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한여름 밤의 꿈(3)
[장편소설] 한여름 밤의 꿈(3)
  • 성광일보
  • 승인 2022.06.2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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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동/
시인·소설가,
성동문인협회 이사
김욱동

해가 훤히 뜨고서야 마지못해 출발하려는지 꽥~하는 긴 기적을 몇 차례 울리는 것을 신호로 바퀴가 레일에 덜컹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객차 창이란 창은 모두 위로 끝까지 밀어 올린 탓에 차창에서부터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자 견딜 만해졌다.

 그러나 객차 양쪽 위로 길게 놓인 짐 얹는 선반까지 올라앉은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피해 한쪽 목이 당겨오도록 바깥으로만 고개를 내밀어야 했다. 
맞은편 역주행 방향 창가 자리에 앉은 누나도 콩나물시루 같은 혼잡이 부담스러운지 가방에서 책을 꺼내 펴지도 않은 채 스치는 바깥 풍경에 눈을 돌리고 있었다.
기차는 부산진, 사상, 구포, 물금, 원동역 등 모든 역마다 일일이 정차하며 꾸물거리다 삼랑진역에 도착했다.

그동안 굴뚝과 바퀴에 연결된 피스톤으로 검은 연기와 흰 증기를 양껏 쏟아 갈증 난 기차는, 승객이 탄 객차를 플랫폼에 둔 채 기관차 부분만 떨궈, 역 한쪽 귀퉁이에 높게 축조된 커다랗고 둥근 콘크리트 물탱크에서 물을 보충하느라 한동안 분주했다.

기관차를 객차에 연결한 후에도 진주에서 부산 가는 맞은편 기차에서 내린 환승객까지 담고서야 다시 밀양 쪽으로 출발했다.
카맣게 매연이 앉은 것을 마주 보며 한바탕 웃기도 했다.

 청도역을 지날 무렵이면 정오에 가까워져 객차 안에서는 그나마 먹을거리를 가져온 사람들이 무릎 위나 통로 바닥에 펼치고 허기를 달랬다.
그런데 차가 청도역과 삼성현역 사이에서, 뒤따라온 당시 가장 빠른 통일호 열차를 먼저 보내느라 역 구내에서 대피하면서 적어도 30분 이상 정차하였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알았는지 정차역 인근 마을에서 시골 아낙들이 시루에 갓 쪄 더운 김이 물씬 오르는 팥떡으로 철길 옆에 좌판을 벌였고, 이가 시리도록 시원한 우물물 한 대접에 탄 우뭇가사리 콩국도 인기 메뉴였으며, 그중 압권은 홍두깨로 밀어 덤벙덤벙 썰어 넣고 끓인 칼국수였다.

군용 드럼통 반을 자른 화덕에 마른 솔가지, 장작 등으로 불을 피워 철길 옆에 반짝 전을 벌리고 즉석에서 끓여주는 칼국수는 조금 비쌌지만 단연 인기였다.
멸치 우린 육수에 애호박 채 고명이 전부였지만 파, 마늘, 고춧가루 푼 간장에 집에서 나무틀에 눌러 짠 참기름 한 방울을 떨궈주는 구수하고 걸쭉한 국물은, 생각만으로도 침이 고이는 잊지 못할 맛으로 기억될 정도다.

첫 외갓집 방문의 설레고 좋은 경험은 그 후 부산서 살면서도 가끔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고3이던 작년 여름, 2학년 말부터 문과냐 이과냐 선택으로 비롯된 부모와의 작은 갈등은 점점 크게 부풀려지고 급기야는 가출하다시피 대구 시내에 있는 삼촌 집과,  청도 방향 시외버스로 1시간가량 비포장 길을 달려가야 하는 외갓집을 사고 치듯 다녀왔다.

낚시 솜씨는 중학생 때부터 동네 친구들과 김해평야의 훗날 「김해국제공항」이 된 김해 공군비행학교가 있던 평강으로, 낙동강 뚝 길 먼지가 뽀얗게 이는 시외버스로 가야 하는 맥도로, 김해 읍 방향의 가락 대동 수로로, 다니면서 전차 표만 한 것까지도 어김없이 채 올리는 발군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교통이 불편한 김해 지역은 버스를 3번 바꿔 타고서야 갈 수 있는 지역도 있었지만, 국경일 등 공휴일이면 차비 등 경제적인 여유가 허락될 때마다 낚시에 매료되어 친구들과 낙동강 수로를 찾았다.

대학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이 여름 방학이 되기 전부터 M.T를 가자는 둥, 부산근교의 해수욕장에 함께 캠핑 가기를 제안하는 둥 했지만, 끝내 모두 뿌리치고는 가창으로 왔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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