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성수동(뚝섬)의 새촌은 정세권이 만든 한옥마을
북촌, 성수동(뚝섬)의 새촌은 정세권이 만든 한옥마을
  • 서성원 기자
  • 승인 2022.06.13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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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49) 성수동(뚝섬) 새촌
왼쪽:1972년 성수동 항공사진이다. 새촌의 개량 한옥 지역이 남아있다.(오른쪽 원내는 경동초등학교임) 
              (출처 국토지리정보원)
오른쪽: 2020년 카카오맵의 항공사진이다. 옛날에 지었던 개량 한옥은 한 채도 없다. 다만 택지 모습이 남아있다.
(오른쪽 원내는 경동초등학교임)
          (출처 카카오 맵 위성 사진.

○ 소재지: 서울시 성동구 성수1가1동

새촌위치

3년 전쯤이다. 누가 나에게 물었다.
“새촌 알아요?”
“아뇨.”
알고 보니 새촌은 우리 동네였다. 우리 집에서 길 하나 건너였다. 성동구 성수1가 1동이다. 그 후로, 그곳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그런데 왜 새촌이라고 부를까? 궁금했다. 의문은 엉뚱한 곳에서 풀렸다. 일제 강점기에 북촌에 개량 한옥 단지를 만들어서 일본인의 북촌 진입을 막으려 했던 분이 있었다. 
정세권. 그분이 이곳 뚝섬에도 한옥 단지를 만들었다. 그 동네가 '새촌'이다. 그러니까 정세권이 서울의 뉴타운(새촌)을 개발했는데, 예로부터 유명했던 북촌은 옛 지명 그대로 불렀다. 뚝섬의 뉴타운은 사람들이 '새촌'이라고 불렀다. 

정세권(鄭世權, 1888년 4월 10일~1965년 9월 14일)을 만나다

2022년 6월 1일 지방선거일이다. 투표를 끝내고 북촌으로 갔다. 일 때문에 들른 적은 있지만 마을을 둘러보는 건 처음이다. 생각지 못했는데, 북촌한옥역사관(서울시 운영)에서 정세권을 만났다. 우리 동네 '새촌'을 알기 위해 만나야 할 사람이었다. 여기서 신순아 담당자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그분은 오히려 새촌이 궁금하다고 했다.
정세권은 1888년 경남 고성에서 출생했다. 천재여서 3년 과정 진주사범을 1년 만에 졸업했다. 23살에 고성군 하이면 면장을 했고 그 후, 사퇴하고 상경한다.
1920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부동산개발회사 건양사를 설립해서 근대식 대규모 한옥 단지를 개발한다. 도성 안에서는 일본인이 북촌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지금의 북촌이 그때 만들어졌다. 1940년대 이후에는 왕십리, 행당동, 뚝섬 지역의 땅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뚝섬의 토지 3만 5천여 평은 일제에 빼앗겼다.
해방 후에 성동구 왕십리, 행당동에 한옥 단지를 만들어서 정세권은 행당동에 거주한다. 그 후 1962년 귀향하기 전까지 살았다. 정세권은 행당동 사람이었다. 그는 물산장려운동을 주도했고, 조선어학회를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에 가담해서 일제로부터 고문을 당하고 건축허가를 빼앗겼다. 자세한 내용은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김경민 저>를 보면 알 수 있다. 
 
새촌에 언제 집을 지었고 모습은 어땠까.

새촌의 한옥 단지는 언제 만들었을까.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찾지 못했다. 남은 방법은 사람을 통해서 증언을 들어야 한다. 정희선(정세권의 손녀), 김경민 교수(저자)에게 이메일을 보냈으나 곧바로 답변을 받지 못했다. 동네에서 새촌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찾아야 했다. 
뚝섬에서 오래 살았던 임인수(노인회 성동지회장)님으로부터 많은 얘기를 들었다. 새촌의 집은 20평 정도였고, 반지하도 있었다는 얘기. 물난리 이후에 만든 마을이 새촌이라고 했다. 

취재, 사진 촬영하는 중에 새촌스포츠 사장님을 만났다. 가게에는 동네에서 50년 이상 사는 다른 분들이 있었고, 50년대 후반, 대학 시절에 새촌을 자주 왔었다고 했다. 새촌에 기동차 관사가 있었다고 했다. 주변은 모두 밭이었다고. 

뚝섬에서 자랐던 김기욱 씨로부터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지 도움을 받았다. 새촌에서 오륙십 년 이상 살았던 분들로부터 새촌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중에 개량 한옥에 살았던 P씨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집은 ㄷ자나 ㄱ자였다. 마당 맞은편에 장독대가 있고 아래에 지하실은 창고였다. 식수는 펌프였다. 방이 3개, 마루, 부엌이 있었다. 

김후덕(85세) 어르신의 증언은 이렇다. 75년에 새촌에 들어왔다. 기와집인데, 30평형대였고, 해방 후에 지었다고 들었다. 20평, 22평, 25평도 있었다. ㄱ자 집인데 방이 두 개고 거실 마루가 있고, 마당이 작았다. 뽐뿌가 있었다. 대략 4, 50가구가 있었다. 개량 한옥에서 25년 정도 살았고 집을 다시 지었다. 둑이 없어서 한강에 나가서 아이들을 수영했고 어른들은 빨래를 했다. 2021년에 집을 팔고 아파트에 거주한다. 

김만순(87세) 어르신 증언이다. 새촌에서 한 오십 년 넘게 살았다. 방이 네 개였다. 한옥으로 똑 같이 지어서 '새촌'이라고 했었다. 마루가 있었다. 우리 집은 새로 지었다. 새촌 사진이 많았었는데 다 버렸다. 뽐뿌물도 있었고 수돗물도 있었다. 삼 년 전에 아파트로 이주했다. 

어르신들의 기억은 다르면서 비슷했다. 정세권이란 깨어있는 어른이 있어서 뚝섬에 새촌이란 동네가 만들어졌었다. 마을의 역사를 기억하는 분들이 적어지니까 내 마음이 바쁘다. 새촌에 백석 시인이 거주했었는데 다음에 더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

정세권(출처 북촌한옥역사관 촬영)
김만순(87세) 어르신이다. 새촌에서 오십 년 넘게 사시다가 집 관리가 어려워 최근에 아파트로 옮기셨는데 새촌 노인정에 매일 같이 다니신다. 오른쪽 골목에는 빌딩을 짓는 모습이 살짝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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