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한여름 밤의 꿈(2)
[장편소설] 한여름 밤의 꿈(2)
  • 성광일보
  • 승인 2022.06.1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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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동/시인·소설가, 성동문인협회 이사
김욱동

운행할 수 있는 기차도 국가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시절이기도 했고, 당시 전쟁을 피해 임시 수도 부산에서 삶을 이어가던 피난민들이 정부가 수도를 서울로 옮긴 후부터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며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러자 하나둘 고향으로, 더러는 연고지를 찾아 떠나던 무렵으로 기차뿐 아니라 모든 교통수단은 태부족이었다. 
새벽녘 몇 차례나 흔들어 깨우는 아버지 성화에 밤새 모기에 뜯기느라 설친 눈으로 고양이 세수를 마치고는 속을 든든히 채워야 한다는 강권에 못 이겨 시래기 된장국에 식은 밥 한 덩이를 말아, 먹는 둥 마는 둥 수저를 놓고 들뜬 마음으로 절영도 중턱에 있는 영선동 집을 나섰다.
남항동 로터리가 종점인 전차는 아직 운행할 시간이 일렀기에 아버지 뒤를 따라, 여름이지만 새벽 공기가 꽤 쌀쌀한 갯내 물씬 풍기는, 영도다리를 걸어 제 1부두 곁 부산역으로 달음박질하다시피 끌려갔다.

동녘은 마지못해서라도 희끄무레해지려는 시간인데도 굵은 새끼줄로 구획 지어진 역 광장에는 거적때기를 깔아둔 바닥에 삼삼오오 앉은 여행객들로 빈틈이 없었다.

철도 역무원 복장의 완장 찬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면 고막이 터질 지경으로, 호루라기를 불며 건물 안 매표소까지 이어진 뱀 꼬리처럼 똬리를 틀며 구불거리는 긴 줄이 흩어질까 봐 목청껏 고함을 지르느라 동분서주했다. 

그런데 시간이 다가와 막상 표를 팔기 시작하자 뱀 꼬리는 어느새 허물어지고 커다란 말벌집처럼 덩어리져 매표소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새치기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만들며 서 있던 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억울한 마음에 완장 찬 사람들을 여기저기 찾았으나, 그들은 어디에 몽땅 숨었는지 대부분 보이지 않았다. 

표를 산 사람들이 플랫폼에 나가기 전 승차권을 검사 하는 개찰구 중 맨 구석 개찰구에는 표 사는 줄에도 서지 않은 듯한 제법 입성이 반듯한 몇몇이 얼쩡거렸다.

그러다 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했던 완장 찬 사람들이 나타나자 한동안 그들과 귓속말을 하더니 역무원이 눈치껏 열어주는 개찰구를 통과해 숨어들 듯 기차 쪽으로 들어갔다.

그쪽을 곱잖은 표정으로 노려보던 사람들도 아귀다툼 끝에라도 막상 표를 구하자 머리가 무너지게 이고, 등에 지고 어깨에 둘러멘 커다란 짐 보퉁이 외에도 양손 가득 든 보따리, 고리짝, 가방 등을 들고는 좌석을 차지하고자 플랫폼 쪽으로 봇물 터지듯 내 닫기 시작했다.
「12 열차」 등 숫자로 명명(命名)된 기차 가운데 부산서 서울까지 가는 첫 완행열차는 피스톤에서 뜨거운 증기를 푹푹 몰아쉬며 비 가림 함석 차양이 끝난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몸이 가벼웠고 책가방 외에는, 삶은 달걀 몇 개와 카스텔라 빵 한 봉지가 전부인 짐보따리를 개찰구 입구까지 배웅하는 아버지에게 받아쥐고는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 다행히 둘 다 객차 창가 자리를 마주하며 차지했다.

그러나 차를 탔고 좌석까지 차지한 안도감도 잠시뿐 얼마 지나지 않아 인파가 통로까지 꽉 찬 객차 속은 찐빵 솥 같이 달아올랐고, 땀 냄새 따위의 쉰내로 속이 울렁거렸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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