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한여름 밤의 꿈(5)
[장편소설] 한여름 밤의 꿈(5)
  • 성광일보
  • 승인 2022.07.2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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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동
시인·소설가,
성동문인협회 이사
김욱동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외삼촌은 대구 시내에서 함께 술을 마셨는지 동네 친구들 몇 사람과 어울려 왔다. 
 삼촌은 갑작스럽게 앞에 나타난 조카 모습에서 작년 여름 가출했을 때 부산에서 처남과 큰 조카가 들이닥친 날의 소란스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빤히 바라보며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 년 지난 일이기도 했고 올해 대학교 합격했다는 소문도 들었던 터라 처음엔 떨떠름하게 대하던 외삼촌은, 금방 의아했던 표정을 반가운 기색 뒤로 숨기며 친구들에게 들으라는 듯, 걸걸한 음성을 돋우었다. 

"왕호(외가에서 부르는 아호) 왔구나. 그래 그 좋은 대학교에 일등(이건 나도 모르는 터무니없는 말이다)으로 들어갔다면서?”
'.........................?”
“지 엄마 닮아서 머리가 참 비상하단 말이야." 

허허 웃으시다가, 외출준비를 하고 아래채에서 마당으로 내려오는 외사촌 동생을 보고는 버럭 역정을 내었다. 
"네 어미는 어디 싸돌아다닌다고 꼴도 안보이노?" 
“조금 전에 우리 밥 차려주고 마실 갔심더”
"지지리 공부도 못하는 놈이 밥만 축내고서 쯧쯧" 애꿎은 동생에게 면박을 주었다.
선뜻 대문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 눈치껏 평상에서 부채질하다 외삼촌과 친구들이 새롭게 술상을 마련하는 낌새가 보이자 둘은 살그머니 사립문을 빠져나와 구멍가게가 등잔불처럼 빤히 열려있는 버스정류장 쪽으로 달아났다. 
"형, 아부지 말하는 거 참말이가?" 
"뭐 말이고?”
“형아 대학교 일등으로 들어갔다는 것?”
“아이다, 나도 전혀 모르는 소리다”
“어이구 우리 아부지 뻥만 까고 다니네.”
나 때문에 이유 없이 타박받은 것 같은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자 집에서 올 때 받았던 용돈을 가늠하며 먼저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뭐 먹을래?”

과자와 빵이 있는 곳을 보면서 다가가자 동생이 가로막으며 말했다.
“방금 밥 먹었는데 뭐 또 배부른 거 먹을라꼬?”

미닫이문에 붙은 유리 조각 사이로 가게에 들어온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주인 할아버지 눈치를 살피며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형아, 조금 있으면 뚝 방 너머 사는 식이네 집에 동네 애들이 다 모이는데 오늘 밤 거기 가서 같이 놀자”

가게 할아버지가 살피듯 내다보는 방으로 다가간 동생은 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아부지가 술 하고 안주 좀 가져오랍니다.”

 소주와 과자 오징어 따위를 검정 비닐에 주섬주섬 담자, 내다보던 주인 할아버지는 잘 들리지 않는 귀를 손으로 모으며 대꾸했다 
"너거 아부지는 막걸리만 먹는데 소주 가져가나?.”
“야, 막걸리도 가져가야지요. 소 막 아저씨랑 오셨거든요.”
“오냐, 그쪽으로 같이 가는 것 봤다. 오늘도 외상으로 가져오라더냐?”

할아버지의 시선을 피하는 동생의 눈짓에 서둘러 바지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식이라고 부르는 동생 친구 집에는, 부모들이 집안 잔치 준비로 대구에 나가고 어린 동생만 있다고 신이 나서 주절거리며 앞서는 재식이를 쫓아갔다.
마을에서 제법 떨어진, 저수지가 아래쪽으로 빤히 보이는, 산 중턱에 밤나무밭으로 둘러싸인 외딴집이었다.

술과 안주가 가득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양손에 들고 마당에 들어서자, 기다렸던 듯이 사랑방 문이 덜컥 열리면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한꺼번에 밖으로 쏟아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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