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과 풍수 184. 동양오술.(용대기 53)
동양학과 풍수 184. 동양오술.(용대기 53)
  • 성광일보
  • 승인 2022.06.2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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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老泉) 김흥국.
광진투데이편집위원장. 삼오지리학회장역임. 現. 한국현공풍수학회장. 신화씨엠씨(주)대표.
노천(老泉) 김흥국<br>
노천(老泉) 김흥국

우리는 지금, 본 연재의 마무리 단계로 치우천황의 업적들을 나열하면서 민중 속에 뿌리박고 있는 전래유산이나 민속놀이 등의 근거를 배달국이나 고조선에서 찾고 있다.

지난 호에서 첫 번째 과제인 “치우천황=용 문양”이란 등식을 증명해 보았다. 그래서 오늘날 붉은 악마를 비롯한 귀면와 등 도깨비 문양은 치우천황의 용 문양에서 출발했지만, 중화족들은 용의 출발이 동이족에서 시작되었음에 자존심이 상해 도철이란 이름으로 도깨비나 악마 등으로 분류하여 저속하게 취급하였다.

이제 두 번째 과제로 “치우깃발=용대기”란 등식을 증명해 보자. 지난 시간에 이어 다양한 사례를 통해 증명하면서 우리 민속놀이에 동반되는 용 그림에 대한 근거도 밝혀보자.

가운데 中이란 한자는 무리의 중심에 세우는 깃발에서 시작된 상형문자라고 했다.

그 옛날 무전기가 없던 전쟁터에서 최고 통수권자의 위치를 알리는 수단이 깃발이었고 군대의 무리가 많아질수록 소단위 부대의 식별 깃발이 무수하게 생겼다.

중화족의 경우는 오행의 오채색을 바탕으로 장수의 성을 써서 표식하였으며, 이러한 증거를 삼국지 내용을 통해서 증명해 보았다.

그럼 우리 동이족은 어떤 방식으로 부대를 식별하였는가를 역사의 기록을 통해서 증거를 찾아보고 그 중심에 용대기가 있을 수밖에 없는 정황을 귀납적으로 증명을 해보자.

증명의 근거를 찾기 위해 북부여의 행정체계를 통해 당시를 추측할 필요가 있다. 북부여는 고조선의 뒤를 이은 고구려의 전신으로 배달민족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연재의 내용을 더듬어 보면 북부여의 전통 행정분류법으로 삼사오가(三師五加)제도가 있다. 삼사(三師)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로 현재의 느낌으로 보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같은 권력의 분배이다.

그리고 오가(五加) 제도는 윷놀이의 말판을 연상해서, 도는 저가(豬加), 개는 구가(狗加), 걸은 양가(羊加), 윷은 우가(牛加), 모는 마가(馬加)로 이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28수 별자리를 적용한 우주의 운행 법칙을 적용하여 행정조직을 중앙에서 사통팔달로 연결하였다. 이를 사출도(四出道)라 한다.

당시의 백성들은 윷놀이를 통해서 나라의 행정조직과 우주 법칙을 이해하고 배웠던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민속학자인 스튜어트 컬린(1858~1919)은 자신의 저서에서 “한국의 윷놀이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놀이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 고 극찬을 했다.

이상의 조직을 발판으로 행정도 분담하였다. 동쪽은 우가주곡(牛加主穀)으로 농업을 담당하고, 북쪽의 양가는 주선악(羊加主善惡)으로 착한 양의 의미를 살려 선악(善惡)을 통한 사리 분별로 징벌을 담당하게 하고, 서쪽은 구가주형(狗加主刑)으로 개는 영리한 본능으로 내부 치안을 책임지고 더불어 형벌을 담당하고, 남쪽은 마가주명(馬加主命)으로 달리는 말의 특성으로 중앙의 명령과 전쟁, 국방 등 생사에 관한 외부행정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중앙은 저가주병(猪加主病)으로 청결(淸潔)을 중시해야 하는 질병(疾病)을 담당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로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추가로 호가(虎加), 용가(龍加), 웅가(熊加), 응가(鷹加), 노가(鷺加) 등이 설치되어 각각 업무를 담당하였다. 그래서 당시의 행정체계를 단군 8가(加), 또는 단군 9가라 말한다.

이제 배달국의 치우천황 상황으로 돌아 가보자. 치우 군단은 오가(五加)에서 차출된 5종의 군으로 편성하였으며, 별군으로 호군과 견군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호랑이와 개도 훈련 시켜 전쟁에 응용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치우천황은 중앙에서 뭍 짐승의 우두머리인 용을 상징 깃발로 하였으며 용 그림을 가장 높고, 크고 그렸기에 이름이 용대기(龍大旗)가 된 것이다.

치우천황은 황제 헌원과 70여 차례 전투에서도 용대기를 높이 세우고 싸나운 동물과 함께 각 부락의 짐승 깃발을 앞세워서 함성을 지르며 적을 공격하였기에 황제군은 치우군이 반인반수의 짐승부대로 험악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사마천은 사기에 모래를 먹는 짐승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당시 중화족은 치우란 이름이나 용 그림만 보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칠 정도로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훗날 이러한 두려움은 중화족의 제왕들이 백성을 다스리는 주요한 상징이 되어 용은 신성한 그들의 권력 표상이 된 것이다.

오늘날 용대기는 우리의 민속놀이에서 가장 크게 높이 제작하여 가장 높은 곳에 설치되어 최고의 존엄으로 모셔지기에 각종 놀이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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