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한여름 밤의 꿈
[장편소설] 한여름 밤의 꿈
  • 성광일보
  • 승인 2022.05.2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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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동
시인·소설가,
성동문인협회 이사
김욱동

-꿈의 문

“재식아! 재식아!”

땀에 흠뻑 절어 쉰내 나는 가방을, 청청한 감나무 그늘 차광막이 시원하게 늘어진 대청 한구석에 던지며 마당을 휘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 귀 따갑게 울던 매미들이 낯선 사람이 나타나자, 잠시 쉬며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이내, 제각기 다른 음색으로 이곳저곳에서 울어댄다. 
뒤꼍과 안방, 부엌에도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소 막 곁 헛간 대들보 높이 멍석을 매달아 둔 시렁에 묶여 있던 낚싯대를 끄집어내었다.

 그동안 아무도 손대지 않은 흔적으로 켜켜이 앉은 거미줄을 꼼꼼하게 걷어 내고는 끝대부터 한마디씩 세워 갔다. 
낚싯대라고 부르기에는 조악한, 대나무 민 장대를 꿰맞춘 허름한 2간대 하나와, 2간 반대 하나에, 받침대 두 개가 고작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대학생이 된 올해,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 같은 과 동아리들을 비롯하여 여기저기서 부르는 단체들의 유혹을 피해, 가창 외갓집을 찾아 대구행 완행열차를 탔다. 

 플랫폼에서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부터는 외갓집이 있는, 달성군 가창면 삼산동 마을에서 우록동 방향 중간쯤 거리에 있는 작은 저수지와 저수지를 에워싼 마름모꼴 방죽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삼산동 마을에서는 차가 다닐 수 있는 큰길이 양 갈래로 나뉘는데 왼쪽으로 난 고갯길을 넘어 몇 차례 아슬아슬한 골짜기를 지나면 청도군 이서면에 도달한다.
최근에는 산을 관통하는 굴이 뚫려 한적한 드라이브 코스가 되었지만, 해발 398m밖에 되지 않는 낮은 산길인데도 길이 험해 과거에는 고개를 넘던 버스 등이 추락하는 대형사고가 잦았던 곳으로, 삼산 마을 사람들은 '팔송재'라고 부르는 팔조령이다. 옛길 고갯마루에는 작은 휴게소가 있는데 청도 출신 시인 이호우 님의 「팔조령」이란 시비가 있다.
그리고 삼산동에서 우측으로 난 길을 가면 유명한 '녹동서원'이 있는 우록동이 있다. 

우록동 버스 종점 인근에 있는 남지장사란 절이 있었고, 가는 길에는 작은 소류지가 그림 같이 자리 잡고 있다.
녹동서원이 유명한 것은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의 우 선봉장으로 1592년 4월 13일 부산포에 내린 '사가랴'(당시 22세)라는 일본 장군이 동래, 밀양 등을 거처 영남 선비 골을 지나면서 조국인 일본과는 비교도 안 되게 학식과 덕망이 높은 조선 선비들을 포로로 잡았던 연유인데, 이런 선비의 나라를 적국으로 삼기보다 조국으로 삼자는 생각에, 부산 상륙 7일만인 4월 20일 조선에 투항했다.

그 후 임진왜란뿐만 아니라, 정유재란, 병자호란 때도 조선군으로 참전해 혁혁한 공을 세웠고, 화약과 조총 기술을 조선에 전하며 새 조국에 대한 충성과 사랑을 실천했다.
선조 임금은 장군의 충정을 높이 사 김씨 성과, 충선 이란 이름, 우록이라는 삶의 터를 하사하였는데 그분이 우록 김씨의 시조가 되었고, 김충선 장군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하는 곳이 녹동서원이다. 

어릴 때는 혼자 외갓집을 보내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으셨던지 위로 다섯 터울의 누나와 함께하는 여행이 아니면, 어림도 없었던 일이었다.
가끔 뇌리에 떠오르는 외가는 무어라 꼬집어 말할 순 없어도 지친 마음과 몸을 언제나 선선히 받아주는 푸근한 고향 같은 개념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비록 깡 촌에 살았지만, 흰 두루마기 차림에 중 갓을 쓴 기골이 장대해 보이는 외할아버지 사진이 마루 정면에 낡고 커다란 액자 한가운데 자리 잡고서 누렇게 마멸되어가며 연륜을 보태는 모습으로 변함없이 반기고 있었다.

맨 처음 외가에 간 것은 초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였다.
그해 중학교에 입학한 누나와 함께 부산역에서 이른 아침 기차를 탔다.
지금은 ktx로 45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나, 그때 하루 몇 차례 없는 완행기차는 부산역에서 대구역까지 4시간이 넘게 소요되었다.
요즘처럼 지정 좌석이란 호사스러운 개념이 도입되지도, 적용되지도 않는 완행열차는 몇 차례 비집고 들어가는 난리를 치르고서야 겨우 탑승할 수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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