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왕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 이원주 기자
  • 승인 2022.06.10 11: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란교/논설위원
송란교/논설위원

멸치젓국은 소금으로 절이는데 소금보다 더 짜다고 느끼는 것은 왜일까? 짜다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젓갈이나 자린고비일 것이다. 엉뚱하지만 청출어람(靑出於藍), 출람지예(出藍之譽)를 생각해본다. 순자(筍子)는 ‘권학편(勸學篇)’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학불가이이 청취지어람 이청어람 빙수위지 이한어수(學不可以已 靑取之於藍 而靑於藍 氷水爲之 而寒於水 : 학문은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 푸른색은 쪽 풀에서 취했건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 얼음은 물이 된 것이지만 물보다 더 차갑다)’.

그래서 ‘청출어람’은 후생(後生, 제자)이 스승보다 더 뛰어나게 됨을 일컫는 말의 대명사가 되었다. 스승의 이끌어주심과 제자의 부단한 노력으로 스승의 경계를 뛰어넘는다면 스승의 보람은 매우 클 것이다. 이규보(李奎報)는 <과용담사過龍潭寺>라는 시에서, ‘수기처량습단삼 청강일대벽어람(水氣凄凉襲短衫 淸江一帶碧於藍 : 물기운이 서늘하게 짧은 적삼에 파고들고, 한 줄기 맑은 강물 쪽빛보다 더 푸르네)’라고 읊기도 했다.

스승의 그림자는 밟아서는 안 된다고 배웠지만, 밟아서는 안 되는 것이 꼭 스승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자만 보아도 밥맛이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 쇠에서 나온 녹(綠)이 쇠를 갉아먹는다고나 할까. 청출어람처럼 선순환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지만, 쇠를 갉아 먹는 것처럼 악순환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빛이 밝음을 잃으면 어둠이 될 뿐이고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굴러다니는 모래알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 또한 인품(人品)을 잃으면 들판에서 날뛰는 금수에도 미치지 못한다.

눈물에는 짠맛도 나고 단맛도 난다. 단맛이 난다고 하여 다른 사람의 눈에서 눈물을 뽑아내지는 말자.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는 성경 말씀을 금과옥조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청출어람은 아닐지라도 쇠를 갉아먹지는 않을 것이다. 소금은 음식에 간을 하든가 음식이 썩지 않게 하는데 사용하는 것이지 남의 상처 난 곳에 염장 지르듯 뿌리는 물건이 결코 아니다.

멸치젓국에 자린고비를 절이면 자린고비는 더 짜질까 아니면 싱거워질까? 소금에 절인 멸치젓국과 눈물에 절인 고단한 삶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짤까? 사람 마음이 구두쇠 같을 때도 짜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자린고비보다 더 짠 게 사람 마음이고 청양고추보다 더 매운 게 사람 눈초리가 아닐까 싶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았는가?’, ‘남의 밥은 맵고도 짜다’, ‘삼각산 밑에서 짠물 먹는 놈, ‘인천 앞바다 바닷물보다 더 짠 놈’이라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어볼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은 단맛도 짠맛도 매운맛도 섞여 있는 짬뽕 맛일 거다. 이것저것 어중이떠중이를 한 통 속에 밀어 넣고 버무린 그런 맛일 거다.

짠맛을 내는 소금도 종류가 여럿이다. 암염(巖鹽, 돌소금)은 소금 바위에서 캐낸 것이다. 천일염(天日鹽)은 바닷물을 염전에 가두고 햇빛과 바람으로 수분을 증발시켜 만든 가공하지 않은 소금이며, 정제염(精製鹽)은 바닷물을 여과와 침전, 이온교환막 통과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불순물과 중금속을 제거한 소금을 말한다.

맛소금은 정제염에 MSG(Mono Sodium Glutamate : 글루탐산나트륨)를 첨가해 감칠맛이 나게 만든 소금, 구운 소금은 천일염을 고온에서 볶거나 구워서 만든 소금, ​죽염은 대나무 통에 천일염을 빈틈없이 채워 넣고 600도의 온도에서 소나무 장작의 열을 이용하여 구워낸 소금, 함초소금은 서남해안 지역에서 나는 함초(鹹草)를 첨가해서 만든 소금이다. 이들은 정제염의 일종이다. 소금도 원재료나 제조과정에 따라 짠맛에 차이가 있고 용도와 가격도 다양하다. 사람도 그렇다.

밥상 위에 떨어지는 햇살에도 간혹 눈치가 보이고 소금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남이 사주는 비싼 갈비탕은 눈치가 보인다. 어금니 사이에 끼인 마른 대파 한줄기와 질긴 소 심줄이 다투다 보면, 맛있는 육즙을 느낄 새도 없이 목구멍 사이를 지나간다. 어쩌면 틀니 사이에서 이쑤시개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베푸는 값싼 시골 된장국은 눈치 볼 게 없어 마음이 편하고 마구마구 먹어대도 배가 편하다. 눈칫밥은 소금을 뿌리지 않아도 그만큼 짜다. 옛말에 ‘돈 없이 못 갈 데는 기생집이고 맨발로 못 갈 데는 밤나무 아랫니라’라는 말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특별시 광진구 용마산로128 원방빌딩 501호(중곡동)
  • 대표전화 : 02-2294-7322
  • 팩스 : 02-2294-732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연
  • 법인명 : 성광미디어(주)
  • 제호 : 성광일보
  • 등록번호 : 서울 아 01336
  • 등록일 : 2010-09-01
  • 창간일 : 2010-10-12
  • 회장 : 조연만
  • 발행인 : 이원주
  • 자매지 : 성동신문·광진투데이·서울로컬뉴스
  • 통신판매 등록 : 제2018-서울광진-1174호
  • 계좌번호 : 우체국 : 012435-02-473036 예금주 이원주
  • 기사제보: sgilbo@naver.com
  • 성광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성광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gilbo@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