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글라스 뒤로 숨지 마라
선글라스 뒤로 숨지 마라
  • 성광일보
  • 승인 2022.08.1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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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 / 논설위원
송란교

여름철은 선글라스의 계절이다. 햇볕이 강해서 토시를 끼지 않으면 하얀 팔뚝이 금방 까맣게 물이 든다. 해맑은 눈동자도 불타는 햇빛이 무서워 선글라스를 찾는다. 우스운 것은 짙은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지하철 안에서 조는 척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어둠 속에 숨어서 내 눈동자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너는 절대 모를 거야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일까? 햇볕이 강해 선글라스 속에 맑은 눈동자를 넣어둔다고 누가 나무라겠는가만, 그 어둠 속에서 굴러가는 눈동자가 쓸데없는 곳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가 오면 창문을 닫는다. 커튼까지 드리워지면 방안은 햇볕이 차단되어 더욱 어둡다. 화가 치솟으면 마음의 문을 닫는다. 철근을 품고 굳어가는 콘크리트처럼, 마음의 경화가 시끄럽게 진행되고 얼굴색도 점점 어두워진다. 문을 굳게 닫고 검은색 선글라스에 의지하다 보면 편하게 지내던 이웃도 찾아오지 않아 소통이 끊기고 홀로 고독에 묻히게 된다. 빠져나갈 구멍을 파놓고 쥐 몰이를 해야 하는 것을, 열쇠를 밀어 넣어야 하는 밑구멍을 화끈하게 막아버리면 잠긴 자물쇠를 어떻게 열겠다는 것인가? 이렇게 되면 심한 변비 통만 남을 것이다.

선글라스는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1930년대 말 존 맥클레디(John Macgready), 미 육군 항공단 중위는 논스톱으로 대서양을 횡단하다 고공비행 중 강렬한 햇볕 때문에 심한 두통과 구토증으로 고생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조종실에서 난반사를 막고 계기판에 나타난 각종 수치를 정확하게 판독하고 또한 시야를 확보하여 공중에서 교차하는 각종 항공기 등 장애물을 쉽게 포착할 수 있는 안경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바슈롬 사가 레이 밴 (Ray Ban)이라는 녹색 렌즈를 개발했었다. 이 렌즈는 단순히 빛을 차단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자외선과 적외선을 조절하는 기능이 있었다. ‘Ray Ban Glass’는 광선을 차단하는 유리라는 뜻이다. 선글라스는 이렇듯 조종사들이 자신들의 눈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였다.

한편 동양에서는 중국 송나라 판관들이 죄인들을 심문하고 고문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눈을 마주 보게 되면 마음이 약해지거나 마음을 들키기 때문에 안경에 색을 넣어 눈동자가 보이지 않게 하였다는 설도 있다. 요즘 경호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시선 가는 곳을 숨기기 위해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운전하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한낮 뜨거운 햇볕 아래 운전을 하다 보면 눈부심으로 전방을 제대로 주시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이럴 때 선글라스를 쓰게 되면 약간 어두워짐과 함께 전방의 사물들이 조금 더 명확하게 보이고 눈 주위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어둠 속에서는 동공이 더 커지는지도 모르겠다.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으면 내가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 아무도 모를 거야. 내가 머리를 장독대 안에 처박고 있으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를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고 아무도 보지 않으면, 꼭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해서는 안 되는 일만 골라서 하는 못된 버릇이 도진다. 이불 뒤집어쓰고 이단옆차기 하는 것과 무에 다를까. 선글라스 속에 감춘 거짓 눈으로 진실의 햇빛을 이기려 한다. 밝음은 언제나 어둠을 이기게 되어 있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긴들 아침이 오면 다 들통난다. 밤새 했던 못된 짓거리들이 모두 드러난다. 물이 넘쳐 흐른다고 밑바닥을 볼품 사납게 헤집지 말자. 내려오는 물이 끊기고 나면 파헤쳐진 속살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밤새 천둥소리에 기대어 살쾡이가 헤집고 지나간 닭장에 닭은 사라지고 오리발만 수두룩 쌓이는 꼴이다.

깃털 같은 권력을 손에 쥐고서 그것을 뒷배 삼아 마구 휘둘러댄다. 그 깃털이 바람에 날아가 버리면 무슨 망신을 당하려 하는가? 나만 맛봐야 하고 너는 맛보면 안 된다는 것일까? 권력이라는 선글라스를 쓰고서 온갖 욕설을 막아주는 두꺼운 갑옷을 입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선글라스 뒤에 숨어서 다른 사람을 속이고 무시하는 재미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관계의 꽃은 신뢰이고 그 뿌리는 존중임을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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