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효완성과 예의염치
시효완성과 예의염치
  • 성광일보
  • 승인 2022.09.0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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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논설위원
송란교

시효(時效)란 일정한 사실 상태가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함으로써 법률상으로 권리의 취득 또는 권리의 소멸이 일어나게 하는 법률요건을 말한다. 학문적으로는 금속이나 합금의 어떤 성질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화하는 현상을 뜻하기도 한다. 시효에는 타인의 물건을 오랫동안 점유함으로써 권리를 취득하게 되는 ‘취득시효’와 장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권리가 소멸되는 ‘소멸시효가’ 있다. 또한 ‘공소시효(公訴時效)’는 죄를 범하고 일정한 기간이 경과하면 국가의 소추권을 소멸시켜 공소 제기를 불가능하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시효가 완성된다는 것은 법적으로 권한이 정리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윤리적 양심적으로는 정리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즉 공소시효가 지나면 지은 죄가 그냥 씻겨지나요? 소멸시효가 지나면 떼먹은 돈은 그냥 갚아지나요? 흉터가 사라지면 그냥 그 아픔이 치유되나요?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지워지지 않은 분노와 원한의 응어리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요? 다행스럽게도 우리 마음속에는 시효와 상관없는 ‘용서’라는 용해제가 들어있다. 그 용서를 통해서만이 미운 원한이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생존시간은 줄어들게 되어있다. 그러다가 수명을 다하면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 육신의 수명이 다하였다 하여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생전에 말하고 행하였던 자료, 축적한 재산 등은 어떠한 형태로든 대물림을 하며 후세에 영향을 미친다. 후대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천사가 되기도 하고 지옥으로 이끄는 악마가 되기도 한다. 이는 자신이 남긴 흔적에 따라 갈린다. 발효음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즐겨 하는 좋은 향기가 나온다. 부패음식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썩은 냄새가 진동하게 된다. 세월이 쌓여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발효음식같이 사랑받음과 부패음식같이 멸시당함은 예의염치가 있고 없음에 달린 것이다.

언제부터 이 나라가 죄짓고도 큰소리치는 사람들의 나라가 되었는가? 라고 한탄하면서 밤새 찌지직거리는 텔레비전 뉴스만이 홀로 울고 있다. 죄지은 자는 주홍글씨를 이마에 새기고 하늘을 우러름에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함에도 주홍글씨가 훈장이라 우기는 적반하장이 유별나다. 죄를 짓고도 죄인 줄 모르는 건지, 죄인 줄 알면서도 죄가 아니라 주장하는 건지, 너무 뻔뻔스럽다. 후안무취(厚顔無恥)가 극에 달한 듯하다. 부끄러워하는 자화상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요즘 정치인들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잘못한 대가는 더더욱 치르려 하지 않는다. 벌 받으라 지적하는 사람에 대해 거꾸로 벌을 받으라 윽박지른다. 흥청망청 빚내 쓰고서 그 빚 받으러 찾아온 사람을 실컷 두들겨 패는 꼴이다. 특히 먹고사는 것이 첫 번째인 사람들에게 밥 한 끼니를 동냥 퍼주듯 하고는 오히려 그 사람의 호주머니를 뒤져서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앗아간다. 그러면서 이도 저도 돈도 뒷배도 없는 것들이라 깔보며 대놓고 무시한다. ‘누가 감히 내 밥그릇에 손을 대는 거야’ 하면서 그들은 ‘혐오 대장’ 놀이를 그치지 않는다. 권력을 쥔 자는 한없이 강하고, 일반 대중은 한없이 약한 세상이 되었다.

시골에는 5일마다 서는 5일 장이 있다. 수많은 민심이 한꺼번에 장터로 몰려든다. 온전히 걸어가는 것조차 힘들고 질서가 무너질 듯하지만 무너지지 않는다. 이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관자는 일찍이 창름실즉지영욕 의식족즉지예의(倉廩實則知榮辱 衣食足則知禮義, 곳간이 넘치면 영예와 치욕을 알고, 입고 먹는 것이 풍족해야 예의범절을 안다)를 주장했었다. 예의염치(禮義廉恥)를 나라를 다스리는 사유(四維)라 강조한 그는 지금의 세태를 미리 엿보고 있었을까?

그 잘난 정치인들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가면을 쓰고 독불장군인 양 호들갑만 떨면서 지금까지 저지른 죄가 시효완성이 되었다고 외치고 있다. 그들만을 위한 소도(蘇塗 : 삼한 시대에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성지(聖地)로 죄인이 이곳으로 달아나더라도 잡아가지 못하였다고 한다)에서 살고 있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모이주머니가 홀쭉해진 갈매기조차도 뱃머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린다. 먹을거리를 주는 사람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다. 저녁노을이 곱게 물들어가는 법성포 포구 끝에 내걸린 얽히고설킨 굴비처럼, 조각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굽은 시렁에 주렁주렁 매달린 인생의 꿈들이 맛있게 익어가는 참 좋은 시절에, 고운 마음 배부른 소식이 밥상머리에 많이 올라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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