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수필] 기생충
[문학·수필] 기생충
  • 성광일보
  • 승인 2022.06.1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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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숙
이기숙

봉준호 감독의 영화〈기생충〉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던즈음에 나는 한국에 입국했다. 기생충 하면 회충이 먼저 떠오르지만, 내 조국보다 잘사는 나라에 살면서 '기생충 같은 존재'가 되지 않으려던 다짐 때문이었을까, 나는 곧바로 영화관으로 향했다.
한국에서만 살았어도 그랬을까?

우리 세대는 봄가을이면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회충약을 삼켜야 했다. 어느 해엔 선생님 앞에서 공동 복용했던 기억도 있다.
대변을 찍어 제출하는 것도 연중행사의 하나였는데, 그걸 마지막 날까지 못 낸 아이가 있었다. 담임 수업시간에 쫓겨 화장실로 보내졌으나 빈손으로 돌아온 아이와 그녀를 다그치던 선생님 얼굴. 부끄러움과 억울함(?)으로 눈물만 글썽이던 친구. 우리 모두 고개 숙이고 숨죽이던 여고 1학년. 그때가 겹쳐온다.(※사람이나 가축에 기생하여 병해를 일으키는 생물. 또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남에게 의지하여 사는 사람을 야유하여 이르는 말.)

내가 태어난 전라도 임실군 용정리. 대농이던 우리 집은 식구들을 빼고도 상주하는 사람들이 많아 볼일 보는 곳도 네 군데였다. 서로 떨어져 있긴 했지만, 변소 한 채를 앞뒤로 막아 출입구가 달랐을 뿐, 들어가 보면 긴 판자 두 개를 걸쳐놓은 한 통 속. 앞칸에 있을 때 뒤칸에 누가 올라오면 흔들다리가 되었다. 멀지 않던 외갓집 변소 아래엔 돼지가 꿀꿀거렸다.

난 그런 변소 가는 게 무서워서 어린 동생과 항상 함께였다. 우린 한 칸에 나란히 앞뒤에 앉아 볼일을 보았다. 아주 어릴 적 얘기다.
장맛비가 흘러들어 수위가 높아지면 튀어 오르는 똥물을 피하기 위해 작은 궁둥이를 잽싸게 들어올리던 기억도 생생하다. 잘못 조준된 대변으로 발 디딜 곳을 조심해야 하는 변소에 가는 일은 끔찍했다.

최악의 경우는 회충약 복용 후였다. 아직 항문에 매달려 있던 지렁이 같은 회충. 코로 나오기도 하는 회충 이야기는 숱했다. 어디 그뿐인가. 사시사철 함께했던 구데기들, 어찌 견딜 수 있었는지 생각하면기가 찰 노릇이다. 시골 초등학교 시절이다.

그 후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의 학창 시절과 강원도에서 교사 생활을 거쳐 독일 유학길에 올랐어도, 어릴 적 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데는 오랜 세월이 흘러야 했다.

1982년부터 2020년. 한국을 떠나 있었던 만 38년 세월. 그동안 세계 최고를 향한 염원 속에 한강의 기적이 가져다 준 대한민국의 발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그중에서도 변소의 탈바꿈이 가장 마음에 든다. 어릴 적 측간과 요즘 화장실에서 한강의 기적을 본다. 이제는 변소라 부르는 게 어울리지 않는 화장실의 변신. 한국 화장실은 세계 최고임에 틀림없다.

이성과 합리의 논리를 최상의 가치로 알았던 청년 시절, 미련없이 한국을 떠났다. 내 젊음보다 더 새파란 꿈을 무지개에 띄우고 갔다.
당시 근무하던 강원도 산골 중학교에 사표를 쓰고 독일행 비행기를 탔다. 30시간을 걸려 도착한 프랑크푸르트는 초행이었지만 혼자서 목적지까지 찾아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국민으로  알려진 독일, 상식이 통하는 사회, 자유와 민주를 구하는 게 아니라 누리는 그들 모습에서 이질감보다는호기심과 신선함을 느끼며 어학 공부도, 새로운 문화에의 적응도 어려운 줄 몰랐다. 어줍잖은 독일어 실력이었지만 마음놓고 비판할 수 있었다. 한국 정치에 관심 있는 대학생과 교수에게 독일의 나치 시대를 들먹였다. 한국 정치를 바라보는 우월한 시선에 일침을 놓으며 그들을 기죽게도 했다. 겸손한 그들과 당돌했던 나는 묘하게도 궁합이 맞는 듯했다.

두꺼운 외투가 무거운 줄 모르다 화창한 봄날 무거워진 외투를 벗었을 때의 홀가분함, 그 산뜻함은 나의 독일 생활에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한국에서 여자이기에 당연시했던, 벗을 수 없었던 옷을 벗은 느낌, 그 자유를 누렸다.

공부가 끝났을 때, 한국을 떠날 때의 계획과는 달리 독일 남자와 결혼했다. 한국 가족은 우리의 귀국을 반대했기에 한국 가족 없이 혼례를 치렀다. 다섯 살 연하 남편을 시덥지 않아했다. 우린 독일에 머물기로 했다.

그때 불현듯 떠올랐던 '기생충'이란 단어, 그 사회에 '기생충 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만 해도 독일은 한국보다 훨씬 잘사는 나라였기에.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홀로 떠났던 나에게 가족이 생겼고, 이제 아이들은 커서 독립했다. 가족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난 독일 영주권을 반납하고 대한민국에 영주 귀국했다. 그동안 국적을 바꾼 적도 없지만, 한국 국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나에게 다시 떠오른 이 '기생충'이란 단어, 뜻하지 않은 자각이다.

그동안 짧은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몰라보게 발전하는 대한민국에 아낌없이 감탄했고, 부담없이 자랑스러웠었다. 그런데 한국으로 영주 귀국을 하고 보니, 예상치 못했던 이 미안함을 부정하지 못하겠다. 어려운 시절 함께하지 못했다는 자각. 마치 남의 떡으로 제사지내는 기분이다.
하지만 독일 거주 결정을 할 때 '기생충'을 떠올린 덕분에 시키지 않는 일을 찾아서 했던 경험이 위로가 된다.
이번에도 '기생충'은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했다.
그래서 시작한 사회복지사 공부. 이제 이론은 통과했고, 한 학기 실습을 앞두고 있다.

이기숙

서울여상, 경희대 문리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독일로 건너가 노르트라인대학 도자기학과를 졸업했다.
심리상담사 수료, HSP 독일 요가 교사 자격 취득 
독일 뒤셀도르프 시민문화회관 요가 강사
현재 뜸사랑 34기 침구사 자격 취득, 사회복지사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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