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수 사진전 [시간 여행]
박옥수 사진전 [시간 여행]
  • 원동업 기자
  • 승인 2022.05.1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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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라 찍은 사진이지만, 거기 시대와 사람들 삶 오롯하다!”
사진전 <시간여행>서 백발 뚝섬소년들, 사진가 박옥수와 만나다

한 사람이 썰매를 타다가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걸 옆에서 장대를 갖고 있다가 구해줄 수 있는 건 또 얼마나 희소한 행운일까? 여기에 더해 그 장면이 부근을 지나던 어느 사진가에 의해 차곡차곡 찍힐 가능성은 또 얼마나 될까? 그리고 60여년 만에 물에 빠졌던 그 청년과 그 사진가가 그 사진을 가운데 두고 만날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찰라'는 60여년 만에 다시 부활해 2022년 5월의 봄 가운데 섰다. 인사동 인사아트갤러리 박옥수 사진전 <시간여행>에서다.

물에 빠졌던 그 뚝섬 사람, 옛 사진전에 가다

종혁은 이곳 뚝섬 일대와 한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예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기 때문이다. 때는 1월이 막 지나고 있을 무렵. 한강은 꽁꽁 얼어있었다. 이곳서는 한 자(30센티쯤) 두께나 얼음이 얼곤 했다. 마을사람들은 얼음을 켜서 꺼내어 땅을 깊게 파 묻은 뒤, 왕겨로 덮고 깊게 덮었다. 한여름이 되면 겨울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어쨌든 그날, 한강에서 썰매를 타는 건 여느 때처럼 아무 문제도 없었다. 방향을 하류쪽으로만 향하지 않았다면…. 

그쪽, 그러니까 성수동 뚝섬 하류쪽, 지금의 수원지 인근에 물이 얼지 않는 곳이 있었다. 한강이 중랑천을 만나기 전. 합류한 물이 응봉산을 앞두고 급하게 좌로 굽이를 도는 곳이어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그날 웬일이었을까? 종혁은 썰매를 하류로 향했다. 한없이 펼쳐진 은빛 세계를 마음이 내닫는 대로 달리고 싶었다. 그러다 아차! 얼음이 깨지고 말았다. 어른들이 조심하라던 그곳이었던 게 생각났다. 

물은 차가웠다. 빠르게 흐르는 물줄기가 그의 몸을 끌어댔다. 얼음 속으로 몸이 빠져드는 게 느껴졌다. 그의 상체를 얼음 위에 붙잡아 둔 건, 그가 짚고 있던 썰매 막대였다. 못을 박고, 날카롭게 송곳처럼 벼린 그것. 그걸 얼음에 박고서 겨우 몸을 의지했다.   

“신이 아직 나를 버리지 않았나봐. 그때 옆에 썰매를 지치던 청년들이 있었어요. 그때는 썰매를 탈 때, 긴 장대에다가 송곳을 박고 타는 게 있었다고. 서서 썰매를 타곤 했거든. 그게 키보다 컸어요. 길었다고. 그걸 갖고 있는 애들이 마침 내게로 달려온 거야. 그걸 붙잡고 나와 겨우 살았지.”

뚝섬 사랑했던 사진가, 시대를 환기하는 사진을 내걸다

사진가 박옥수는 67년, 한양대학교 학생이었다.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한 그해, 그는 형이 교사생활 첫 월급으로 장만한 카메라를 들고 성동교를 넘어 뚝섬으로 향해 있었다. 그가 자주 가는 곳이었다. 섬처럼 보이는 너른 들. 사람들의 마을. 방둑 아래 토끼굴의 어둠을 지나면 거기 언제나 빛으로 넘실대는 한강. 모래밭과 수양버들나무들과 멀리 뒤배를 이룬 산들. 그 모든 것들이 미술을 하다가 이제 막 사진기를 쥔 앳된 청년 옥수의 마음을 설레게 했었다. 

얼음에 빠진 사람을 발견했을 때, 그는 둑방가에 있었다. 얼음나라가 된 뚝섬의 한강변이 널리까지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급한 순간이었지만, 그는 목에 걸린 카메라를 들어올렸다. 주변에서 이미 구조를 위해 사람들이 달려가고 있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그렇게 다섯 번의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피사체가 구출이 되고, 사진가는 안도의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떴었다. 
물에 빠졌던 그 사람 홍종혁은 현재 성수동의 예아네꽃집 사장이다. 46년생인 그가 태어나 평생 떠나지 않은 곳이 여기 뚝섬이었다. 5월 7일, 사실 그는 가게를 비우면 안 되었다. 내일이 어버이날 아닌가. 꽃집이 대목인 날이었다. 그러나 얼음에 빠졌던 그의 모습을 찍었다는 사진가의 전시회를 안 가볼 수 없었다. 가면서 이곳 땅 뚝섬을 떠올렸다. 

