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찻잔에 쏟아지는 햇살(4)
[단편소설] 찻잔에 쏟아지는 햇살(4)
  • 성광일보
  • 승인 2022.07.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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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태/작가

준호는 영문을 몰라 한 동안  전화기를 들고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래, 아내가 납치를 당했구면, 이를 어쩐다. 경찰에 신고를 해. 아니지. 그까짓 천만 원! 그래 아내부터 구해 놓고 볼 일이야.'
농지 구입 계약금 치르고 남은 현금이 있어 다행이었다.

준호는 더는 다른 생각 않고 돈다발을 보자기에 싸서 택시를 타고 지정 장소로 달려가 지정 장소에 놓아 두고 멀지감치서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후 복면을 한 걸대 큰 사내가 유령처럼 나타나 돈뭉치를 확인 한 후  사라짐과 동시에 아내 혜옥이 준호에게 달려와 가슴에 안겼다.  
준호는 아무 말 없이 숨이 막힐 만큼 헐떡이는 아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일로 준호와 혜옥은 삼십년 교사 생활에 처음으로 사흘 동안을 결근했다가 출근 하던 날 명예퇴임으로 교직 생활을 접었다.
혜옥은 그 때 받은 충격의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않다가 다음 해 아지랑이 흔들리는 봄날에 소리 없이 이 세상을 하직했다. 그녀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도 준호에게 끓인 차를 권했다.
그 때 그 찻잔에서도 김과 함께 쏟아지는 햇살이 찻잔에 가득 찼었다.

민준호는 아내의 장례를 치루고 사모제를 지내던 날 조문 와 준 조객들에게 인사장을 보내기 위해 부의금 봉투를 정리하고 있었다.
봉투에 든 부의금도 일일이 기록을 하는 참이었다. 그런데 봉투 겉면에 이름도 주소도 없는 하얀 봉투 안에서 수표 한 장과 함께 간단하게 쓴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 
“지금부터 20년 전 선생님으로부터 빌려 간 50만 원 빚의 일부를 조의금으로 사모님의 영전에 받치고  다음 기회 봐서 나머지 모두 갚겠습니다.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정영문 드림”

조의금으로 낸 돈은 빌려 간 돈의 열 배나 되는 5백만 원이었다. 그 돈을 내고도 더 갚겠다고 했다. 그 순간 삼십년 교직에 종사한 보람이 느껴져 가슴이 뿌듯해 왔다. 동시에 지금까지
사별한 아내를 생각하며 정리하던 조의금 봉투 위로 자기도 모르게 미세한 서러움의 눔물 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졌는데, 갑자기 밝음만의 햇살이 온 전신을 감싸 왔다.
준호는 하던 작업을 멈추고  벽에 걸어둔 아내 남혜옥의 영정사진을 쳐다보며 두 손 모아 기도를 했다.
“여보, 당신이 이 세상에 살 때처럼 저승에서도 맑고  밝은 빛 속에만 사소서!”.

민준호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 띤 얼굴로 도우미 아주머니가 갖다 놓은 찻잔을 바라보았다.
찻잔엔 피어오르는 김과 함께 쏟아지는 햇살이 함께 일렁거리고 있었다.           <끝>

조진태/작가

<작가소개>
·'71년 이원수 추천 아동문학등단. 서울시민신문현상문예 <염원>당선
·'76년 우적(雨滴) 월간문학발표로  소설가 등단 활동. 한국아동문학상. 중대소설문학상.
·방송통신대 수필문학상과 소설문학상 수상. 국민훈장 수여,
·소설집:《견습기》,《옥상의정원》,《석화》.《비목》 외 다수
·동화짐:<제비와 망원경,<갯마을에 뜨는 해>.<수줍음이 많은 아이>외 다수.
·수필집:《세월의소리》.《오동잎 잎새마다》.《인생은 꽃으로 향기로》
·교육저서 《오늘의 충효교육》.《내마음의 글밭》 외 논문. 전기집 등 다수.
·현재 <옥출문학촌 촌장>, 1만5천 평의 농원도 경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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