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수필] 소년 시절의 전쟁과 빈곤
[문학·수필] 소년 시절의 전쟁과 빈곤
  • 성광일보
  • 승인 2022.04.27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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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웅/
광진문화원 원장, 광진미술협회 고문 역임
현재 광진예총 고문, 청하문학아카데미, 서울시단, 광진문인협회 회원
흥일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
신길웅

엿목판을 등에 지고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손가락에 걸려 있는 가위 소리를 내며 엿장수가 찾아왔다.
“엿 사시오, 엿을 사. 찢어진 고무신이나 운동화창 떨어진 것, 마루밑에 버려진 쇠붙이나 찌그러진 냄비도 좋고 무엇이든지 들고 나오시면 울릉도 호박엿을 드립니다. 찾다가 없으면 아침에 사용한 숟가락이나 밥그릇을 가져오셔도 받습니다.”

엿장수의 구성진 우스갯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왔다.
전쟁터에서 총성이 쉴 새 없이 딱콩딱콩하고 들려오기도 하고 가끔 쾅하고 지축을 흔드는 듯한 큰 소리가 들려올 때는 대포가 떨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지저귀던 새들은 물론 울부짖던 어린애 울음소리도 뚝 그치고 적막에 빠져 버리곤 했다.

거리에는 불안 속에서 보따리를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 이 동네 저 동네마다 방향 감각도 모르고 피난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 집은 식구가 많아 움직일 수도 없고 죽으나 사나 여기 있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결심에 따라 집 뒤 대나무밭이 있는 언덕 밑에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호미, 괭이, 삽으로 흙을 파내면 삼태기에 담아 텃밭에 흙을 뿌리고, 어린 나도 남자라고 세숫대야에 흙을 담아 동생과 함께 조금씩 나르는 일을 거들었다.

치열한 전쟁 중이던 1952년, 제2대 대통령선거 후보자들의 벽보가 군데군데 붙어 있고, 장날이면 선거 운동하는 마이크 소리도 들렸다.
학교에 가면 교실이 없어 천막을 치고 공부를 해야 했고, 더우면 천막에서 나와 소나무 밑 그늘에서 수업을 했으며, 한글을 터득하여 책을 읽을 줄 아는 학생도 있었지만 아직 읽지 못하는 학생도 있었다. 어떤 집은 열 살 된 어린 나이인데도 형이 군대에 가 집안일을 할 사람이 없어 아예 학교를 포기하는 친구도 있었다. 어린 나이에 뛰놀며 공부하기보다 농사일을 보조하는 어린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보리를 추수할 때는 보릿단을 나르고 모내기를 할 때는 모를 날랐다. 오후에는 구럭을 메고 토끼풀을 뜯고 텃밭에 채소를 가꾸었다. 다음 날 학교 갈 때는 어제 놓아 두었던 책보를 그대로 들고 갔으니 집에서 예습이나 복습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느 날은 누나하고 양지바른 둑에 나가 쑥, 씀바귀, 달래 등 봄나물을 캤다. 오월에는 맨발로 물에 들어가면 발이 시려울 때도 있지만 한낮에는 미지근하여 바가지를 들고 논에 들어가 우렁을 잡았다. 황새처럼 살금살금 걸으며 물속에 초점을 맞추고 우렁을 주워 바가지에 넣었다. 우렁집을 발견하고 검지와 장지 두 손가락을 깊이 넣으면 우렁이 들어 있었다. 우렁 잡는 재미로 한두 시간 이 논 저 논을 더듬다 보면 피를 빨아 먹는 징그러운 거머리가 붙어 있을 때도 있었다. 스무개 정도만 주워도 어머니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우렁은 삶아서 먹기도 하고, 된장찌개에 넣어 먹으면 그 맛을 싫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삶은 우렁을 빼먹을 때는 대추나무 가시를 이용했다.

하굣길 무성하게 자란 못자리 밭을 지나다 보면 뜸북뜸북 노래하는 뜸북이 소리가 날 때도 있다. 며칠 지나다 근처에 집이 있을 것 같아 살며시 찾아보면 모판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놓았다.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다 보면 이런 재미있는 일도 있었지만, 전쟁에 시달리고 가난에 쪼들려 항상 배고픈 생활이 이어져 알을 주워 가고 싶었지만, 어머니한테 야단맞을 것 같아 모른 척하고 지나갔다.

오월엔 보릿고개가 있다. 영글지 않은 보리를 베어 삶아서 말린 다음 밥을 지어 먹었다. 가족의 생일이라도 되면 보리개떡을 해 먹고, 쑥떡을 만들거나 모시떡을 만들어 나누어 먹기도 했다. 배고픔을 견디기란 힘들지만 견뎌 내야 했으며, 어떤 때는 물을 많이 마셔 허기를 때우던 시절도 있었다. 나는 9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나 여러 형제들 사이에서 먹을 것이 있으면 조금씩 나누어 먹는 습관을 익힐 수 있었다.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되자마자  지긋지긋한  6·25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한숨을 내쉬는 어른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마음속으로 항상 중학교 진학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동안 원한의  삼팔선을 남겨 놓고 1953년 휴전협정이 이루어졌다. 소년 시절은 전쟁과 빈곤 속에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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