개나 되는데, 왜 여자축구단은 겨우 116개인가?  

훈련을 하고 있는 이수호 코치와 축구교실 참여자들. 진지하고 열정적이다.

인권이요 민권이다. 여자축구는 

축구교실을 맡고있는 이수호 코치

2022년 4월 22일 금요일, 성동구 응봉축구장의 여성축구교실은 50년 전인 1972년 6월 23일의 미국 리처드 닉슨의 서명 법률 타이틀 나인과 관계가 있다. 위 법률 Tiltle IX는 1960년대 미국을 휩쓴 민권 인권 운동의 흐름을 이어받고 있는데, 이는 1963년의 동일임금법(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를 없앤 노동법) 등과 동일한 맥락의 조치였다. 타이틀 나인은 모든 교육에서 남녀간 성별에 따른 차별적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한 법이었고, 이에 따라 미국은 스포츠 체육 활동에서 남자와 여자아이들이 구분되지 아니하고 동일한 운동기회를 제공받는다. 이는 이후 미국의 스포츠가 세계 제일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가 된다.

여자축는 민주주의다. 성동의 여자축구 혹은 성동여자축구단은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막내다. 10여년 전 성동구에도 여자축구단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지난해까지만 해도 성동구는 서울시에서 여자축구단이 없는 유일한 구였다. 그렇다면 여자축구단 맏언니는 누구인가? 

송파구의 여자축구단은 1998년 탄생했고, 현재까지 건재하다. 2019년 기준으로 송파여자축구단은 전국생활체육대축전(4월), 대통령기 전국축구한마당(8월), 서울시민리그(7월) 및 서울시 자치구 여성축구교실 왕중왕전에서 모두 이기는 기염을 토해내며 4관왕에 올랐다. 송파구 여자축구단 번성의 비결은 무엇일까?

송파구 홈페이지 문화관광 파트에 가면 송파여성축구단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구성 32명. 단장과 감독과 코치를 포함한 단원이 30명. 결원이 생길 때에만 충원한다. 이들은 전용구장도 있다. 송파구여성축구장에서 훈련한다. 정기훈련은 월·수·금 10시에서 12시까지. 일주일에 3회씩 2시간이면 상당한 운동량이다. 이들은 해외 전지훈련도 한다. 서울시 자치구 최고의 지원금 수준은 지원한 만큼 번성하는 공공체육의 주소를 보여준다. 

잘되는 집, 오래되어 번성하는 음식점의 공통점 중 하나는 직원들이 사장만큼이나 오래 같이 일한다는 점이다. 송파는 창단 이듬해부터 함께한 감독(김두선)이 있고, 역시나 창단때부터 축구단을 지켜온 백전노장도 있다. 이들 송파구여성축구단 멤버의 연령대가 20대부터 60대까지 스펙트럼을 갖는 이유다. 여성축구교실에서 자연스럽게 축구단으로 합류하므로 인적 구성 역시 탄탄하다. 24년 역사와 전통이 갖는 자부심은 이런 선순환의 동력이다. 

크게 지원하면 크게 성장하는 건 어디나 같아서

노승현 선수

다시 성동의 여자축구는 어떠한가? 지난 3월 성동구 문화체육과에서 20~50대 여성을 대상으로 축구교실 회원모집을 했을 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겨우 스무 명쯤을 모집하는 그 공고를 보고 119명의 여성들이 지원을 했다. 3월말쯤 당첨자 발표가 났을 때, 왜 나는 떨어졌는가를 묻는 전화가 빗발쳤다. 더 많은 기회를 달라는 것이 그네들의 요구였다. 그렇게 모인 교실 사람들이 
첫 수업을 4월 1일 했더랬다. 매주 금요일 저녁 8시. 4월 22일 다시 찾았다.

