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수필] 마음으로 짓는 밥
[문학·수필] 마음으로 짓는 밥
  • 성광일보
  • 승인 2022.07.1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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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애/2018년 광진문학 신인상
추성애

혼신의 힘으로 밥상을 차리는 그는 예술가이기도 했다. 밥상을 꾸리는 그의 손길은 마치 행위예술을 하는 작가와도 같다. 가슴으로 와닿는 감동이 있다면 밥상도 예술이다.
잘 차린 식탁 위에 담벼락에 핀 꽃과 나뭇가지를 꺾어 데코레이션으로 마무리한다. 식탁이 정원이 되었다. 음식과 자연의 오브제로 어우러진 아름다움이 있으니 작품이다.
그의 천부적 요리 재능은 어릴 때 한의사 아버지에게 약초의 효능을 배운 것으로 시작된다. 특별한 그의 요리 철학은 생모에 대한 그리움에서 움텄다. '그리움으로 짓고 진심을 담아 정성껏 차린 밥상으로 정을 나누는 것이 인생의 참맛'이라는 신념으로 음식을 만든다고 했다.

얼굴도 모른 채 헤어진 생모에게 단 한 번이라도 밥상을 지어 올리고 싶다는 애틋함이 요리사 길을 걷게 했다니, 그의 인생이 참 숭고하기까지 하다. 자연이 밥이라는 그의 자연주의 요리 철학은 숨가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경종을 주고 있지만 늘 놓치며 살아가고 있다.

방랑 식객 '임지호'가 차린 밥상은 미각이나 식욕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TV 화면 가득하게 펼쳐지는 그의 상차림 과정을 지켜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먹기 위해서 요리할까? 보이기 위해 요리할까? 갸우뚱거리며 화면을 보고 있자면 음식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 깨트러지곤 했다.

매주 그의 방송프로 애청자가 되었다. 그는 자연 재료만 사용하는요리사다. 나뭇가지와 잣 솔방울을 우려서 국수 육수를 만들기도 한다. 음식은 건강을 지켜주기도 하지만 마음의 치유도 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을 오래 새겨 두고 싶다. 밥상을 차릴 때는 진심을 담아야 한다는 말도 큰 울림을 주었다.

지난달에 그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이제 천국의 요리사가 되었을까? 천지가 밥상이라는 것을 터득한 그는 천상의 밥상이 궁금했는지도 모르겠다. 천국의 밥상을 차리러 바삐 가셨나 보다.

생모에 대한 연민으로 방황의 시간을 오래 보내며 전국 산하에서 찾아낸 약초와 토속재료 연구에 몰두했다.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산골 야생초가 생명을 살리는 음식이  되기도 했다. 그의 요리 철학이 담긴 《마음이 그릇이다 천지가 밥이다》라는 책 속에 발길 닿는 우리나라 사방천지가 풍요로운 밥상임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자연을 사랑하는 자연인으로, 요리 명인으로 살다 갔다.

음식 재료를 찾기 위해 산과 바다를 다니다 길 위에서 만난 어머니 같은 분들에게 자연 밥상을 차려 드린다. 세상의 어머니들이 다 내 어머니 같다는 그리움 때문이라고 했다.
밥은 시장기를 메우는 끼니라고 생각했다. 허기를 메우는 끼니라고 생각했으니 내가  차린 밥상이 얼마나 허술했을까. 정성과 진심을 눌러 담은 밥그릇을 식탁에 몇 번이나 올렸을까를 떠올려 본다.

요즘 우리 부부 사이에 '사랑한다' 혹은 '미안하다' 이런 말이 사라졌다. 부부싸움 후 화해의 사인은 “밥 먹으러 나가자, 밥 사줄게”로 대신한다.  남편과 나 사이에 밥은 곧  사랑인 셈이다. 맞벌이 주부라는 피로감 때문에 잦은 외식과 성의 없는  식탁으로 아이들과 남편에게 솜씨 없는 엄마로 통하는 것도 회복해야 할 나의 과제인 것 같다.

그는 음식을 만들 때만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천상 요리사다. 사람이 좋아 음식을 만들고, 새로운 음식  재료를 만나면 누군가 얼굴이 떠오르고, 그 사람이 먹으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음식을 만들다 보면 절로 음식에 진심이 담긴다고 했다. 가족의 식탁을 꾸리는 엄마들에게 깨우침을 주는 말이다. 식구 얼굴을 떠올리며 정성껏 밥상을 차리는 집안이라면 화목하고 다복한 가정이 아닐 수 없다. 진정 주부의첫 번째 소명이 가족을 위한 밥상을 차리는 일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라는 말처럼 토속적인 재료로 연구한 그의 음식은 해외 여러 나라에서 호평을 받았다. 음식 재료를 찾아헤맨 오랜 방랑의 시간이 우리나라 요리의 국격을 높여 준 셈이다.

오래전에 그가 운영하는 시골 식당에 들렀다. 식당 마당이 온통 풀밭이었고 햇빛에 발효되고 있는 장독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주문한 음식상이 차려졌다. 음식과 식기의 조화도 대단했지만, 들꽃과 조약돌로 장식한 상차림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마당에 흐드리지게 핀 풀들이 싱그러운 샐러드 요리가 되었고, 울타리 야생화는 음식 위에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다. 우리 일행은 시각적 흥분으로 잠시 미각 여행을 멈출까도 했다. 참을 수 없는 시장기로 입 안에서 요리가 사라지는 아쉬움은 컸지만, 육체는 맛을 취하고 영혼은 향기를 취하는 식사로 오래 여운이 남았다. 그의 음식 철학을 그곳에 풀어 놓은 듯했다.

그가 떠난 후 10년에 걸쳐 만든  '밥정'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지리산의 사계 영상도 아름답지만, 친모의 그리움을 담은 밥으로 정을 쌓는 여정의 기록이었다. 이제 이 영화는 보통 사람을 뛰어넘은 한인간을 기념하는 자료가 되었다. 그는 음식으로 감동과 깨달음 주는 선인이었다. 영화를 통해 밥상을 차려 드릴 어머니가 아직 살아 있고 내가 차린 밥상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의 철학대로 소중한 내 가족에게 마음으로 짓는 진심의 밥을 차릴 수 있게 힘을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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