사진, 시대의 온기와 생기를 환기시키다
성수동 뚝섬은 역동적인 곳이었다. 매일 뚝섬나루엔 한강 하류에서 온 새웃배와 상류에서 내려온 뗏목들이 닿고, 짐을 부렸다. 정선서 온 뗏목은 위에서 뜀박질해 달려도 한참을 갈 만큼 길었다. 그걸 해체해 목재로 만드는 제재소가 뚝섬에 있었다. 잘게 쪼게 땔감으로 실어 소달구지에 실어가기도 했다. 큰 농원들도 주변에 많았고, 어부들도 흔했다. 뚝섬사람들은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고, 생활력이 강했다. 이곳은 상공(商工)의 땅이었다. 그 힘겨운 노동 사이사이로 흥겨운 놀이도 겹쳐졌다. 한겨울 썰매는 그 한갓진 시간, 그곳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해방시키던 놀이였고. 

추신 : 홍종혁이 물에 빠진 것은 경동국민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58년 무렵. 박옥수의 사진이 찍힌 건 67년경이다. 그러니 사진의 그는 홍종혁은 아닌 걸로 판명됐다. 그래도 두 사람은 같은 땅을 살고 밟았던 사람들로서 말을 섞고 기억을 나누고 따뜻한 눈빛을 교환했다. 사진이 환기한 그 시대의 온기와 생기를 지닌 채 종혁 씨는 다시 뚝섬으로 돌아갔다.

세 번, 박옥수의 사진전에 갔어요

사진가 박옥수 선생의 사진전을 보러 세 번을 갔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생각나는 사진이었다. 마을 사람을 불러모으고 가족과 함께 보고픈 사진이었다. 오래 들여다보아 사랑스럽고,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싯구가 있는데, 그의 사진이 꼭 그러했다. 

사진은 빛의 예술이라고 하는데, 박옥수의 오래된 사진들이 꼭 그러하다. 흑백으로 찍혀 더 그 부분이 도드라져 보인다. 사진은 찰라의 풍경이다.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사진이라고 하는데, 그 찰라를 오랜 동안 남기기 때문에 그렇다. 사진은 피사체와 가까울 때, 더 좋은 사진이 된다. 그건 물리적 거리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그래야 한다. 환하게 웃는 박옥수의 사진 속 사람들의 표정을 본다. 거기엔 박옥수 선생의 미소가 거울처럼 반사된다. 

그의 사진에는 미덕이 더 있다. 사진 안에서 시간과 공간이 확장된다. 박옥수의 사진은 찰라를 위한 기다림이 느껴진다. 논두렁의 물꼬를 건너가는 그 순간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기다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옥수의 사진에는 놀이와 노동이 함께 한다. 땅을 파는 노동자의 행위와 어미의 짐을 받아 내리는 소년이 함께 있다. 이 역시 그 때를 기다린 것이다. 이는 조형적 균형과 내용적 대비로 조형미를 갖게 된다. 그의 사진이 오랜 동안 사랑받을 이유다. 

박옥수의 사진은 '당연히 가야할 시선'이라고 명명한 것들에서 살짝 비켜선다.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선거연설에서 많은 기자들과 사진가들은 카메라 앵글을 후보에게 맞출 것이다. 하지만 박옥수 선생은 그 연설을 지켜보는 키큰 나무와 거기 올라선 많은 이들을 잡는다. 이로서 사진에는 시대의 숨결도 스며든다. 뚝섬나루를 채운 배추와 수박들, 이를 담는 트럭과 리어카 그리고 뒤편에 즐비한 한강변 판잣집들의 풍경이 또 그러하다. 

 사진에는 저편의 풍경과 사람 말고도, 이쪽 사진가의 호흡과 시선이 담겨있다. 1949년생. 1960년대 초중반 무렵부터 시작된 박옥의 사진은 2022년 현재에도 계속된다. 그는 지금도 작은 사진기-핸드폰-만 들고 세상에 나선다. 그가 있는 곳마다 사진이 찍히어 시간여행에 보태진다. 젊어 한국 곳곳을 돌며 찍던 그때와 바뀐 것은 없다. 사진은 사진이고, 결국 그 사진은 사진가의 고집이며 마음임을 잊지 않은 것처럼.

사진가 박옥수(왼편)와 뚝섬 토박이 홍종혁 씨와의 대화. 60여년 전의 뚝섬을 공유하고 있는 그들은 2022년 다시 만나 그 기억을 환기했다. 뒤편 사진을 찍는 이는 사진전을 기획한 지승룡 선생.

 

박옥수 사진전 <시간여행>에서. 사진가 박옥수와 뚝섬사람 토박이 홍종혁(예아네꽃집)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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