'불타는 금요일'. 빼앗길 수 없는 그 달콤한 시간을 빼서 여기 여성들이 모여있는 거였다.  한 번도 축구경기 따위를 해본 적 없는 이도 여럿이었다. 그저 축구를 좋아하는 내 아들과 놀아주기 위해 신청을 한 엄마도 있었다. 아직은 쌀쌀함이 남아있는 강변의 밤. 왜 이들은 스스로 여기 모였나? 축구화에 정강이를 채일 수도 있고, 공에 맞아 입술이 터질 수도 있건만. 발레와 더불어 축구를 함께 하고 있다는 초등2학년 남자아이엄마 노승현님은 말한다. 

“지난해 쯤 아이 축구를 하러 풋살장에 갔어요. 거기서 여자 풋살이 있어서 하게 된 거죠. 재미있는 거예요. 그런데 여자축구단을 모집한다는 걸 봤어요. 풋살엔 담장이 있는데, 여기 축구는 사방이 터진 곳이잖아요. 우리도 팀을 이뤄서 다른 팀들과 경기도 하고 싶죠. 축구하는 여자들과 일상의 여자들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일 놀란 건 함께 하는 사람들이죠. 올해 12월까지 이곳 축구교실을 운영한다고 하는데, 될 수만 있다면 계속해서 이어가고 싶어요. 공을 찰 수 있을 때까지.”
김혼비의 책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에 나오는 구절이 떠올랐다.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상상도 못하고 살아오다가, 그 현실태를 눈앞에서 본 순간, '나도 하고 싶다.'를 넘어서 '내가 이걸 오랫동안 기다려 왔었구나.'를 깨닫게 될 때 어떤 감정이 밀려드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 어제 진상 손님들 두 테이블이나 있어서 진짜 힘들었는데 오늘 아침에 축구 올 생각하니까 왜 짜증도 별로 안 나냐. 하하하. 왜 그런 거 있잖아. '야, 너희 내가 그냥 보통 식당 이모인 줄 알겠지만, 알고 보면 나 축구하는 여자다 이거야!'

축구교실 넘어서 성동여자축구단으로 나아갔으면

이분들, 여성축구인들을 맡아 지도하고 있는 이는 성수동의 젊은 축구코치 이수호 풋볼웨이 대표다. 옥수초 축구부를 거쳐 브라질로 축구유학을 다녀와 경기기록분석을 전공한 재원. 아버지 이재일(현 성동구 축구협회/전 성동구축구연합회 부회장) 역시 40여년 이력의 청우 축구회 소속 축구인이니 축구 가문이다. 

다음은 이수호 대표와의 일문일답. 

- 성동여자축구단 '감독'이시다. 현황을 이야기해 달라. 

“하하. 아직 그렇게 이야기하실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축구교실 강사일 뿐이다. 성동여자축구단이 될지는 구청에 물어보셔야 하지 않을까?”
- 하하. 선수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여긴다면 축구단이겠지. 어쨌든 그동안 서울 25개 구에서 성동구만 여자축구단이 없었다. 이번엔 뜨거운 지원신청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렇다. 해서 선수들에게 자주 말씀드린다. 하고자 하시는 분들이 많으니 명심하시라고. 더 많은 분께 기회를 드리고 싶다.”

- 시작한 지 4주가 흘렀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참여해 보니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다고 느끼는 분도 있었다. 하지만 워낙 열심히들 하고 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삶에 활력을 주는 걸 느낀다. 축구에 오롯하게 집중하는 게 보인다.”
선수들의 단체 사진을 찍다가, 회원들에게 물었다.  
“여기는 여성축구교실인가요? 아니면 여성축구단인가요? 축구단이라시면 축구단이라 쓰죠!”
잠깐 '축구교실이요!' 말이 나왔지만, 곧 “우리는 성동여성축구단!”이라는 답이 더 크게 들려나왔다. 앞줄 뒷줄의 축구단 단원들이 이에 동의했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끝이 창대하여질 성동여자축구단. 공은 차여졌고 구르기 시작했다.

시합전 작전회의.함께 모여 역할을 나눈다.
공 하나를 놓고 다투는 축구경기는 단체의 팀웍이 가장 중요한 성패의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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