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봄이 오는 소리
[수필] 봄이 오는 소리
  • 성광일보
  • 승인 2022.05.2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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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용/수필가, 성동문인협회 이사
최학용

긴 겨울잠에서 아직도 잠든 듯 고요했던 날들, 얼음장 밑으로 봄이 성큼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다. 청계천을 걷는데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눈앞에 어른거린다. 물 흐르는 소리도 더 요란해졌다. 봄의 소리다. 지구 위 모든 이들이 코로나로 신음하고 있는 동안 바위 위 새들의 날갯짓은 활발해진 듯했다. 
봄이 오고 있었구나! 나뭇가지 위를 보니 나뭇잎도 파란색을 보였다.
자연 앞에 숙연해지는 나 자신을 본다. 겨울 동안 나는 무엇을 했었나?
코로나에 겁먹고 움츠리고 지났던 날들이 많았다. 알량한 믿음도 멀어지고 친구들도 친척들도 다 멀어졌다. 추위 속에서도 자연은 우리를 봄이란 포근함 속으로 초대했구나. 이런 일이 일상에서의 감사가 아닌가?
이런 마음이 통했던지 '엄마 우리 전철 타고 야외에 나갈까요?'하는 아들의 전화다. 남편도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 운길산에 장어 먹으러 갈까? 하며 응수했다. 지난주 동네 장어집에서 운길산 얘기를 했었다.
아들네 네 식구가 차를 우리 집에 세우고 전철로 떠났다. 마침 쾌청한 날씨. 봄기운이 살랑거리는 바람도 뺨에 스치는 감촉이 싱그러웠다. 기분 좋은 날이다.
손녀 둘이도 이런 동행은 처음이라 마음이 많이 들떠있었다. 내 마음도 그랬다. 사랑하는 마음이 이런 것이야. 우리는 마주 보는 자리에서 서로 보며 빙그레 웃었다. 늘 자주 만나지 못했던 아쉬운 정이 결핍된 우리였었다. 만나면 좋은 사이 오늘 아쉬움을 달래자.
전철에 좌석도 여유가 있었고 차창으로 들어오는 봄볕이 따사로워 등을 덥혀 주었고 기분은 계속 좋아졌다.
손녀 둘이는 간간이 사진도 찍으며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쓸 정도로 들떠 있었다. 언제 이렇게 공부를 떠나 야외로 나간 적이 있었던가? 그러는 사이 많이 성숙해진 손녀들이 대견하다.
아들 고3 때였다. 공부에 지친 머리 식혀 준다고 동구릉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책가방을 무겁게 지고 갔던 아들은 내내 책을 손에서 놓지를 못하고 책과 함께하다 돌아왔던 생각이 떠오른다.
운길산역에 도착, 장어집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목적지에 닿았다. 큰 홀엔 벌써 많은 사람의 장어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어리둥절할 정도의 많은 사람, 서툴지만 인파에 휩쓸려 장어구이를 먹었다. 나는 장어구이보다 석쇠에 구워 먹는 가래떡이 더 별미였다. 석쇠에 굽는 흰 가래떡 얼마 만인가?
어릴 적 시골에서의 설 전날 풍경이 떠올랐다.
양조장 집 딸임을 잊지 않고 나에게 복분자 술 한잔을 건네는 남편, 복분자 술이 이렇게 입에 착 감기는 맛인 줄 오늘 처음 경험했다, 남편과 아들에게는 내가 한 잔씩 권했다. 정말 기분 좋은 날이다. 넓은 마당의 가득한 봄볕에 볼을 스치는 감촉이 좋았다. 시골 오일장이 서고 있었다. 어릴 적 장에서의 추억이 떠오른다. 손녀 둘이는 신기한 듯 장 구경에 분주했다. 나도 5일 시골 장 구경한지가 얼마 만인가? 고향에서의 오일장이 머리를 스쳐 간다. 비가 오던 날의 질척거리던 장날 풍경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비가 오는 날 장화 없이는 못 산다'라던 말이 있을 정도로 내가 생각하고 있는 장 바닥은 정말 질척거리는 진흙탕이었다. 초등학교 때 비가 오던 날의 장날 풍경이다. 오늘같이 맑은 날의 장날은 손님이 법석일 것 같은 기억이다.
은행도 냉이도 그리고 직접 굽는 과자도 샀다. 어릴 적 5일 장에 갔던 생각이 났다. 손녀 둘이는 신기한 듯 여기저기 구경하기 바빴다.
과자를 손에 들고 콧노래를 부른다. 여기서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연꽃 축제에 오던 곳을 찾아 걸었다. 두물머리까지 이르렀다. 강변엔 400년 수령을 자랑하는 느티나무가 이곳의 위용을 자랑하는 듯 서 있었다. 많은 인파가 여유로운 봄을 즐기고 있었다. 한 시간 반쯤 걸었다. 장어의 힘인지? 우린 씩씩했다. 3층 카페에 올라갔다. 내려다보이는 경치도 좋았지만, 가족이 오랜만에 함께할 생각에 더욱 기분이 좋았다. 커피 맛이 이렇게 좋을 수가? 시골 할머니가 캔 냉이 나물 해 먹을 생각에 군침이 돌았다. 공부에 시달리던 두 손녀 입시 경쟁 속에서 벗어나 자연에 왔다는 생각에 늘 안쓰럽던 마음이 한결 편한 하루였다. 나는 냉이로 구수한 된장국을 끓였다. 며느리는 냉이를 날로 김에 싸서 초고추장을 찍어 맛있게 먹었단다. 냉이 한가지 가지고도 어떻게 먹느냐? 가 세대 차이를 보임이 재미있었다. 냉이의 향기가 입가에 군침을 돌게 한다. 공부에 시달리던 두 손녀 입시 경쟁 속에서 벗어나 자연에 왔다는 생각에 늘 안쓰럽던 마음이 한결 편한 하루였다. 
동네에 와서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집에 도착을 알려왔다. 이어서 핸드폰에 뜨는 명화(?) 한편. 둘째 손녀가 우리는 알지도 못한 사이에 여섯 식구의 오늘 하루를 영상에 담아서 보냈다. 감격의 순간들 무슨 재주인가!! 놀랍다 우리 손녀딸들 아자!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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