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민들레꽃 바람 되어 나르는 뜻은
[수필] 민들레꽃 바람 되어 나르는 뜻은
  • 성광일보
  • 승인 2022.07.2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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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태 작가
조진태

전원에서 생활한지도 어언 15년이 넘었다.  공직에서 퇴임하고 일찍이 전원생활을 시작한 나는 평시에 잠시도 손을 재고 있지 못하는 성품이라 날이면 날마마다 자고새면 퍽이나 넓은 농원을 두루 돌아다닌다.  그렇게 개미 쳇바퀴 돌듯 하면서 일 년 사 계절 중 겨울을 제외하고는 농작물 외 나무나 꽃을 심고 가꾸는 일이 전업처럼 되었다.

처음에는 사과 농사로 30년 생 쯤 되는 사과나무 2천 여 그루를 가꾸어 보겠다고 달려들었다가 일 년만에  포기하고 모두 뽑아버렸다. 가지치기, 거름주기, 열매속기, 소독약치기, 거기다가 잡초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무성히 자라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구복(口腹) 해결에 도움 될 몇 뙈기 전답과 몇 종류의 과실수, 그리고 채소 가꿀 텃밭을 제외하고는 꽃과 약용식물과 관상수를 심기로 하였다.

관상수로는 이미 식재돼 있는 주목이 수천 그루가 있어 새로 구입한 느티나무, 층층나무, 단풍나무, 전나무, 잣나무, 벚나무, 후박, 목련, 반송 등을 심었다. 그리고 약용식물이라면 나무건 풀이건 가리지 않고 심었는데, 오갈피, 산수유, 모과, 매실, 헛개, 층층나무,대추, 음나무, 뽕나무, 두충, 으름덩굴, 치자, 참죽, 은행 등에다 꽃식물로는 함박꽃, 창포, 상사초, 다알리아, 메리골드, 국화, 큰꿩의비름, 박태기, 벌개미취, 꽃잔디, 할미꽃, 민들레, 철쭉, 개나리, 진달래, 과꽃, 능소화, 줄장미,홍매화, 백매화, 황매화, 백공작, 청공작, 앵두, 보리수, 접시꽃, 영산홍, 청.백도라지, 참나리, 둥글래, 조팝, 자귀나무까지 보는 대로, 구하는 대로, 심고 가꾸기를 시작해  이태를 보냈다.

이러는 동안 퇴락한 주택도 손보고, 진입로 포장도 해서  대락 사람 살만한 환경으로 조성된 셈이었다. 이럴 무렵 캐나다로 이민간 막내의 간곡한 요청이 있어 거기 가서 살게 된 것이 어영부영 오 륙 년을 보냈고, 다시 미국 seattle로 이주케 된 막내가족 따라 다시 두 해를 보내게 되었다. 물론 그 칠.팔 년 간에도 두고 갔던 농장을 해마다 둘러보고 가긴 했지만.

역시 이국의 생활은 날이 갈 수록 고국에서 삶만 못했다. 아무리 광활한 대지 위에 한 없는 자유와 풍요를 누릴 수 있는 나라라 해도, 아무리 쾌적한 환경에다 물질문명의 극치를 이룬 나라라 해도, 느릿한 여유로움 속에 내일 보다 오늘의 삶을 추구해가는 현실 속에서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나라라 해도, 비록 좁은 나라이지만 오늘의 삶보다 미래지향적인 내나라 내고향이 목매에도 그리웠다.   

어딘지 모르게 문득문득 떠오르는 고국과 전원생활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는 떨칠 수가 없었다.
더 견딜 수가 없었던 나는 마침내 2008 년 아내와 함께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전원에 파묻혔다.  하지만 그렇게 그리워 돌아왔던 전원은 불편함과 걸거침과 고독과 허무와 상실만이 전원을 온통 뒤덮어오며 나를 압박했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소통에 앞서 배타, 왕따, 소외감 등은 희극의 천재 배우 로빈이 주연한 '앵그리스트맨'에 나오는 헨리알트먼처럼 분노의조절장애증세 정도의 알르레기를 나에게 일으키도록 했다.

헨리알트먼은 장남이 교통사고로 죽고 40여만 달러를 들여 공부 시킨 둘째아들 마저 집을 나가 소식을 끊었으니 세상일에 치미는 화를 어떻게 감당했으랴 짐작이 간다. 그에게  세상일은 경쟁적으로 화를 부축였다. 헬리알트먼은 병원으로 가 여의사의 진단을 받았다.<뇌동맥류>라 했다. 

“그럼 살 날이 얼마 남았는지 숫자로 대봐!”라고 닥달하자 여의는 시한부 선고를 했다.
“90분 밖에 안 남았소. 꼭 90분!”
그 소리에 잠시 침묵하다가 소리쳤다.
“그래, 내 인생은 도대체 뭣인가?” 그는 다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신(神)? 좋아하네. 빌어먹을 세상 엿 먹어라! 참고 견디라고? 모두 다 샛빨간 거짓말, 거짓말이야!”그는 분노만이 방패요 권리라고 외쳤다. 

나도 한 때 아내를 잃고 상실감에 사로잡혀있었다. 
굽이굽이 돌아온 인생의 뒤안길엔 어느 누구와 다를바 없이 상처와 절망과 고뇌 속에 욕망과 배신과 좌절로 꽉차있었다. 나에게 안긴 상실증은 <죽음>아니면<망각>이란 이 분법적 의식 외는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리하여 맞이한 그해의 겨울은 너무나 길고긴  어둠의 터널 속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가는 시간 오는 세월은 멈추지 않았고, 꽃피고 새우는 봄과 함께 나의 농원 작가원 뜰에는 노랗고 흰 민들레가 탐스러운 꽃을 피우고 있었다.그 꽃들은 얼마 안가서 부드러운 하얀 깃털을 달고 고무풍선처럼 둥글게 부풀러 올랐다. 

'저 꽃도 얼마 안 있어 바람에 날려가고 말겠지. 그리고 남은 꽃대는 시들고 잎마저 시들어 없어지겠지. 그래도 뿌리는 남아 내년에 또 잎이 나고 꽃도 피울테지만 한해의 삶을 마감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꽃씨는 바람되어 날아가 어딘가에서 다시 생명으로 되살아나겠지.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현재가 소중함을 깨닳게 되겠지.'
나는 그런 생각으로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녹색이 깔리 정원의 한 귀퉁이 흔들의자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펼친 책은 이미 젊은 시절에 보았던 톨스토이 작품 '안나 카레니나' 였다. 

<안나카레니나>에는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주제가 담겨있다. 등장한 인물 안나와 브론스키의 실패한 인생 말고, 레빈과 키티의 성장하는 삶에서 몰입과 소통 다음에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3단계의 삶의 방식 중 <몰입>이라는 게 있다. 

레빈은 <풀베기>를 한다, 풀을 벰으로써 기쁨을 느낀다. 다른 일은 잊어버렸다. 무아지경에 빠진다. 풀베는 일은 쉬워졌고 낫은 저절로 풀을 베었다. 그 순간은 정말 행복했다. 
여기서 레빈의 자기중심,자기집착,자기만의 의식을 벗어나게 된 것은 오직 <풀베기>란 일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도 이제부터 이 농원을 가꾸는데 몰입하리라. 그래서 죽음을기억함으로써 현재가 소중함을 발견하게 되리라 여겨서였다. 

굴삭기, 손수레, 경운기,예초기, 엔진톱 등을 동원해가며 작가원 주변을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만드는데 그야말로 <몰입>했다. 돌을 옮기고, 풀을 베고, 묘목을 심고, 씨를 뿌리고,밭을 일구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사별에 대한 고통과 상실감을 잊고 있었다. 해놓은 일자리를 돌아볼 때마다 성취감에 도취되기도 했다.
근 반 년에 가까운 시간은 벌써 봄의 한 가운데 쯤 와서 생명있는 것들은 하나같이 용트림치며 작가원 주변의 농원과 산자락은 푸른 물결로 뒤엎어져 있었다. 작업에 몰입하기에는 안성맞춤의 계절이기도 했다.  

작가원 농원에는 오늘도 화사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수많은 꽃잎이 나른다. 잠시 작업하던 손을 멈추었다.
며칠 전 흔들의자에 앉아서 보았던 민들레가 눈에 들어왔다. 민들레는 동그랗게 부풀린 꽃송이를 길다란 꽃대로 밀어올려 놓은 모습은 국경일에 있는 불꽃놀이를 연상케 했다.
그런데 잠시 후 해살궂은  바람은 그 보송한 꽃(열매)을 뭉개서 멀리멀리 날려 보냈다.
'저런, 저런! 안타까워라.'
나도 모르게 장탄식을 하자 어디선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기 들려왔다.
“민들레꽃 바람되어 나르는 뜻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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